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ting by Jane Newland (Norwich, Norfolk UK. 영국)
요즘 제 주변에 힘든 상황을 버티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마음처방전을 써 보았습니다.
힘든 일을 당하면 도망가지 말고 받아들이고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쳐다봐야 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인생의 변곡점에서 언젠가 만나게 되는 순간 일 뿐입니다.
한번 일어난 사건 사고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이게 꿈이라면,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좀 더 신중했더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들것입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마치 운명처럼요.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앞에 두고 원인을 따지는 건 어리석고 , 결과를 따지는 건 더더욱 어리석은 바보입니다.
이 불행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가 중요합니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를 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으로 또 어떤 사람으로 거듭날지 마치 미지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과정을 즐기듯이 고통 또한 깨어서 직면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갑자기 당한 사고나 불행 앞에서 마음이 저항하면 자아가 분열해서 폭주합니다. 마음은 저항하면 엇나가기 마련입니다. 트라우마란 그래서 생기게 됩니다.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두려움에 빼앗기고 떨기 때문입니다.
가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다큐를 보면 극한에서 살아남았을 때의 감격보다는 그 후의 스토리가 더 극적일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늘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감격적인 모습으로 끝이 나기 마련인데.. 진짜 영화는 그다음부터여야 합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적인 심경은 " 상황은 끝이 났는데.. 마음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있을 곳은 없었다"라고 합니다. 생존은 일종의 승리라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개선장군처럼 살아났다 해도 삶의 다음 단계인 현실적 적응이라는 힘겨운 단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의 순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사고나 고통을 당할 때 위태로운 상황 한 장면 한 장면을 열심히 저장합니다. 바로 보호 생성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종료되고 난 다음까지도 활성화되어 시시때때로 경보음이 울리게 되는 게 문제입니다. 이때 마음이 괜찮다 괜찮다 토닥거려주지 못하고 조금만 불안해해도 보호 생성 시스템이 너무 잘 작동되어서 인간의 자아는 둘로 분열이 되고 위험상황이 끝나고 평온한 상태가 된 후에도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혼란을 가져옵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과 지금의 변화된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기 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돌아갈 자리는 없고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저항을 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흘려보내고 지금의 현실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저마다의 속도 되로 전개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또한 시간에 맡기고 그 전개의 속도를 허용하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거나 이제 겨우 그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면.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에게 내맡기는 상태 또한 깨어있음의 의미입니다, 기도 하는 시간만큼 깨어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깨어있음이란 두려운 마음을 없애거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안함 고통을 느낄 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고 육체적 고통을 느끼면서 생명의 박동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로 실존을 느끼는 것입니다. 실존의 고통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을 고통이 아니라 실존으로 느끼는 것을 깨어있음이라고 저는 정의합니다.
깨어있지 못한 채로 두려움과 고통을 직면하면 마음은 공포에 잡아먹히게 됩니다. 이때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 공포와 불안은 모험과 극복이라는 훈장이 됩니다.
깨어 있으면서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은 신과 함께 동행하고 있으며 마음이 허상이라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스스로에게 받아들이는 공부입니다. 평온한 순간이란 행복한 순간 안정된 것들을 누리려는 집착이 사라진 상태. 집착하는 자신을 데려와 불안과 두려움 불행이라는 친구 또한 함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 공부입니다. 피부에 종기가 하나 생겨도 아무는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음은 극복이라는 단어보다 견딤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불행과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그저 변화되어 가는 과정일 뿐이죠! 그저 받아들이고 살면서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며 고통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그 느낌을 에너지로 만들어 글로 써보기도 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런 시련도 없이 살면 행복해질까요?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까요? 신을 만나면 행복해질까요? 경제적으로 윤택하면 행복해질까요?
사랑 후에 오는 고통들 신과의 축복 뒤에 오는 고립. 경제적 풍요 뒤에 오는 욕심과 권태. 행복 뒤에 따르는 허무의 그림자.
사랑, 신앙. 부. 건강 이런 것들의 양면 성안에는 언제나 두 얼굴이 있습니다.
이 두 얼굴을 다 아는 사람은 행복이란 지금 실존적 고독의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라는 걸 아실 겁니다. 깨어서 지금을 아무런 분별없이 바라보는 것. 그 상태에 가 바로 나에게 이르는 길이고. 그 길에 다다르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고통과 힘듬이라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