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by 강여자


시작



시를 쓴다

시…


시를 쓴다고 앉아서 생각한다

시가 뭐지


시는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인가,

아니 그냥 삶인가


언니

언니도 사는 게 이렇게 힘들어요?

사는 거 참 별로다


그의 입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와도

왜 또 그러니 할 수가 없어


그랬던 적 있지

그랬어도,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말해도 될까


삶이 그리 첩첩산중이어도, 그래도

괜찮아…

질 거라고 말해도 될까


시를 쓴다고 앉아

그를 떠올린다

그가 시인양






국어를 좋아하면 문학을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는 줄 알았다. 분명 많은 시를 읽었는데,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왜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공부하는 문학과 향유하는 문학을 다르게 생각했던 탓인지도 모른다.별 뜻 없이 시작한 글쓰기 수업에서 시를 써보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 좀 난감했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지'로 시작된 질문은 곧 '시가 뭐지'라는 의문으로 나아갔다. 그렇게나 오래 공부했는데, 답은커녕 질문조차 처음이라니.



아니다, 언젠가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학부 시절, 시작 수업 첫 시간을 청강한 적이 있다. 현역 시인이던 교수님이 물었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시는 대상에 대한 나의 시선이라고 대답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 사람의 답에 설득되었던 것일까. 교수님은 모든 학생 답을 듣고 말했다.



“그럼 자기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해 봅시다.”



다들 당황하면서도 단어 하나씩을 내뱉었고, 나는 나를 ‘초록’이라 했다. 그때 교수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을 표현할 때 명사를 쓰지만, 생각의 경험이 쌓일수록 동사로 표현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면 '웃어 보인다'라고 말하려나. 그 말 뒤에 교수님은 “이제 그 단어를 이용해 한 학기 동안 시를 써봅시다”라며 수업 방향을 정했다.



그 수업의 수강신청에 성공했다면, 조금 더 일찍 시를 쓰게 되었을까. 수업의 주제는 다수의 답변에 따라 정해졌지만,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 시’라는 건 시의 범위를 너무 많이 좁힌 것이 아닌가. 조동일 선생이 서정 장르를 ‘세계의 자아화’라 정의했던 것이 떠오른다. 정작 시가 뭔지 몰라 멈춰 있을 때는 생각나지 않다가, 문득 문득 기억나니 얄궂은 일이다.



시를 쓰겠다고 앉아, 하얀 화면 위에 물음표만 그리고 있었다. 그때 J에게 전화가 왔다. 발달 센터 대기실에서 만나 가끔 안부를 묻던 우리는 이제 서로 연민하는 친구가 되었다. 각각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며 주에 한 번 만나 개론서를 읽던 시절, 책 속 사례를 자기 이야기로 바꿔가며 공부했다. 각자 하루치의 슬픔과 일과를 감당하느라 타인의 슬픔을 볼 여유가 없었던 시절인데, 돌아보니 그렇게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속담을 농담처럼 주워섬기며 같이 울기보다는 깔깔대는 쪽을 택했다. 정말 달라 보였던 우리 두 사람이 실은 웃음을 연료로 살아온 동류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그날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언니, 언니도 사는 게 이렇게 힘들어요? 사는 거 참 별로다.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안 어울리게 왜 그래' 하며 웃어넘겼을 텐데. 인간은 한없이 경멸한다면서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이가 많은 그가 그해에만 두 번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 놈의 팔자가 그런가. 내 팔자는 대지도 못할 것 같던 그날, 누군가를 대신 원망했다.



삶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에는 괜찮아진다고 믿는 나조차 그날만은 입을 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살고 싶지 않던 시절이,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지가 생생히 떠올랐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조차 잘 알았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쓰다만 시를 바라보다, 그를 생각하던 그런 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시를 쓰고 있다.




#그의이름을딴시였다

#강여자시에세이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