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사랑하는 여자라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믿었던 그녀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어디 빠지는데 없는 잘난 남자와의 깊은 애정은 그녀의 행복을 든든하게 지켜 주었다. 그렇게 사랑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어느 날 배반이라는 이름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자존감 있는 지성을 가진 여자였다. 똑똑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사랑 때문에 그깟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 하나 때문에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그녀 하나밖에 사랑할 줄 몰랐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믿을 수없었다. 남자의 외도는 그녀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용서를 구하는 남자를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그녀는 그렇게 병든 나무처럼 서서히 죽어갔다. 남자는 용서를 구했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고 다시 돌아와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지만 그녀에게 그런 남자의 사랑은 이제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의 시계는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
그녀는 질문하고 답한다. "네가 사랑한 남자는 누구야" 나만을 사랑해 준 남자지. "지금도 그는 너를 사랑한다잖아 잘못을 구하고 너한테 돌아왔잖아. 근대 용서가 안돼?" 다른 여자를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용납이 안돼. 이제 그는 또 바람을 피울 거고 난 평생 의심하면서 살게 될 거야! "그럼 그를 잊고 다시 널 사랑해줄 남자를 찾아!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하지 말고." 난 이제 사랑을 안 믿어. 모든 게 끝나버렸어. 그를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어. 자존감 강한 그녀였지만, 그녀의 삶의 전부였던 사랑이 끝나자, 그녀가 절망했던 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미쳐버린 마음이 쉬고 충전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갈 나만의 방이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사랑이라는 달콤함에 모든 걸 바쳐버린 나머지 사랑이 끝난 후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용납하지 않았기에 그녀에게는 돌아갈 자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진실된 사랑은 인간을 위대하게 하고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한 인생을 구원하게 하고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는데.... 사랑의 유효기간 동안에만 가능한 건가! 어째서 사랑에 모든 걸 올인했는데 자신 하나 돌아갈 작은방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스스로를 끝내는 절망으로 떠밀게 될까?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사랑을 한 건가! 누구를 무엇을 사랑한 건가! 이런 사랑도 처음엔 위대하고 아름다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 그 자체는 그대로였다. 그 사랑을 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이 문제였던 거지.... 매 순간 사랑은 눈부시다. 잔인하리 만치... 찬란하고 숭고하며 기적도 만들 만큼 신비롭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는 음식처럼 변질된다.
그 어떤 사랑은 김치같이 숙성되어가기도 하고 그 어떤 사랑은 고기처럼 처참하게 부패되고 그 어떤 사랑은 술처럼 익어간다. 그러기에 사랑이라는 그 자체는 정말 순수하고 신비롭고 경의롭다. 그 사랑을 담는 사람의 각각의 마음이 사랑의 이름을 만들고 사랑의 모양을 만들고 사랑의 형태를 만든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새롭게 창조될 뿐이다. 선과 악으로 추함과 아름다움으로... 추함도 악도 모두 선이요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그토록 찬란한 사랑의 두 얼굴은 언제나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내 생애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읽고 쓴 생각)
남편의 외도로 인생의 의미를 잃은 여자가 자신도 불륜에 빠진다. 소설 속 불륜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슨 게임이죠?" 구름 모자 벗기 게임." "구름 모자 벗기 게임? 이상한 이름이군요. 무슨 뜻이죠?" "혼자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질 때엔 분명했는데, 지금은 나도 모호해요." "어떻게 하는 거죠?" "게임의 유효기간은 사 개월이에요. 그동안 서로를 허용하죠." "그건 왜죠?" "사람 사이의 긴장이 지속되는 기간이 대략 그 정도죠. 게임엔 긴장이 필수 요건이니까." "게임이 유효한 기간 내에도 둘 중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게임은 끝 납 니다. 게임이 아웃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요." "만나고 싶으면 어쩌죠?" "남의 감정은 영원 속에 익사시켜야죠. 게임의 규칙이에요." "쉽지 않은 게임이군요. 그런 게임을 왜 하죠?" "글세. 우선 사는 게 지리멸렬하고, 그리고 당신이 마음에 들고...... 그러나 사랑한다는 따 위 귀찮은 결과가 생기는 건 질색이니까." "당신은 이 게임을 자주 하나요?" "흥미를 끄는 낯선 여자가 나타나면...... 자주는 아니고 이따금." "왜 사랑해서는 안 되죠?" "얽히는 게 귀찮으니까. 사랑은 언제나 사랑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생에 시비를 겁니다. 삶을 위협해요. 특히 여자들이란 사랑을 가지고 한몫 보려고 합니다. 팔자라도 바꾸려고 들 죠. 사랑한다면서 왜 저렇게 하지 않죠?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줘요. 이런 걸 사줘요. 왜 전 화하지 않았죠?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난 당신 여자예요. 이제 어쩔 거죠? 함께 살고 싶어요...... 여자들 그러는 거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인걸요. 이런 식이죠. 먼저 사랑을 고백해야 해요.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하죠. 그리고 심지어는 결혼을 약속해야 하고요. 그 거래가 성사되고 나면 모든 것 을, 말하자면 육체를 서로 허용하죠." "보험 같군." "이 게임은 모든 것을 뒤집는군요...... 고독하진 않나요?" "그건 지불할 만한 대가요. 난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벌어 먹이느라 늙고 지쳐가는 소시민 적인 삶보다는 수상쩍고 고독하고 홀가분한 단독자의 삶을 택했어요. 그 편이 나에게 쉬우 니까." "좌절했나요?" "그것하곤 달라요. 그냥 무의미해진 거죠." "결국 비슷한 말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난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다른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오만하게 말했다. "게임에선 늘 이겼나요?"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이기지 않아요. 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진 적도 있었나요?" "언젠가 한 번. 처음 이 게임을 했을 때. 녹색 모자를 쓴 한 여자가 나에게 게임을 신청했 었지. 난 그녀에게 졌어요. 나중엔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지요. 남편과 이혼하 고 나와 살자고 사정하고, 이 모든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도망가자고 공갈 하고...... 거의 일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어요. 그녀는 끝까지 냉정하더군요. 마지막에 난 저잣 거리에 널린 그저 그런 파렴치한 치한이 되어버렸어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은 연인을 순식간에 치한으로 만들어버려요." "그 여자를 사랑했나요?" "아뇨. 그런 단순히 게임에 진 거죠. 말하자면 그 여잔 게임의 여왕이었거든요. 난 누굴 사랑하는 인간이 아니에요. 꼭 한 번 실패한 후론 단 한 번 도 지지 않았어요. 어때요? 당신 도 꽤나 지루해 보이는데." 모든 게 장난 같았다. 아무튼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담한 척 웃었 다. 그런데도 나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생에 대해 순진한 여자였다. "당신은 게임을 하게 될 거요. 달리 할 일이 없을 테니까." 그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완전히 가셨 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아연하게 쳐다보았다.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숲에서 우리는 두 그루 의 나무나 두 마리의 다람쥐처럼 천진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앉아있 었다. 내가 그랬듯이 그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순수하리 만치 완전히 텅 비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문에 숲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와 나를 구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어설 때 마주 보았고, 그리고 동시에 미소 지었었다. 나는 우리가 은밀하고도 무 척 특별한 정서적 경험에 매료됐다. 삶이란 아귀를 맞추는 것을 단념하고 해독을 유보한 채 다만 자신의 진실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해규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가 이 세계에 새겨진 완전과 완전 사이에서 저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만들어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자들은 사마귀들이 교미하는 동안 암놈이 수놈의 머리를 먹어치우는 이유를 오랫동안 몰랐어. 사실이 발견된 지 50년이 지난 뒤에야 수놈의 머리를 제거하면 교미 능력이 증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머릿속에 있는 식 도하 신경절이 복부의 교미 운동을 방해하는 거야. 수놈 사마귀는 머리가 먹혀야 사정한다는 설도 있어. 내 생애 딱 하루뿐을 특별한 날 중에서 발췌-------------- 이 소설은 삼십 대 부부의 불륜에 대한 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사랑애 매혹되었다... 중략... 그리고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가벼움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이리 지리 열렬한 삶의 가랑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결말이 궁금했다. 늘 그렇지만 불륜의 끝은 공식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시나 뻔한 결말의 종지부를 찍는다. 전경린이라는 작가의 세계는 체념과 수용의 의지를 사랑 속에 투영한다. 어떤 결과도 받아들이고 쾌락이 주는 불구덩이 속 뛰어들지만 역시나 파멸이다. 하지만 파멸은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씁쓸한 뒷맛이 허무라는 맛을 느끼게 한다.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은 이다지도 비루하고 환멸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