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를 보러 동생 부부 집에 다녀왔다. 두 달 만에 만난 조카는 금세 또 자라있었다. 전에는 ‘꼬모’라고 밖에 발음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고모’라고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워낙 경계심이 많은 아이라, 엄마 아빠가 아닌 사람에게는 인사도 잘 건네지 않고 여간 친하지 않아서는 몸을 만지는 것도 싫어했다. 고모인 내가 한번 안아보려고 해도, 조카에게 사정을 해서 어렵게 허락을 구하면 마지못해 1초 정도 안아주는 정도였다. 실수로 조카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으면 조카는 금세 큰 눈에 눈물이 맺혀 ‘치러’라고 말했다.
그랬던 조카가 어제는 잠자기 전, 자기 애착이불을 질질 끌고 나에게 다가와 함께 자자고 말했다. 그 순간 심장이 어찌나 떨려오던지. 옆에 누워 크고 동그란 눈으로 고모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고 있는 조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불을 다 끄니 조금 무서웠는지, 조카는 내게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내 손의 반의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손을 쥐고 있자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나에게 일어하는 모든 일이 괜찮고, 다행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이 작은 생명에게 내가 안전한 존재,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왔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조카와 지낸 2박 3일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갔다. 난 늘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려 무엇이든 채워 넣고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은데, 며칠간 그저 조카와 밥을 먹고 놀다가 잠시 누워서 낮잠을 자고 또 일어나 놀다가 밥을 먹고 함께 누워 잠을 자고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여느 때처럼 불안감이 밀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었는데, 답은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다.
조카의 작은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한다. 그러다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뛰어들어간 조카가 조카 얼굴만 한 크기의 막대 사탕을 집어 들고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조카를 따라 환하게 웃는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