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앞에서

by 강여자


파도 앞에서



작은 아이가 파도 앞에 섰다

소녀라 불리기도 너무

작다


제 몸의 두 배는 되는

파도 앞으로

전진


밀쳐진다


다시 전진

파도는 단호하다


전진


6월의 햇살 좋은 날

아이는 맞서는데

파도는 밀어낸다


새파란 하늘

하얀 파도

작은 아이


발짝 뒤 어미는 내내 마음 졸이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파도와 아이를 본다


막막한 파도 앞

먹먹한 어미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파도 앞에 선 작은 아이. 다섯 살 아이가 지칠 줄 모르고 뛰어들던 그 파도가 거대해서, 그 앞의 아이가 그렇게 작은데 또 너무 거대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 여름 내 기분은 종종 그랬을 것이다.



"꿈꿈이가 엄마 말을 이해하는 것 같으세요?"



아이를 일 년째 보아온 선생님이 어렵게 꺼내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전혀 몰랐다. 돌이 되기 전에 단어로 말하던 아이다. 엄마의 억양을 따라 말하고, 동화 구연을 하면 울다가도 그치고 엄마만 보았다. 소통의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15개월 이후로 말을 안 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부터 병원과 치료실을 오가다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특수학교 유치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시간 앞에 던져졌다. 6개월의 공백기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일대일 수업을 받고, 집에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었다. 2시부터 3시까지 한 시간 더 치료를 받고 나면 운동 시간.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내키는 대로 다녔다.



그렇게 아이와 단 둘이 간 바다였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면 인지가 좋아진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둘 다 바다를 좋아했다. 한 시간 거리에 해수욕장이 여럿 있었다. 부산도 가까웠는데 거제도 흥남 해수욕장을 자주 갔다. 유난히 파도가 세서 서핑족들이 찾는 바다였는데 주차장과 해변의 거리가 가까워서 다니기가 편했다.



해수욕장 개장 전 오뉴월에도 종종 바다에 갔다. 한산한 바다의 정취가 좋기도 했지만 남의 이목을 끌지 않는 곳을 유난히 찾던 시기였다. 한 시간을 달려갔는데 그날은 유난히 파도가 셌다. 모래사장 조금 걷다 가자 생각했는데, 아이는 잠깐 쳐다볼 새도 없이 바다로 성큼성큼 전진했다. 다행히 입구 컷이다. 물이 들어오는 중이라 입수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명조끼도 입혔겠다, 입수도 안 되겠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는 게 나을 것 같아 하는 대로 두고 보는데 파도가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다. 정말 발도 못 들여놓는데 아이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달래도 보고, 어르기도 했지만 아이는 끝도 없이 파도와 대치했다.



할 수 없이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 하고 말았다. 파도의 높이에 기가 질리고, 아이의 근성에 혀를 내두르고. 앞으로 이렇게 끝없이 세상 밖으로 떠밀리는 것은 아닐지 슬퍼졌다가, 저 근성으로 살면 뭔들 못하겠나 싶다가. 결국 파도와 아이의 거대함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후로 다시, 본 적 없는 파도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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