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an 23. 2021

내맡김

기도

나는 밤마다 전투에 나가는 여전사입니다.
신이 나에게 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러 나갑니다.

 죽어 쓰러져도  지켜내야 할 그 무엇이
내 목숨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매일 밤 전투에서 내가 죽습니다,
살아 돌아 오지 못하는 밤.
그렇게  매일  아침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침햇살과
 함께  눈을 뜹니다.

 또 하나의 내가 죽고
그리고 다시 내 삶이  주어집니다,

즐거움의 가치가 자꾸만 나를 비켜가고
누군가의 피를 마시고
그 피의 전율로 좀비처럼 일어나 걸었습니다,

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도
신은 나를 외면했습니다.

 내 삶이 무엇이기를 원하십니까?
어찌하여 평생 나에게 칼을 쥐어 주게 하고
그 누구도 베지 못하고 전쟁터를
 떠도는 망자가 되게 하십니까?

아침이면 삶의 환희를 노래하게 하고
밤이면 다시 나의 주검을 빼았아  가시는 분이시여.

당신의 발 앞에 다시
어젯밤 흘린 피를 토해 냅니다.

 어둠이 드리워 빛을 삼키는 시간
뜨거운 인간 아이의 피를 갈구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전쟁터를  기어갑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싸웁니다.
하지만
피로 물든 강물에 떠내려오는 주검은
언제나 나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죽여야 할 내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제  그 칼로 나의 운명의 사슬을  끊어내겠습니다.
생각이 멈춘 그곳.
존재하는 나와 그 시간.

 더 이상 밤은 피 냄새가 진동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밤의 마왕처럼 나를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나는 자장가를 들으며 매일 밤 거꾸로 늙어가는
치매 걸린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천사의 미소를 품고서
고요해졌습니다.

이제
나의 기도 안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뜨거운 염원도 없습니다,.

간절한 바람도 없습니다

눈물 어린 반성도 없습니다

가슴 벅찬 감사도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던 울부짖음도 없습니다

오직 고요함만 있습니다,
온전한 내맡김만 있습니다.

당신에게 다가가는 그 길.
이제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시간과 기억을 지운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향기의 배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