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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Nov 22. 2021

벤치의 하루

삶의 의미

"아이고 물김치가 얼마나 맛나는지 몰라. 난 물김치 없으면 못살아."

"물김치에 마늘을 넣습니까? 마늘 넣으면 텁텁하지...."

할머니 둘은 한가로운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구경하면서

 한 시간째 음식 이야기를 한다.

 어제도 그들은 이 벤치에 앉아서 마늘장아찌 이야기를 했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들 손녀 자랑을 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입이 침이 마르도록 하더니 , 얼마 전부터는 , 며느리 흉보느라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하지만 일주일째 계속되는 며느리 험담에 지쳐가자.

음식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스산하게 마음을 흔들지 않는 그런 긴 세월의 이야기들을 찾았다.

 50 평생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했었던 알토란 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며느리에게 주방을

내어주고 밥 얻어먹는 신세가 되고 나니 이제는 자신의 손에서 떠난 손님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물김치에 액젓을 넣는 사람들도 있어.

아이고 별별 사람이 다 있네..... 할머니 둘은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내내 말이 없었다.

바쁘게 가야 할 곳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것도 없었다.

그저 점심때만을 기다리면서 허기를 달래듯 앉아 있었다.



오후가 되자 30대로 보이는 두 여자가 않는다.

"야 송중기 요즘 탈모가 왔데.... "

"어 드라마에서는 머리가 빽빽하던데..."

그녀들은 대화를 하지만  서로 핸드폰을 본다.

네이버 연애 기사란은 그녀들의 놀이터이다.

  서로의 얼굴은 가끔 보면서  손은 핸드폰 화면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여기서는 송해교랑 이혼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나 봐."

"야 그거 사실일까?"

"뭐...... 송혜교가 남성편력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

" 야 뭐 연예인들이 다 그렇지... 안 그런 게 이상 할 정도다"

" 무슨 걱정이야 다시 이혼하고 딴 놈 만나면 되지 "

" 맞아. 할리우드 배우들 봐 이혼은 5번은 기본이지....

돈이 없어? 이쁘지?  무슨 걱정이야?"

그녀들은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그렇게 계속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 야 너 손톱 어디서 했냐?"

" 사거리 네일 샵에서"

" 이쁘지? 너도 샵 바꿔 발톱까지 서비스해 주더라"

그녀들의 핸드폰 화면은 다시 쇼핑으로 바뀌었다.

" 이 원피스 이쁘지 않니?"

" 이 신발이랑 입으면 이쁘겠다"

그녀들은 그렇게 오후 햇살을 받으면서 핸드폰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했다.



저녁에는 젊은 남자 둘이 캔음료를 들고 나타난다.

"비트코인 때문에 요즘 잠이 안 와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기만 하니

와이프 몰레 대출까지 받아서 몰빵 했는데... "

마른 남자가 다리를 떨면서 얘기했다.

"야 미쳤냐 차라리 주식을 하지 비트코인을 왜

사고 그래?"

"넌 요즘 주식 재미가 쏠쏠하겠다."

" 얼마 전 까지는 그랬지!  근데 요즘은 나도 개털 됐어. 셀트리온 중간에 잘못 물타기 했다가.

아주 개박살 나는 중이야. 대주주가 다 팔아치우고 있으니

오를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도 주식은 만회할. 종목이라도 있잖아!"

"비트코인 오래갈 줄 알았지 중국발 악재로 이렇게 될 줄 알았냐!"

" 어디 하늘에서  돈벼락 좀  안 떨어지나!

이번 주에는

로또나 사야겠다."

" 너 상태 얘기 들었냐?"

" 들었어.  장인이 심장마비로 죽으면서 100억대 유산을 남긴 거!  돈 많은 집 홀아비 외동딸이

로또 당첨이다"

" 어디 돈 많은 과부라도 찾아봐야 되나?"

어둠이 내리자. 그들은 일어난다.



 가로등이 켜진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 한 명이 앉는다.

알코올 냄새가 진동한다.

불 켜진 집들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맞은편 빌라를 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짧은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망설이듯

핸드폰을 귀에 댄다.

"어 나야!  어디긴 집 앞이지. 다 왔어.

오늘 김 감독 만났는데  공연이 취소됐데.

무기한 연기됐다고 나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술 한잔 했어.

이번 배역 따려고 다른 배역 다 켄슬 했는데

제대로  망했지 뭐!  이제 어떡하냐?

"담달 형지 레슨비는?

"............."

알았어 들어가서 얘기 하자."

남자는 가고.  

그렇게 밤이 깊어가자 나는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게로 와서 쉰다.

잠시 갈 곳 잃은 사람들은 숨 고르기를 한다.


그리고 대화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물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이거나

손톱을 이쁘게 하고 연예인을 부러워하는 사람이거나

로또 당첨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거나

실직당한 사람이거나,

늘 언제나 비슷비슷하다.


그들의 고민은 늘 똑같다.  건강, 돈. 관계. 사랑. 직장.

그들은 제각각 무슨 이유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만족하면서 앉아 있기도 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앉아 있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는 대화는 특별할 게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사고를 하고 문자를 만들어서 소통하지만

그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복잡하다는 이유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만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 안에 자기 자신은 없다.

관계 속 자신만 있다.  세상 속 자신만 있다.

그 어떤 이타적인 사람들은  타인들을 위해서

인간들의 고민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고민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나누는 대화는 무엇일까?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런 일에 돈을 주고 그런 일에 권력을 주는 곳이 없다.

그렇게 살면 성공한다고 가르치는 곳도 없다.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내가 기억하는 자기 이야기를 한 최초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오래전 그 고등학고  여자아이는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내가 살아있는 사람 이기라도 한 듯이

혼자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 난 말이야 내 얘기를 할 사람이 없어.

내가 하늘색이 파랗다고  내가 오늘 느낀 하늘빛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를 더 외우라고 해!

어젯밤 너무 눈물이 나서 슬펐던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슬퍼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라고 해?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지.

사는 게 슬프다고 했더니 나보고

나가서 돈을 한번 벌어보라고 그러네.. 슬플 시간이 있는지..

내가 고인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물어보면

사람들은 고고학자가 될 거냐고 물어봐

난 그냥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이야기하면

고고학자가 될 거도 아니면서 그런 거 따위가 왜 궁금하냐고"

난 말이야 외로워 이런 이야기를 나룰 사람이 없어.

난 말이야 외계인 같아! 내가 좋아하는 걸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난 그들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늘 노력하는데...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면 그런 걸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

그럼 난 어쩌지....

그래서 지구별을 떠날 생각 중이야"



그 아이가 지구별에서 마지막에 대화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난 그냥 들어주기만 했는데 그 아이는 떠나기 전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외롭다.  


그 아이는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걸 가르쳐준 최초의 사람이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 이후로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지만

난 기다린다. 그 아이처럼

나에게로 와서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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