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는
내내 멀미에 시달렸다
바다가 원래 이렇게
아름답고
어지럽던가
삶은 종종 무채색인데
여행은 이토록 새파래
숨도 쉬지 말고 놀아-
여행을 뒷배 삼아 삶을 꾸리는
그의 말이 아름다워
나는 웃었다
호핑
나팔링
스노클링
이국의 말은
이국의 파도처럼
귓가에 내내 출렁출렁
실내에 또아리 튼 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아
고래상어는 지켜져야 한다 했는데
반딧불이는 박수 소리에 꾀여 죽었다
리조트 앞 해변은 그림 같지만
원주민은 그 바다를 볼 수 없겠지
왓 해픈?
와이 크라잉?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다사로워
나는 아이 대신 울음을 그쳤다
두 발 딛고 걷는데도
내내 출렁이던 여름이었다
'언젠가 세계 일주를 할 거야.'
고2 때부터 세계 일주를 꿈꿨다. 한비야의『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2』를 백 번쯤 읽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여행을 자주 하지 않는다. 여행보다 중요한 일이 늘 있다. 난 나를 잘 몰랐던 게 아닐까. 계획 없이 훌쩍 떠날 수 없는 입장이 된 후로 더욱 여행에 무감해졌다. 해외에 가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정작 출발하는 날이 되면 마음이 딴 곳에 가있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보홀은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다. 고래상어와 바다거북, 니모를 볼 수 있는 바다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환호할 것이었다. 대자연에 반응하는 심장을 가졌으니까.
자정을 넘겨 공항에 도착해 새벽에 잠들었다. 7시에 호핑 투어가 예약되어 있는데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나서보면 알겠지, 한 것이다. 모터보트를 타고 3시간 정도 인근 섬에 다녀오는 투어였다. 스노클링을 하면 바다거북과 열대어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배를 타며 깨달았다. 멀미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한 시간을 제외하고 내내 누워 있었다. 먹은 게 없어 물만 토하다 육지에 내렸을 때 깜짝 놀랐다. 땅 위인데 배 안에서 느꼈던 어지러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여행 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멀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메니에르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어지럼증, 난청, 이명, 이충만감…. 십 년 전에도 같은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내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상태로 그 섬을 보았다. '예약한 건 하고 가야지. 다음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나의 삶은 늘 이런 원리로 작동한다. 즉흥적으로.
필리핀의 작은 섬 보홀은 한창 개발 중이었다. 분명 아름다운 곳인데 삶이 끼어 들어 즐길 수가 없다. 첫 숙소 옆 단층집들은 개발을 기다리는지 수리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고, 날은 푹푹 찌는데 아이들은 맨 발로 바닥에 앉아 흙장난을 했다.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라더니 프라이빗 비치를 품고 있는 리조트는 높은 담장에, 무장한 경비가 출입 인원을 모두 확인했다. 그들의 바다인데, 내가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알량한 생각이다.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나 역시 열심히 일해야 간혹 누리는 호사였다. 그들의 생업을, 산업을 뭘 안다고 평가하는가. 나의 사고는 쉴 틈이 없다.
육상 투어에 포함된 작은 동물원에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만져보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 판매하는데, 뱀은 미동도 없다. 환경이 열악하다. 동물애호가는 아니지만 속이 꼬인다. 뱀은 어떻게 만져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걸까. 약에 취한 건 아닐까 생각하니 더는 동물원 코스를 따라갈 수가 없다.
반딧불이 투어는 또 어떻고. 요란하게 박수를 치면 반딧불이가 움직인다. 그때 손 안에 잡을 수가 있다. 잡고 싶은 마음과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직접 잡지는 않았지만 한 마리를 만져보았다. 생명이 다했는지 버스 안에 떨어져 반짝이기에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이동했는데 결국은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 숱하게 잡은 모기, 초파리, 집개미에겐 그런 적 없지 않은가.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작년까지 보홀에서도 고래상어를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왜 올해는 볼 수 없냐는 어린이의 질문에 가이드가 답한다. 고래상어를 사람이 있는 곳으로 불러올 때 새우젓을 많이 뿌리는데 그게 바다를 오염시킨다고. 상어가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해안 근처를 떠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자연보호가 문제라면 어째서 같은 나라 안에서 어느 바다에서는 가능하고 어느 바다에서는 안 되는 건지 의아했다. 무엇 때문이건 고래상어에게 좋은 일이길 바랐다.
그럴까. 정말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걸까. 생각을 많이 한다고 결론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책과 미디어를 통해서 여행을 배웠다.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 특별한 일 없이 온 것은 처음이다. 메니에르 때문일까, 보이는 것들이 어쩐지 서글프다. 아름다움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보러 온 걸까.
마지막 날,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울었다. 이미 너무 많이 먹어 달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이 물었다. “왓 해픈? 와이 크라잉?”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노인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본 척 만 척하던 내게 그 말들이 툭툭 날아와 박혔다.
그를 만나러 그 섬에 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