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실험
어린 코끼리는 밧줄에 묶여 자랐대
처음엔
발버둥도 쳐봤겠지
해볼만큼 해보고는
더이상―
노력하지 않게 된다더라
그걸 사람들은 무기력이라 불러
교육학을 공부했어
나를 탓할 말이 될 줄은 모르고
형광펜 밑줄 긋고 닳도록
외웠었어
잘 잤니?
배고파?
나는 분명 말하는데
너는 답하지 않으니
이게 혼잣말일까
아니
너는 내 말을 듣고 나는 니 마음을 보니
이건 대화겠지,
우리 함께 있는 거지-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혼잣말이구나 하는 것은
성체가 되어설까
두려워,
진 것일까
밧줄 끊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혼잣말이 되고 만다.
교육학을 공부했다. 독서실에 박혀 보낸 세월만 꽉 채워 3년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진 않았지만, 아이들과 만나 수업한 건 대략 십 년쯤 된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아이들은 대체로 나를 좋아했고 나 역시 수업할 때 신이 났다. 우리는 궁합이 좋았다. 오래도록 교육을 업으로 삼았던 만큼, 아이를 어떻게 기를지 고민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믿었다.
내 꿈은 엄마표 교육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삶이었다. 국어를 가르쳤던 나는 아이가 돌이 되기 전 동화 구연을 배웠고, 돌 무렵부터 독서 논술로 시야를 넓혔다.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함께 읽고, 영어를 배울 나이가 되면 같이 영어 공부를 하는, 그런 미래를 그렸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에게 장애 진단이 내려졌을 때 나는 다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너무나 낯선, 자폐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장애를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알았던 거다. 전공 첫 시간, 하필 자폐성 장애 어머니의 삶을 다룬 영상으로 수업이 시작됐는데 한참 철 지난 그 영상에서 엄마는 아이를 살해하고, 뒤이어 자살하려다 실패했다. 그날부터 서서히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였다. 자폐는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꿈을 수정해야 했다. 딴에는 애를 써도 아이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함께 공부하는 삶은 더더욱 멀게 느껴졌다. 20개월부터 사교육을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만나도, 말하려 하지 않는 아이를 말하게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만 세 살부터 여섯 살 사이에 가장 불안정했다. 쉬이 잠들지 못했고, 집중도 어려웠다. 사랑스러웠지만 함께 있는 시간은 말할 수 없이 고됐다. 그럼에도 그 시절 나는 가장 열심히 살았다.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부터 아이와 함께 치료실을 돌았다. 아이가 마침내 잠이 들면, 새벽까지 읽고 썼다. 그런다고 정작 배운 것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진 못했다. 그게 나의 한계였다.
왜 그때 좀 더 매달리지 못했을까,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배운 걸 왜 쓰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이기 때문에, 아픈 말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회피형 인간일지도 모른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닐까. 너무 많은 일을 벌인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살려고 그랬다고, 내게 변명하곤 한다.
다른 한편으론 교육학에서 배운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용어를 떠올린다. 어릴 때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는 성체가 되어 힘이 세지고도 약한 밧줄조차 끊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했던 수많은 시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눈물 흘리고, 또 조금씩 무너졌다. 지금 아이는 부쩍 자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밧줄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말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에게 시시때때로 묻는다.
“어디라고?”
“나가자고?”
이게 대화일까, 혼잣말일까. 가끔, 텅 빈 눈동자로 눈물 흘리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모든 사람이 같을 수 있나. 우리 아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사랑스러워, 매일 기쁨을 준다. 그런데 뭘 그리 안달복달하나. 함께 사는 강아지에게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인데, 왜 자식에게는 이거 해라, 저거 돼라 바랄까.
‘혼잣말’이라는 글감을 받아 들고 며칠째, 나는 코끼리 실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