'환골탈태' 권하는 사회

2025. 01. 16. "Metamorphosis"

by 일흔의주정
Metamorphosis_of_butterfly_(PSF).png By Pearson Scott Foresman

'Metamorphosis'. '탈바꿈, 변형, 변태'. 여느 영단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는 이 단어는, '-너머'를 뜻하는 'meta-'와 '형태'를 뜻하는 'morphe'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형태 너머로의 변화'를 뜻하는 이 단어는 흔히 곤충이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태할 때, 즉 번데기 상태에서 우화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몇 년 전 SNS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면, 번데기 안에서 원본인 유충의 생체 조직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그로부터 새로운 조직이 합성되어 성충이 만들어진다. 결국 애벌레와 성충은 다른 존재나 다름없다." '환골탈태'라는 케케묵은 사자성어를 우리 마음속에 되새기게 만드는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rsif20130304f02.jpg https://doi.org/10.1098/rsif.2013.0304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반만 옳습니다. 번데기 속에서 애벌레의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나비 번데기의 발달 과정을 CT 촬영한 결과로써 보여주는 위의 자료에서 보시다시피,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구분되는 호흡계, 빨간색으로 구분되는 소화계의 조직은 변태 과정을 거치면서도 번데기 안에서 그대로 유지됩니다.


나방이 애벌레 시절 인지한 혐오스러운 신호를 성충이 되어서도 피한다는 연구 결과(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01736), 그리고 개미가 유충 시절 자신과 함께 살았던 개체를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https://doi.org/10.1073/pnas.82.24.854)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떤 개체의 형태가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여전히 그 개체의 것인 셈입니다.


ad37_86_i1.jpg 출처 : 처음 만나는 고사성어

환골탈태, 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는다. 뜻을 뜯어보자면 꽤 섬뜩한 말이지만, 성공을 쉽게 논하는 자들은 우리에게 늘 환골탈태를 요구합니다. '동기부여'랍시고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희망은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며 한마디씩 툭툭 던져대는 온갖 서적과 영상들은, 우리에게 기존의 우리를 완전히 버리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완전히 녹아 사라진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애벌레와 아름다운 나비는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애벌레를 짓뭉개고 없애 버려야 나비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와 같이, 어제의 부족했던 나는 결코 내가 부정하고 짓밟아야 할 한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의 몸에 남의 뼈를 바꿔 끼우고 남의 태를 빼앗아 뒤집어써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남이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golden-glitter-particle-with-beam-light.jpg Image by starline on Freepik

어디서나 너무도 쉽게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지금, 우리는 매일매일 누군가의 성공과 마주합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그들을 배우고, 그들이 내뿜는 빛의 길을 따라가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하지만 가끔, 빛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대신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지금은 어쩌면 잠시 멈춰서,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시도가, 되려 우리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길로 인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의 단어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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