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강여자 님는 원체 과묵해 자기 할 일만 하고 어디 가 앉아 한 마디 얹는 일이 없어 타고난 성품인 줄 알았더니 이제 일흔 넘어 조금 여유 생기고서야 묻지 않아도 줄줄줄 말문이 트이셨는지 옛날엔― 그땐― 하는 말 중 팔 할이 누구 은혜를 입었다거나 누가 참 잘해줬다라 그 사람 엄마한테 나쁘게 했잖아 되물으면 힘들어 그랬을기다 변명에 색 입히기 바빠 내가 누굴 닮아 이리 리프레이밍을 하나 싶었더니 그게 로봇 같던 우리 엄마였구나 번쩍 하는, 엄마 인터뷰
우는 아이를 등원 차량에 태워 보내고 울적한 기분으로 앉았다. 그때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문상 갈 일이 있다신다. 청주라니, 가본 적 없는 도시다.네비를 찍어보니 고속버스 출발 시간과 목적지 도착 시간이 거의 같다. 다른 차편을 알아보고 부산역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출발 전부터 그 먼 데를 직접 가야 되는지 여쭤봤는데 꼭 가야 하는 자리라고 했다. 딸내미가 굳이 태워드리겠다고 해서 미안했는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제 쓴 글에 이어 쓰면 좋을 것 같아 굳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녹음 파일에서 언젠가 이 파일을 남겨두어 다행이라며 오늘의 나를 칭찬할지 모르겠다.
엄마(이하 M). 갑자기 면접을 본 거지.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냐 하면, 이모부가 반장한테 속닥거려 가지고 반장이 차장한테 말을 잘 해서 차장이랑 면담하고 취직이 된 거야.
거기가 3교대에다가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 나오지, 학자금 다 나오지, 경쟁률이 엄청 세. 그래서 여자 두 명 뽑는데 칠십 명인가 팔십 명인가 왔어. 근데 뽑힌 사람이 하나는 차장 처가 식구고 나머지가 나인 거야. 그때 남자 직원 뽑는 데도 백오십 명인가 왔는데 남자는 일곱 명 뽑았어.
취직해 들어가니까 여기를 어떻게 들어왔냐, 너 누구 소개로 들어왔냐고 여자들이 공격을 했어. 그 회사에 천 명이 넘게 다니는데 사람들이 ○○씨 애인이냐, △△씨 애인이냐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은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해서 다닌 거다, 거기를.
그렇게 들어갔는데 그 공을 어찌 잊어버리겠냐. 이모부만 노력해서 취직을 시켜줬으면 괜찮아. 그 이모부가 반장한테 속닥거려서 밥 사고 술 사 먹이고, 지금 돌아가신 그 반장이 차장한테 말을 잘 해서 차장이 뽑아준 거라. 갑자기 면접을 보려니까 그때 엄마 손톱이 길었거든. 그래서 이 손을 얼마나 꼭 쥐고 있었는지 나와서 보니까 손톱자국이 다 났더라고. 매니큐어 보면 아줌마 일하겠냐고 할까 봐.
그전에는 합판 공장에 다녔거든, 나무 베어다가 합판하는 공장. 작은할아버지가 거기 다녀서 그래서 다니게 된 거야. 한 6개월 정도 다녔는데 면접 때 거길 다녔다고 얘기했더니 그 힘든 일도 했는데 이걸 못 하겠냐고 하더라고. 사람 키 넘는 합판을 들어서 올려 봐라, 죽는다. 지금 같으면 그걸 하겠나. 못 한다. 그렇게 취직시켜 준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가봐야 안 되겠나.
딸(이하 D). 아니, 거기는 꼭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M. 옛날에는 자기 줄이 없으면 못 들어갔어. 보너스가 두 달에 한 번씩 나오는 그런 회사가 어디 있노. 거기 들어가서 우리 밥 먹고 살았지. 아, 내가 고생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도 터가 없으면 못 버는 거 아니가. 터를 만들어 줬으니까 엄마가 그 좋은 일을 했지. 일할 자리를 만들어줬으니까.
D. 취직시켜 준 이모부 산소도 그냥 못 지나가길래, 그 취직을 한 사람이 시켜준 줄 알았지. 취직 시켜준 사람이 뭐 그렇게 많아?
M. 내가 은혜를 입으면 그거는 죽어도 못 잊어. 이모부하고 반장하고는 못 잊어. 그 양반들 덕분에 우리 새끼들 고생 안 시키고 살았지. 아니었으면 아직도 서울 단칸방에 산다.
D. 다행히 바람은 안 피웠네? (웃음)
M. 그 양반이 바람은 안 피우는데 얼굴이 반지르하게 생겼어, 남자가.
D. 사람들이 바람둥이라고 했다면서?
M. 아니,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생겼어. 그리고 엄청 사람이 싹싹해. 그러니까 여자들이 따라.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나는 술도 같이 안 먹어봤어. 엄마는 항상 바빠, 항상. 지금이나 그때나. 어디 앉았다가도 빨리 가야 돼.
D. 건사할 식구가 참 많지요.
M. 조금 궁뎅이 붙이고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얘기도 좀 하고 놀고 남의 험담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거 싫어. 그냥 내 볼일 보면 딱 일어나서 와 버려야 돼, 느그 집 가도 마찬가지고. 우리 손자 때문에 내가 가면 하룻밤 자고 오는 거지, 안 그랬으면 자고 오지도 않아.
D. 아침에 그 손주 울면서 어린이집 갔는데.
M. 우리 애기가 왜?
D. 일어나기 싫다고, 잘 거라고. 밤에는 안 잔다고 울고, 아침에는 안 일어난다고 울고. 원래 잘했는데 요즘 조금 안 좋은 거지. 울면서 보내서 기분이 너무 안 좋네.
M. 그게 부모다, 그게 부모.
어제 모임에서 결핍이라는 글감이 주어져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썼다. 집이 어려워서 엄마의 시간도 관심도 내 것이 아니었다는 글이었다. 이십 년지기가 그 글을 읽고 엄마는 오히려 과도하게 애정을 주시는 분이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 그렇다. 어릴 때는 힘들었지만 형편이 나아지면서 지금까지 엄마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의 결핍은 고등학교 이전 버전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잘해준 건 생각 안 나고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아이 낳아 기르는 현실이 답답할 때마다 괜히 결혼했다며, 괜히 아이 낳았다며 투덜거리지만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며 알게 된 것이 많다. 이놈의 엄마 노릇이 이 고생을 하면서도 죄책감만 들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 자리인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 같은 자리에 가봐야만 그 입장을 알 수 있더라고.
엄마가 되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엄마를 위한 일인 줄 알았는데 날 위한 일이었다. 나는 요즘 자꾸 엄마를 인터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