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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Sep 26. 2020

기적 같은 시간

하루라는 여행


기적이란 어떤 것일까?
불가사의한 그 어떤 일일까? 초자연적인 그 어떤 일일까?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어느 날 병이 씻은 듯이 낫는 그런 걸까?

모든 사람마다 단어의 의미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에게 기적은
찾아 헤매는 그 어떤 것을 발견했거나

무심한 어느순간의 알수 없는기쁨.  어떤 생각이 떠올라 두려워하던
생각들을 말끔하게 밀어내는 그런 순간들이다.
내가 찾고자 애쓴 뒤에 마치 창가에 햇살이 스며들듯이 자연스럽게 마음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것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외부로부터의 어떤 개입 없이 내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나는 그것을
내가 만들어낸 순수한 기적이라고 여긴다.

어느 날 우연하게 떠난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아주 잠깐 아니 몇 시간 정말 자연 이주는 편안함과 혼자만의 자유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하는 그때  지금의 내 시간은
기적이 만든 시간 속에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한다.

어제 나의 여행길이 그랬다. 집을 나서서 발길 닫는 대로 버스를 타고
도서관이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내려 숲길을 걸었다.
도서관은 코로나 때문에 휴관이라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야외에
비치된 숲 속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 도서관을 둘러싼 산의 둘레길을 걸었다.
날은 따사로웠고 햇살은 눈부셨고 바람은 시원했다.
한참을 걷다가 책을 읽고 잠시 부드러운 햇살에 눈을 감고 졸기도 하고
무념무상에 잠기기도 하고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아무 페이지나 읽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른 책인데,  생과사를 오가는 말기암 환자가 생의 끝자락을 마감하면서 쓴 책이었다. 해필 말기암환자의  이야기라니..... 자신의 병에 관한 고통. 희망적인  메시지 전달, 삶에 대한 집착과 자기성찰  같은 그런 내용이면 책을  덮을 생각이었다. 
말기암 환자의 글은 놀랍게도 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행복을 뒤로하고 놓쳤던 시간들이 었지안 후회는 없었다.
30년 지나온 아름다운 시간들이 빼곡했다.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맞이한 말기암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이상하게도 글 안에서는 죽음의 흔적과 고통의 절규가
느껴지지 않았다.  30년이란 시간을 기쁨과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와 인생의 황홀함 그리고 그리움 같은 것이 마음으로 전해왔다.
30년 인생 행복하게 살아온 것애 대한 후회 없는 마음이 죽음을 초월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은 누구나에게 공평하고 똑같다.
하지만  죽음을 다루고 맞이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고 천자 만별이다.
죽음을 앞에 두면 그때 진정 자신이 살아있다는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암 선고 후 2년 정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생에 대한 모든 걸 내려놓고 삶을 바라보면
생명의 초침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째깍째깍 시계추 소리에 죽음을 마주하고  느끼는  인간이 맛보는 감정들이

삶에 있어 가장 순도 높은  행복이고 평온함 일지 모른다.
이 책은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
죽음을 준비하고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다.   서툴지만  진솔하고. 쉽고 단순한 문장들은 몇 시간 만에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그녀가  과거 여행했던 곳과 그녀가 순간순간에 느꼈던 아름다운 감정들이
읽는 내내 살 떨리게 아픔답고 낭만적이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가서 느끼는 감정보다도
더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기적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그녀 인생의 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로도 기적이라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막연하게 느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심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도 기적의 순간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고 평온하다면 그 순간이 기적이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모두 기적이다.  

어제 그곳에서 보낸 기적 같은 시간
그 시간을 소환해서 글로 쓰고 있는 지금 또한 기적 같은 시간이다.

기적은 내가 의미를 두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기적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어제 죽어간 사람이 평온한 상태에서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오늘이라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
이제 그 기적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죽음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

그녀의 미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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