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달렸습니다.
처리를 기다리는 서류, 음료가 남은 텀블러, 서평이 좋아 구입한 책들, 각종 필기구, 사무용품 그리고 충전 케이블이 뒤엉켜있다. 책상 어느 하나 쓸모없는 사물은 없지만 정리가 필요하다.
늦은 오후 내 머릿속은 어지럽혀진 책상과 같다. 업무에 집중하고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한번쯤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때 한바탕 달리기를 하고 나면 나의 뇌는 하우스 키퍼의 손을 거쳐 체크인을 기다리는 호텔 객실과 같이 변한다.
먼지 없이 깨끗해진 책상 위에 필요한 사물들이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인 느낌. 더군다나 이 느낌은 나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솜씨이다.
언제든지 달리고 난 후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책상을 누군가 치워 놓은 느낌을 받는다.
어느덧 이러한 경험과 느낌은 잦아졌다. 이제는 생각을 정리하고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일부러 달리게 되었다. 여러 생각과 고민으로 흔들릴 때, 해결되지 않아 진척 없던 일들에 순서가 정해지고 우선순위가 가려진다. 잡념으로 가득 찬 뇌 속에 경계가 생기고 정말 중요한 일을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달리기 전에는 술이 대신했었다.
술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잊을 수는 있었지만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기는 달랐다.
우렁각시가 다녀간 듯 머릿속을 먼지하나 없이
시원하게 물로 씻어낸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서류도 문서의 종류와 중요도에 따라
달리기가 나를 대신하여 정리해 주었다.
달리다 보면 의도하지 않던 여러 생각과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부정적인 기분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한다. 꼬였던 실타래의 실마리가 찾아진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달리기 마일리기가 가장 길었던 해에 논문을 가장 많이 썼다. 우울한 기분은 달리고 난 후 거의 남지 않았다.
달리기는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한 최고의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