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행복은 춤추는
소녀인 줄 알았지
쪼그만 발에 토슈즈
머리 위로 동그라미
빙그르르르 도는 춤이거나
제 몸보다 큰 가방 메고
뒤돌아 손 흔들고는
들썩들썩 뛰어가는 춤이거나
아빠 발등 밟고 서서
쿵짝짝
돌고 도는 춤이거나
엄마 이불 동굴 삼아
키득키득
간질이는 춤이거나
하지만-
내 소녀의 춤은
야무지게 양손 쥐고
쿵쿵쿵
위아래로 점프하는 춤
아빠 손 마주 잡고
이크 에크 이크
택견 하는 춤
엄마 요리 지켜 서서
발 동동
재촉하는 춤
달처럼 방싯대는
덩실덩실
계산 없는 춤
행복은 너의
춤
내게는 '행복'에 대한 심상이 몇 개 있다. 긴 머리의 작은 소녀가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뛰어가다 말고 뒤돌아 손 흔드는 모습. "엄마, 안녕~~" 하고 뛰어가 친구 손 잡고 재잘대는 모습. 엄마 이불 안으로 파고들어 "엄마만 알고 있어야 돼." 하며 비밀을 털어놓으면 엄마는 또 "언제 이렇게 컸어." 하며 간질이는 모습. 그리고 토슈즈를 신고 빙글 도는 모습. 아빠 발등 위에서 깔깔대며 춤추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이상하게 행복은 항상 소녀의 모습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삶이 꿈꾸던 대로 되지 않더라도 꿀꺽 삼키고, 다시 힘을 내는 것이 아닐까. 내게도 절절하게 사랑하는 소녀가 생겼다. 처음 내 품에 안기던 날 낯선 생명체의 등장에 실은 깜짝 놀랐지만, 하루하루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의 어떤 사랑이 이런 모습일까.『베어타운』의 작가 배크만은 아이를 향한 사랑은 만나기 전부터 정해진 사랑이라 했지만, 나는 그에 더해 하루를 살면 하루치만큼 더 사랑하게 되어 끝없이 커지는 사랑인 것만 같다.
몇 해 전에 짧은 글 한 편을 읽었다. 장애인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평생 꿈꿔 온 이탈리아가 아닌 네덜란드로 여행을 온 것과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탈리에 가지 못한 슬픔에만 머문다면, 네덜란드의 풍차와 튤립을 감상할 여유가 없을 거라고 했다. 딸아이가 여섯 살, 감각적 예민함 때문에 잠도 잘 못 자던 무렵이었다. 나 역시 한창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이제야 의미가 속속 다가온다.
내 소녀의 춤은 평범하지 않다. 특별하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샀을 때, 좋아하는 곳에 갔을 때 아이는 양손을 야무지게 움켜쥐고 쿵쿵쿵 뛴다. 같이 춤을 추는, 사회적인 행동은 할 수 없지만 아빠의 이크, 에크, 이크 구령에 맞춰 엉거주춤 정도는 할 수 있다.
아침이면 전 날 장 봐온 음식의 재료를 다 꺼내놓는 아이.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옆에 딱 붙어 서서 지켜보다가 요리가 완성될수록 쿵쿵 발장단을 치며 활짝 웃는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엄마라는 본분도 잊고 좋아하는 것들은 몽땅 내어주고 싶어진다.
열 살을 꽉 채워 이미 엄마만큼 자라 버렸는데. 이 커다란 아이가 벌이는 흥겨운 춤이 온 세상을 밝혀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세상에 이렇게 무해한 존재가 있을까.
행복은 내 아이의 춤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