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와의 어이없는 동맹
바퀴벌레는 그냥 곤충이다.
어릴 적 제일 무서운 건
어두운 밤도 아니고 지붕 위에서 찍찍이는 쥐도 아니고
숙제 안 했다고 때리는 선생님도 아니고
누렇고 시커먼 수염을 더듬이처럼 움직이며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수직으로 튈 듯이 날아다니는
바퀴벌레였다.
불 꺼진 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바퀴벌레는 전설의 고향 속 처녀 귀 신보 다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낮이면 바퀴벌레 사냥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신발로 밟아 죽이고
책으로 때려죽이고
죽이고 죽여도 구멍에서
불사신처럼 나타나는 무서운 놈들!
가장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사냥은 역시 연탄아궁이였다.
연탄불로 유인해 아궁이에 빠뜨려 죽이는 방법은
바퀴벌레로 인해 수난받는 모든 시간 들을 보상해 주었다.
바퀴벌레들이 타들어 갈 때 나는 노린내를 맡으면서
잠시 바퀴벌레들에게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바퀴벌레 사냥의 정점을 찍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 사건 이후로 바퀴벌레 사냥은 더 이상 즐거움도 카타르시스도 아닌
하나의 살생의 아픔 내지는 모든 생명체의 평준화의 길을 걸으면서
바퀴벌레가 혐오의 대상에서
한층 예의를 갖춘 곤충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도 난 한차례 연탄아궁이에다가 바퀴벌레를 유인하고 냄새에 취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던 중이었다.
배가 출출해서 먹을 게 없나 하고 찬장 안을 살피는데,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다.
뚜껑 덮인 그릇 안에 전날 다 먹은 줄 알았던
까만 흑임자 떡 다섯 개가 있는 게 아닌가!
전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흑임자 떡의 달콤함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의 고문이었다.
그 맛난걸 언니들과 오빠, 공평하게 배분하고 나니 나에게 배당된 떡은 딱 두 개뿐이었다.
투정해 봤자 어쩔 수 없었다.
탁구공보다 작은 경단을 입에 넣고 그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세계의 고문은 입맛을 버리고 말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밤새 눈앞에 흑임자 경단이 둥둥 떠 다녔다.
그런데 다음날 숨겨둔 흑임자 경단을 발견했으니 나의 식탐은 심봤다를 외치며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일단 하나만 먹으려고 했다. 숨겨놓은 이유는 뻔 했다. 아버지의 몫이거나
큰오빠의 몫이 분명했다.
하지만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지금 죽어도 좋으니 일단 먹고 보자가 돼 버렸다. 일단 손부터 가는걸 낸들 어찌하겠는가!
결국 다섯 개가 눈 깜짝할 새 없어졌다.
바닥을 드러낸 그릇을 보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빈집에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범인은 금방 밝혀질 테고....
숙제를 하는 내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오후가 되자 외출했던 엄마가 돌아왔다.
작은방에 콕 박혀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 인기척을 내지도 않고 숨죽여 공부만 했다.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엌에서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찬장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침을 꼴딱 넘기면서 오늘이 하루가 빨리 가기를 기도했다.
잠시 후 작은 방문이 버럭 열리고 두 손에 흑임자 그릇을 받쳐 든 우리의 김순남 여사가 코뿔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면서 서 있었다.
" 네가 묵었지 이안에 있던 흑임자 경단 다섯 개?"
나는 거짓말을 하려고 입을 달삭거렸지만 김순남 여사의 부릅뜬 눈에 제압 당해 순순히 자백했다.
최대한 불쌍하고 착하게 슬픔을 담아
동정심을 유발하게 대답했다.
"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게 없어서 ......"
역시나 김순남 여사의 눈길은 불같이 타올랐다.
" 가시나야 그걸 먹으면 어짜노?
니 죽을라고 환장했나?"
나는 납작 엎드렸다.
" 엄마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김순남 여사는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두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 가시나야 이거 버리려고 놔 둔긴데 이걸 먹으면 어짜노? 어제 바퀴벌레들이 달라붙어있던 떡인데...."
하늘이 노랬다. 속에서 역한 냄새들이 올라왔다.
바퀴벌레들이 뱃속에서 꿈틀대면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배속은 몇시간이 지나도 아무 탈 없이 잠잠했다.'
단지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온 집안 식구들은 웃음꽃이 피었다. 언니들은 바퀴벌레가 먹다만 떡을 내가 먹었다고
나를 놀렸고 몰레 훔쳐먹다 된통 당했다고 웃어댔다.
나는 창피함 보다는 바퀴벌레들이 내 맛있는 음식에까지 침범했다는 분노로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데 눈앞에 어슬렁대는 바퀴벌레
두 마리가 보였다. 기계적으로 컵으로 재빨리
덮어 두 마리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컵 안에서 요동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묘한 쾌감이 분노로 이글거리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녀석을 고문할 뚜껑있는 통을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예쁜 용기 하나가 손에 잡혔다.
뚜껑을 닫고 바퀴벌레를 가두었다.
용기를 세워놓고 귀를 대었다.
발버둥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는 꽤 스릴 있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소리도 잠잠해지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바퀴벌레 사냥에 흥미를 잃었다. 흑임자 경단을 서로 나눠먹은 동맹을 맺은 이유 일까?
눈앞에 어슬렁 거리는 바퀴벌레에게도 혐오감이 들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바퀴벌레 생각은 까맣게 잊었었다.
일주일 후 친구랑 놀다 집에 돌아온 휴일 오후의 어느 날이었다.
방안에 들어서는데 묘한 기류가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언니 다섯과, 엄마 , 아빠 , 오빠가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포스의 눈빛으로.....
나는 없는 죄도 만들어 자백해야만 살아 날 것 같은 압박감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기억을
떠올려 나의 행적을 더듬어 보았지만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식구들이 앉아 있는
방바닥앞에 예쁜 용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뿔사!
일주일 전 바퀴벌레를 생포해서 가둔 바로 그 예쁜 용기였다.
그것은 언니가 아끼는 화장품 통이었다.
점심때 로션을 나누어 담으려고
둘째 언니와 뚜껑을 여는 순간.!
송장 썩는 냄새와 함께 꺄아아악..............
................................
명절에 모이면
그 얘기를 가끔 하는데...
그때 그 시절 연탄아궁이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던 뜨거운
한방에서 오글오글 식구들이 모여
잠자리에 들고 살 부딪기며
살았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나에게
바퀴벌레는 그리운 그 시절의 곤충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