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대교
어묵을 7,400원어치 먹었다
모퉁이 부산어묵이 기다린 것만 같아,
곤약 1,000원
모둠 어묵 3,600원
잡채 어묵 1,600원
물떡도 안 먹을 수 있나
버스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통영 가는 길
큰 강씨, 작은 강씨 먼저 보내고
늦게 가는 길이 돌아가도
어찌나 가볍던지
썬캡에 진홍 등산복,
완벽 수비한 어머니들이 퍼져 앉아
쑥 캐는 모습에 푸시식
곧 벚꽃 만개할
산등성이 일루소도
새삼 눈 도장
저기
마창대교,
바람도 잠시 멎는 다리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남아
무엇을 그리 몸에 새겨
어느 핸가 고성 초입부터
숨이 턱 막혔다
이제 좀 털고 넘고 싶어서,
이 다리를
자작시, <마창대교> 전문
그 다리를 건너 통영으로 간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항구 도시, 통영. 백석과 유치환의 시가 머문 곳이지만 내게는 오랫동안 숨이 막히던 도시였다. 차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데, 마음의 거리는 평양과 서울보다 멀었다. 어쩌다 ‘통영’이라는 말만 들어도 목구멍이 조여오고 숨이 막혔다.
그곳은 내게 시댁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과장이 아니다. 고성 부근에만 가도 숨이 막히던 시절이 있었다. 뭐가 그리 남았기에, 무엇이 이 몸에 새겨졌기에.그 질문을 품고 십 년을 살았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며느리의 시간을 압축한 속담이 있다. 결혼한지 만 십일 년이 되었으니 나도 그 정도 시간은 지난 셈이다. 며느리로 살기에 시절도 꽤 좋아졌고 시어른들도 사람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 평범한 분들이라 시집살이라 할 만한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시댁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결혼 후 내 안에는 말의 무덤이 생겼다.
조상이 있으면 아가 이렇나
친정엄마는 설거지통에 코 박고 죽고,
시엄마는 골방에 쳐박혀 죽는다
친정 엄마 유산 아니가
씻거삐라
그러려고 친정 옆에 데려다 놓은 거 아니가
너는 감기도 걸리면 안 된다
손주 키워줘봐야 덕도 없는데
맥락을 수백 번 생각해본 말들이다. 성품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지만, 상처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애를 써야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니 되도록 모른척하고, 오해가 될 말은 주고 받지 않으려고.
서른여섯에 결혼해 마흔 여섯이 되었다. 결혼 후 십일 년은 글쎄, 정말로 낯선 세계여서 가끔 아득해진다. 나는 결혼을 대체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 모든 걸 알고도 정말 결혼했을까.
엄마는 늘 말했다. "우리 딸 착하니까 잘할 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착하니까. 오 년쯤은 좋은 며느리가 되려 애썼고, 다시 오 년은 '시댁'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빛이 달라졌다. 뜨거운 가슴은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불 같았다. 그 불길 속에서 십 년을 돌아 알게 된 게 있다. 무리하는 습관은 나 자신도, 관계도 망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난 십 년간 나는 무리해온 것이다. 마음에 없는 일을 나서서 한 적도 있고 마지못해 따른 적도 있다. 분명한 건 최종 결정을 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거다. 그러나 더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솔직해지라고 말할 것이다. 마음을 숨기지 말라고. 진짜 관계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저 애증의 마창대교를, 이제는 조금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