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죽어가는 요즘
갑자기 부활한 레이
경차 시장의 흥행이 죽은 지 오래다. 하긴 경차가 잘나가던 때가 '스파크'가 '마티즈'로 팔리던 시절이니 그간 시장 판도가 많이 바뀐 탓도 있겠다. 비록 가격대는 차이가 많지만 SUV가 흥행하면서 소형 SUV로 인기가 옮겨갔고, 경차의 가격이 오른 것도 한몫했다. 선택지가 모닝과 스파크밖에 없다는 것도 시장 쇠퇴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거의 양대 산맥 구도이던 경차 시장에 '레이'가 발을 들인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 시절 마티즈처럼 '이름을 날렸다' 할 정도의 판매량은 아니었다. 하필 경차 시장도 죽고 있으니 레이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당연히 희박하다. 그런데 최근 레이의 판매량 변동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음원 차트로 치면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레이 페이스리프트
"잘 넘어진다", "힘없다"
설움 딛고 부활하다
현행 레이는 지난 2017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2011년 출시부터 고유 정체성으로 남은 박스 형태의 차체를 유지하고, 헤드 램프, 테일램프 등의 외관 디자인, 그리고 실내 디자인 일부를 변경했다. 외관 디자인은 젊은 이미지에 모던함을 더하고, 통일된 디자인 요소들로 완성도를 높였다고 당시 기아차는 설명했다.
헤드램프 상단의 베젤과 하단의 LED 주간주행등 사이에 프로젝션 헤드 램프를 통해 인상 변화를 주었고, 주간주행등 하단에는 픽셀화된 방향지시등 디자인을 적용했다. 전면부 안개등과 후면부 리플렉터에는 시선을 유도하는 세로형 디자인을 포인트로 넣은 것이 특징이다. 이 패턴은 아웃사이드 미러에도 가로로 눕혀 활용하여 외장 디자인의 통일감을 노렸다.
2019년에는 2020년형 레이가 출시되었다. 전방 충돌 방지 보조, 차로 이탈 방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등의 주행 안전 기술인 드라이브 와이즈 옵션을 모든 트림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프로젝션 헤드램프와 LED 테일램프, 블랙 럭셔리 알로이 휠 등이 포함된 스타일 패키지 등의 옵션 선택 폭을 넓혔다.
2011년 출시 이후 무려 10년간 이름을 이어온 레이의 행보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차체가 높고 바퀴가 작아 잘 넘어진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오르막 등의 길에서는 차가 나가지 않아 힘이 없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여러모로 조롱을 당한 터라 설움도 꽤나 있었을 텐데 최근 들어 판매량이 갑자기 역주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판매량을 확인해보니 레이는 3개월 연속 3천 대 판매를 돌파하고 있다. 10여 년 전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라 말할 수 있다. 6월 3,223대, 5월 3,608대, 4월 3,808대로 3개월 연속 높은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기간을 넓혀보면 올해 상반기 판매량만 벌써 1만 8천 대를 넘겼다. 그랜저와 같은 베스트셀링카와 비교한다면 초라할 수 있지만, 모닝, 스파크 등 경쟁 모델들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레이의 판매량은 최근 들어 많이 나오고 있는 경차 시장 쇠퇴와 비교된다. 앞서 언급했던 마티즈 시절 연간 20만 대 판매고를 기록했던 경차 시장이기에 요즘의 경차 판매량은 '몰락'이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경차 시장 자체는 무너지고 있는데 레이의 판매량은 경쟁 모델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애매한 소형 SUV보다 확실한
'공간 활용성 좋은 경차' 공략
첫 번째는 소형 SUV 시장의 판매 부진이다. 생각보다 소형 SUV 시장은 그리 활성화되지 못했다. 셀토스나 코나가 소형 SUV로 불리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베뉴와 같은 더 작은 SUV를 말한다. 베뉴가 경차 판매량을 모두 흡수해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부진했다. 오히려 이 급의 SUV는 애매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베뉴는 출시 전부터 '차고를 높인 모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SUV라고 칭하지만 SUV스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차체가 워낙 작아 SUV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적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셀토스 급으로 넘어가자니 경차 정도의 가격대를 생각한 사람들은 꽤 망설여졌을 것이다. 요즘 경차가 많이 비싸졌다고는 하지만, 셀토스나 코나의 가격은 모닝이나 레이 가격과는 천지 차이다.
레이는 틈새시장을 공략했다고 볼 수 있다. 경형 SUV를 원하는 사람들은 경차지만 SUV 만큼의 공간 활용성을 원하기 때문에 찾는 것이다. 레이는 우수한 공간 활용성을 갖췄고 경차 혜택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 급의 차를 찾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다. 마치 카니발이 국내 미니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카니발도 버스전용차로 이용, 세제혜택 등을 받음과 동시에 높은 공간 활용성을 자랑한다.
경형 SUV는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 즉, 베뉴는 국내 경차 규격과 맞지 않기 때문에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 2단 러기지 보드, 러기지 커버링 쉘프 등 공간 활용성을 위한 아이디어는 빛났지만, 국가적 혜택의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차라고 할 수 있다. 베뉴의 단점을 레이가 커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 경차는 사실상 선택지 없어
거의 독점에 가까운 레이의 입지
과거에는 경차가 선택지가 꽤 많았다. 대우자동차만 해도 티코, 마티즈, 다마스, 라보가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현대차는 아토스, 기아차는 비스토와 타우너가 대표적이었다. 마치 요즘 SUV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듯 경차 선택지도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로 선택의 범위가 좁아졌다. 동시에 점점 몸집이 큰 차를 원하고, 공간 활용성이 우수한 차를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맞물리면서 모닝과 스파크의 한계도 드러났다. 레이는 경차 혜택을 받으면서 기존 경차들의 한계인 공간 활용성까지 갖추면서 사실상 경형 박스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차박' 열풍으로 이어진
레이의 우수한 공간성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과 같은 것일까? '공간 활용성 좋은 경차'라는 키워드를 꾸준히 밀고 나간 결과 오늘날의 차박 열풍과 인기가 맞물리게 되었다. 레이는 박스카라는 강점을 살려 차박 열풍인 요즘 자동차 시장에도 알맞은 자동차라고 홍보하고 있다.
경차 혜택에 우수한 공간 활용성, 여기에 차박 열풍까지 커버할 수 있는 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길이 3,595mm, 너비 1,595mm, 높이 1,700mm, 휠베이스 2,520mm로 국내 경차 규격을 충족하면서 뒷좌석 6:4 폴딩 시트를 풀플랫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경차의 이점과 차박 열풍과 적절하게 맞물렸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실내 공간은 그야말로 최고다", "힘은 없지만 잘 굴러가고 실내 넓고 말썽 없다", "실내는 넓고 편안하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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