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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Dec 07. 2020

이별이 아니야!

기다림 이아

그림 장욱진


이별이 아니야!
기다리는 것뿐이야!

A에게서 전화가 왔다.  10번의 통화음이 울리고 나서 전화는 끊겼다.
별일 없느냐는 문자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넘게 A와의 모든 연락에
침묵했다.  이유는 딱하나!  부담스러움 때문이다.

A와 알게된지는  1년이 되었다.


분명 혼자 조용히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상대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A의 자기 주도적 방식이   일순간 내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고 말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친해지고 나서
친구의 관심 안에서 내 모든 동선과 감정의 흐름까지 파악되고 ,
늘 언제나 설명을 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상대의 침묵을 참지 못한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다. 단지 내 시간 안에서  나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A는 그 침묵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의 공간을 열어젖히고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런 친구와 잠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거리두기 끝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리라는 걸 짐작으로 알게 된다.



거리두기는 이별을 뚯하는개 아니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가 그걸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건 내 욕심인지도 모른다.
관계의 상실을 밑바닥까지 경험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또한 기대를 버렸을때 관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관계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남을 사람은 남고 멀어질 사람은 멀어진다. 그렇게
한 사람이 기억 속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한때 전부였던 사람이 지금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 이 라걸 알 즈음이면 관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걸까?
관계는 늘 시작될 때는 이별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익숙해지면 무관심과 함께  헤어짐이라는 자연스러움이 찾아온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별 후에도
잘 살아간다.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람과도  결국 죽음으로써 이별하게  된다.



이별은 생명의 순환처럼 되풀이되는 인간의 히스토리이다.
예술이라는 장르가 다루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이별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늘 다른 이별의 형태와 종류들의 퍼레이드들이다.
전화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의 이별은  연락이 끊기면 영영 이별이기에 어쩌면 그토록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순정을 바치고 의리를 다하고.  지고지순했는지 모른다. 인연이라는 걸 운명처럼 받들고 살았는지 모른다.


 세상은 변했다. 이별 후  잊고 싶은 사람도 친구의 친구인 탓에 아무리 연락처를 삭제하고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차단해도 도망갈 수가 없다, 이제는 그 모든 정보를 다 공유하면서 눈앞에서 잊어야 하는 정보의 네트워크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만남이라는 인연이 쉬워졌고, 쉬워진 만큼
이별의 방식도 달라졌고. 이별의 형태도 달라졌고. 이별하는 이유도 달라지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만남과 디지털 시대의 만남은 이별의 형태도 바꾸어 놓았다.
타임의 관심이  처음에는 설레고 사랑받는 것 같은 마음에 행복하지만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마음이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드러난다.

상대의 관심을 받고싶은 욕망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도 막상 상대가 적극적인 마음으로 다가오면

상대의 마음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단지 부담스러움 때문이라니.....




너무나 쉽게 핸드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나도 물들어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A와의 관계 속에서 침묵을 택한 건 이별의 문제는 아니다.

자연스러운 시간 안에 우리의 관계를 던져두고 기다리는 것이다.

숙성시키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만남이 또 시작되어 질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 속에

던져놓은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지켜보는 시간은

디지털이라는 매개체가 주는 편리함 속에서

파헤쳐지는 우리의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고.

너무나  많은 관계 속에서 허덕거리면서 손쉽게 소비되는 디지털 인맥을 공허하게 히고 싶지 않아서 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면서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던 그  관계의 소중함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다.




관계란 때로 지키고 싶어서 이별을 택하고 마음속에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은  혼자만의 이기적인 방식도 존재하니까!

관계 속에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별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기다림과 존중이다.

이별하더라도 견디어내는 힘은

결국

기다림과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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