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 내 가슴속에 새겨진 한 마디
대망의 D-1 이었던 2015년 11월 25일, (이때 당시는 몰랐다.) 나는 영화를 혼자 보러 갔었다. 이제 이런 호사는 없을 거야.. 하면서 영화 2편을 꼬물꼬물 거리는 뱃속에 아이와 보았다. 그 전에도 혼자 두 편을 보면 꼭 두 번째 영화 반은 잠으로 놓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다. 이 날도 역시나 그랬다. 하지만 첫 번째 영화 선정은 어쩌면 탁월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얼핏, 얼핏 인터넷에서 영화 포스터를 보았을 때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다가 집에서 들은 라디오 <배철수 음악캠프>에 영화 이야기를 하는 코너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이 영화를 소개할 당시 기자가 자기 생애 최고라고 꼽는다는 데 뭐랄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게다가 '늑대의 아이'의 감독이 아버지가 되고 나서 만든 영화라는 말에 더욱 혹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쩌면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배는 절정으로 불러오고 있었지만도 나 자신이 부모가 된다는 것에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란 카피를 썼지만 내가 이 영화 포스터의 카피를 쓴다면 나는
함께 자란다!
라고 쓰겠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거였다. 인간의 세계를 나온 꼬마 아이와 그 아이를 제자로 삼게 된 괴물 쿠마테츠, 그들을 티격태격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를 다루기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괴물 쿠마테츠는 인간 아이가 성장할수록 함께 성장해 가고 있었다. 괴물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었어도 그 둘은 그 관계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서 더 성장한 건 아이가 아니라 괴물 쿠마테츠라고 영화 속 그들의 지인은 말했다.
나 자신도 아직 온전하게 성장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서른한 살의 어른 꼬마인 나는 내가 감히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 자신도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인데, 내가 순전히 누군가를 책임지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게다가 세상은 아이가 자라기까지 전적으로 부모의 영향이라고 하질 않는가. 막연하게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세상은 강요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 은연중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 영화의 메시지는 신선했다. 아이에게 당연히 부모로서 해줘야 하는 거 아냐는 식의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닌 씩씩거리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운 말을 써야 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절제해야 할 것이고, 뭔가 '부모'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나는 이처럼 나를 옮아 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조금 내려놓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자라겠지만, 나 역시 함께 자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