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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Apr 26. 2016

아이에겐 권리가 있어요!

출산 후 오로지 '나'만 보이던 내 가슴을 울린 말! 

"                                                          자식 사랑에도 때가 있으므로 적어도 세 살까지 엄마가 키워야 한다 _법륜스님 <엄마수업>中"
서른 평생 나 자신이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여자인 줄 알았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 오빠를 둔 탓에 큰 집에 가면 늘 조카들에 둘러싸였다. 그럴 때마다 내 손을 잡고 안 거쳐간 조카가 없을 정도로 나는 아이들을 참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혹여 유아교육과 전공을 하고 싶어 할까 애초부터 그곳은 지원하지 말라고 못을 밖았었다. 심지어 유아교육회사 홍보 쪽 일을 했었기 때문에 아기 모델들과 작업할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도 늘 즐겁게 일했었다. 그랬다. 나는 단순힌 아이 좋아하는 것을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여자인 줄 서른 평생 착각하고 산 거였다. 

   사실 임신 때도 생각보다 모성애가 나는 없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사람들을 혹여 아이에게 해가 될까 커피이며 회며 이것저것 가려 먹을 때도 나는 마음껏 먹었으니까, 그리고 태교는 둘째치고 주말부부로 지내며 회사 일 열심히 하고 퇴근해서 티브이 시청하기 바빴었다. 아기 낳으러 가기 전 날까지, 이제는 못 보겠지 하며 실컷 보겠다고 혼자 영화 두 편 보러 갔음 말 다했다고 본다. 그랬던 나도 출산하면 없던 모성애가 뿅! 하고 생겨날 줄 알았다.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퐁퐁 샘솟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산고를 하다 결국 수술을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 수술을 했었어도 핏 더미 아가를 보았는데도 눈물이 나긴 했지만 잠시 그때뿐이지, 내가 아기를 낳으면 이럴 것이라 생각했던 울컥함이라던가 모성애는 그리 샘솟지 않았다. 아기가 처음 내 젖가슴을 부비적 거리다 젖을 빠는 순간 조차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뿐, 나는 그저 덤덤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에도 아이에게 젖을 물렸지만 오로지 나의 정신은 앞으로 나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리원을 나오고 나서는 친정 엄마가 잠시 와 계시는 동안도 나는 아기가 보이기보다 내 인생이 걱정이었다. 이 핏덩이가 언제 커서 나는 다시 사회 속에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왔던 터라 대전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오로지 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생각들은 급기야 우울함과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듯했다. 급기야 내가 낳은 아기가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기는 신기하고 이뻤지만, 이 아기를 통해 내 존재감이 퇴색되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헛헛한 마음으로 육아를 하고 하루하루 보내던 찰나, 나를 일깨워 준 것은 우연히도 스님의 말씀이었다. (참고로 나는 불량 신자이지만 기독교인) 몸조리를 해주러 오신 친정 엄마께 심심하실 때 들으라고 팟캐스트를 소개하여 드렸는데 거기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신 거였다. 혼자 이어폰을 꽂고 들으시다가 어느 날 나에게 들어보길 권하시는 게 아닌가!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높은 순위에 스님의 팟캐스트를 보고 그저 지나쳤었는데, 우연히 들어 보게 되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스님께 질문을 던지고 스님이 즉석에서 답을 해주시는 방식이었는데 거기서 여성 분들은 대다수 자식과 관련한 고민을 질문으로 하셨다. 특히 청소년기에 자녀를 둔 어머님들이 자녀들의 문제로 많이들 물어보셨는데 그럼 스님을 한결같이 질문하셨다. 

   "세 살 때까지 누가 키웠어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분들이 본인이 키우신 분 본다는 일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맡겨 키웠다는 것이 대다수였다. 그럼 스님은 한결 같이 그 시절, 아이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청소년기가 되어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며 자신을 탓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늘 강조했던 말씀이 있었다.

  아이에겐 엄마랑 함께 할 권리가 있어요!

 엄마라고 그 권리를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 말이 왜 이리도 내게 와 닿았을까? 난 우리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으려고 했고, 심지어 그것을 짐으로 여기며 부담스러워까지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모성애가 샘물까지 퐁퐁 솟아났다고 결론을 지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나는 덤덤하게 육아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서 주어진 권리를 함부로 빼앗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임을 생각하며 더욱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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