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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예 Aug 06. 2020

나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밖에 없는 상, 엉뚱상

엉뚱함이 이끌어 준 나의 방향



 “엄마 나 상 받았어! 엉뚱상 받았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상장을 하나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도덕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각자 친구들의 장점을 찾아서 그에 맞는 상장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 친구는 나에게 엉뚱상을 수여했다. 그날 이 엉뚱상을 가지고 가족들과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에게 이 상은 그 어떤 상보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소중한 상이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받은 게 아닌 엉뚱한 나 그 자체가 장점으로 여겨진 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순한 아이 치고는 꾸지람을 꽤나 들었다. 나의 끊임없는 상상력이 어른들을 종종 괴롭혔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너는 왜 이렇게 산만하니?라고 물어보시면 나는 갑자기 산만큼 커진 내가 떠올랐다. 그래서 손을 크게 펼쳐 제가 '산'만 해요?라고 대답하면 선생님께선 혀를 내두르셨다. 나쁜 마음으로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던 것은 정말 아니다. 나는 그 저 산처럼 커진 내가 그려졌을 뿐이었다.


 9살 즈음의 어느 날은 갑자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장사도 했다. 꽃을 팔겠다고 동네에 있던 라일락을 꺾어다가 우리 아파트 앞에 터를 잡았다. 신문지를 깔아놓고 그 위에 꽃을 놓은 다음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아무도 사주는 사람은 없고 바람 때문에 날아다니는 꽃만 잡으러 다녔다. 아마 사람들을 어린애가 꽃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하지 그게 꽃을 팔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돈 한 푼 못 번 나의 첫 장사는 그렇게 하루 만에 끝이 났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이 되면 갑자기 필통을 부여잡은 뒤 아이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온 감정을 담아 발라드를 불렀다. 겨울이 되면 담요를 가슴부터 발끝까지 김밥 말 듯 돌돌 두르고 수업을 들었다. 어느 날은 해물탕을 먹다가 게딱지가 너무 예뻐 보이길래 게딱지 두 개를 깨끗이 씻은 뒤 양면을 붙여 통으로 만들고 그 안에 편지를 넣어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친구는 아직도 말한다. 네가 준 게딱지는 정말 잊을 수가 없는 선물이라고. 어쨌든 학창 시절 내내 나의 별명은 쭈욱 사차원 또는 엉뚱한 애였다. 


 대학에 가서도 나는 엉뚱하다는 소리를 꽤나 들었다. 경영학과였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내가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한 친구가 다가와 “네 머릿속에는 이런 게 들어있었던 거구나. 이제 좀 이해가 되네”라는 좋은 말인지 뭔지 모를 말을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점점 어른이 될수록 엉뚱함은 내가 감춰야 할 약점이 되어갔다. 왠 생뚱맞은 소리냐는 지적이 날 움츠러들게 했고 쟤는 참 특이하다는 말은 나를 외롭게 하기도 했다. 


 내가 회사에서 할 일은 분명했다. 해외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규격에 맞게 생산 주문을 넣고 원하는 날짜까지 배로 운송해주기. 쏟아지는 고객의 요청에 맞추어 하루를 보냈다. 나는 많이 지쳐갔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반복의 연속이었고 숫자가 빼곡히 담긴 엑셀 시트는 기본 다섯 개가 띄워져 있었다. 일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이 문제였다. 반복적이고 계산적인 사무작업. 


 그러다 어느 날 방 정리를 하며 내가 받은 엉뚱상을 찾아냈다. 그걸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찡했다.


맞아.. 나 엉뚱한 애였지

 

 나는 나에 대해 탐구했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했다. 그리곤 퇴사를 결심했다. 미술이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미술로 돈을 벌고 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유럽여행 중 가장 많은 아름다움을 느꼈던 프랑스에서 미술이 공부해보고 싶었다. 딱 유학자금을 모을 때까지 일을 했고 표현의 자유 그 자체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그 결정까지 엉뚱한 용기로 치켜세워주었다. 경영학과 공부를 하고 멀쩡한 회사 다니다가 퇴사하는 건 그렇다 쳐도 갑자기 예술을 공부하겠다며 미술과 프랑스어를 동시에 시작해보겠다니. 주위 회사 동료들은 쟤가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고 친구들 또한 복합적인 의미로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프랑스에서 4년을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꿈꿔보지도 않았던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삽화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씩 나는 내 엉뚱함에 정말 감사하다. 나의 영감은 지극히 엉뚱한 상상력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이 엉뚱함 덕분에 그림책 소재의 영감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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