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마실
서점은 은신처처럼 아늑했다.
방으로 연결된 짧은 복도 양면에도 책들이 꽂혀 있었고, 중간중간에 푹신한 소파와 1인용 의자가 놓여 있어서 책을 읽기에 좋았다. 복도 맨 끝 램프 아래에 키가 큰 시집 책장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제일 좋아했다.
_오래된 빛, 앤 스콧
작년 초. 오랜 시간 공들였던 일이 흐지부지된 후 어디론가 사라진 활력이란 것을 찾기 위해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건축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그때 책방지기 두 분을 만났다.
예정된 모임의 시한이 끝나고 간간히 끊길 듯 말 듯 연락만 오고 가다가 드디어 얼마 전, 부부의 책방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버스로 1시간 40분 거리... 활동지역이 초미세인 동네생활자에겐 벼르고 별러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건물이 막 지어졌을 때 한번 들렀었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정돈되고 꽉 찬 것 같은. 물론 대형서점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꽂혀있는 책들이 다 읽어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겉에서 보기엔 전혀 한옥 같지 않아도 안으로 들어가면 이 곳이 원래 한옥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싹 밀고 다시 짓는 것이 당연한 요즘. 주인장 두 분은 힘들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었던 책방 자리는 부동산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정말 꿈으로 먹고사는 일이 되어버린 동네 책방. 앞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길, 오래도록 그곳에서 꿈꿀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