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덮는 얼굴이 있다
손 내밀어도
만져볼 수 없는
눈 안의 얼굴
까만 원피스
검댕 묻은 손
맨발의 아이야
그 자리에 있어,
손 놓은 적 없었다고
말해 줄래
젖은 골목길
점멸하는 사이렌
집, 집, 집들
거기,
비척비척
무너질 듯 달리는
짐승 같은 여자가 있었다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그토록 하기 싫던 양수검사를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다. 니프티 검사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결국 기다란 바늘로 양수를 뽑았다. 6개월간 품어온 사내아이가 뱃속에서 틈틈이 태동을 하던 때.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걱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생각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결과가 나온 뒤에 생각하겠다며 멍하니 길을 걷고 의미 없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올케와 걷다가 예쁜 아기 옷을 보았다. 신생아가 입는 아주 작은 옷이었다. 옷을 들었다 내렸다 망설이니, 옆에서 올케가 말했다.
“너무 예쁘다, 사요.”
그래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잘못되면 어떡해요.”
착하고 악의 없는 그는 희망을 담아 말했다.
“그런 일 없어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는 세상에 나쁜 일이라곤 없어서 나도 늘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더 이상 어리지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지도 않아서 알고 있었다. 내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 옷은 사지 않았다.
이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일흔이 넘은 엄마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거라는 것.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것. 먼 미래의 이별이길 바라는 한편 어떤 이별이건 마지막은 내가 지키길 바라는 욕심을 품고 산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이 바쁘다. 최악을 가정하고 각오한다는 계산이었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한 시간여를 찾아 헤맸던 검은 골목길을 잊지 못한다.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고, 또 일어나도 준비가 될 리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별의 날이 곧 또 올 거라는 가정은, 잊으려는 마음에 뿌리는 소금 같은 것이었을까. 진정하자, 정신 차리자, 수없이 말해온 삶이지만 나는 요즘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이번에는 찾았는데. 이 얼굴은 만져볼 수 있는 얼굴인데, 만질 수 없는 순간 속에 스스로 갇힌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눈 안의 얼굴. 감은 눈 속의 아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다. 만져볼 수 없어 아픈 얼굴. 그 얼굴이 정확히 어느 아이의 얼굴인지 잘 모르겠다. 미친 듯 아이를 찾아 헤매던, 숨 쉴 수 없어 괴로워하는 여자의 얼굴만 아는 얼굴일 뿐이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이 악물고 오늘을, 내일을 사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