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너를 만난 후로
온 세상 사랑 노래가 다 너인데
그 시간만큼
네가 없는 삶을 생각했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숨이 막혀 와―
엄마란
스스로 벌 주는 사람인가
먹이고 입히고
물고 빨면서도
마음으로 항상 가방을 본다
엄마의 엄마는 6년을 있어 주지 못 했으나
나의 엄마는 46년을 있어 주고도
'엄마 도망간다'
입버릇처럼 말하였다
여태 엄마가 되지 못한 나는
평생을
농담인 줄 알았지만
너 자꾸 그러면
'엄마 도망간다'
돌려 돌려서 뱉고 나서야
그 얼굴을 보았다
다 뱉지 못한 말이었다
*「모든 날, 모든 순간」(폴 킴) 일부 인용
'엄마 도망간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여러 번 들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다. 농담처럼 자주 하시는 데다 당신 성정 때문이다. 세상 성실한 우리 엄마 강여사님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또 책임감이 강한 분이다. 도망이라니. 엄마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류일 것이다.
올해 일흔넷 엄마는 친목 모임도, 여행도 즐기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모여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면 충분하다는 실용주의자다. 그런데도 어쩌다 행사가 생겨 집을 비울 때는 늘 너무나 홀가분하다는 듯이 신이 나서 말씀하신다.
"엄마 도망간다."
그런 면에서 엄마가 참 실없다고 생각해왔다. 정말 도망갈 것도 아니면서 매번 도망간다니. 명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 역시 같은 감정을 자주 느끼면서도 그 마음을 몰랐다.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라고 생각했던 걸까.
일하는 엄마인 나는 그 존재만큼이나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에는 늘 미안하고, 함께 있을 때는 버겁고 힘들다. 아이가 외출할 때면 진심으로 마음 한구을 내려놓곤 한다. 방금 전까지 숨쉴 구간을 놓쳤다는 듯이 큰 숨을 쉬는 것이다. 후―. 갔구나. 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매일을 그렇게 도망가는 중인 거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를, 일을, 짝을 찾으며 평생을 나, 나. 오로지 나만 알다가 다른 존재에게 영혼의 반을 내준 것이다. 온세상 사랑 노래의 주인공이 아이가 되었다.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폴 킴의 노래 「모든 날, 모든 순간」은 들을 때마다 실제로 울컥하곤 한다. 아이가 없는 순간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된 지 십 년. 나는 무엇을 믿고 덜컥 엄마가 된 것일까.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했을까. 이 생각이 너무나 진지하고 절절해서 웃플 지경이다.
한 가지 행동을 1분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아이를 기른다. 세 음절 이하의 짧은 단어를 연거푸 말하는 아이에게 곱절, 아니 몇 곱절의 긴 답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숨이 가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잊는다. 자극과 반응. 우리 모녀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유아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눈을 떼기 어려운 아이인데도 다른 곳에 생각을 내려놓고 싶다.
매 순간 일희일비, 빠뜨리지 않고 기뻐하고 슬퍼한다. 함께 있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움직이는 아이를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다가, 혀 끝까지 나쁜 말이 맴돌기도 한다. 오늘은 결국 말했다. "자꾸 그러면 엄마 도망간다." 번뜩 엄마 생각이 났다. 아, 그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게 다 뱉지 못한 말이었구나.
무슨 말을 한 거지. 뱉자마자 깨닫고 "아니야. 엄마가 힘들어서 그랬어. 엄마는 꿈꿈이 없으면 못 살아." 참담한 마음을 말로 다 못하고 한참 스스로 벌을 주고 나서야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몇 번이나 가방을 쌌을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은 자전적 에세이『자라지 않는 아이』에서 발달 장애를 가진 딸의 이야기를 썼다. 아이 다섯 살 때 읽었는데, 아직도 제목이 잊히지 않는다. 이 시간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을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라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나의 엄마 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