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숲에서 시작.
올봄부터 도서관에서 듣고 있는 수업 이름이다. 시의 감상을 나누고 창작시를 발표한다. 시를 쓰다니,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시를 피해왔다. 시를 읽으면 울음이 터질까 두려웠다. 왜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작년 가을, 선생님의 다른 수업을 듣다가 얼떨결에 시 쓰기를 경험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책 읽고 글 쓰고> 라는 수업이었다. 다른 이름이라면 수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놓고 말하지는 못 해도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생각했기에, 끌렸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났다.
사람이 중년이 넘어가면 남의 이야기 듣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독백하기 바빠지던데,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셔서 놀랐다. 나 역시 잘 들어주는 편이지만 아프고 괴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힘들어 피하고 싶던데 신기했다. 이런 어른은 오랜만이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어도 시를 썼을까. 선생님을 만난 후 나는 비로소 시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되었다.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시라고 하면 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격려 덕분이다. 말은 무엇도 된다 하고 냉정히 평가 하면 금세 움츠러 들었을텐데 진솔한 응원을 해주신 거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지?'
끝없이 질문했지만 이제는 그냥 쓴다. 산문을 쓸 때처럼 다 내려놓고 생각나는 대로 쓴다. 시도해 보는 건데 좀 부족해도 어떤가 싶어서. 우선 써놓고, 고치고 또 고치면 좀 시다워 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니다 싶을 때 좀 두어 보면, 나중에 시가 되면 또 어떤가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숙제도 새로운 원동력이다. 생각해본 적 없는 글감으로, 방식으로 쓰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빈집’이라는 글감을 받아들고, 처음엔 난감했지만 점점 깊숙이 빠져들었다.
빈집.
이 단어가 주는 심상이 무거워 몇 번을 울었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솔직한 사람이지만, 내게도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담고만 있기엔 미안해, 잊지 않고 들여다봐야 했다.
섬집 아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안녕, 하라고 했다
어미가 저 살자고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한다고
애쓰지 않아도
잊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
미안해
미안해
안. 녕.
굳이 말 안 해도
보내고 울텐데
차마 그 말 못해
빈 집이라도 껴안고
달집 삼아 활활
올해도
내년에도―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