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교회 작은법당

믿음

by 토끼

최근에 한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어떤 개인이 세금이 면제된다는 이유로 1억미만의 소형 아파트 269채를 매입했다고 한다.

또 어떤 법인은 1978채를 매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집 없는 소시민들의 소형 아파트 살 기회마저 빼앗아가는 이런 투기를 하는

사람의 영혼은 얼마큼 마비돼 버린 것일까?

그 사람도 신이라는 걸 믿을까! 자신이 한 짖이 단지 투자라고만 여기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따위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일 건물이 여러 개 있는 부자라면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24시간 늘 불이 꺼지지 않고 문이 열려있는

작은 교회와 법당을 만드는 것이다. 건물의 문은 두 개다.

하나는 교회이며 하나는 법당으로 향한다.


대한민국의 밤하늘에는 십자가가 물결친다.

하지만 모두 문들이 꽁꽁 잠겨있다. 그곳을 출입할 수 있는 시간과 사람은

정해져 있다. 예배는 반드시 교회에서 드려야 된다고

떠들어대면서 그들은 그곳을 꽁꽁 잠가 놓는다.

자신들의 재산적 가치가 훼손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들이 파는 하나님은 점점 더 넓고 화려한 건물을 짓게 해 줄 것이라고

그들은 소망한다. 예배가 끝난 시간 언제나 텅텅 비어 있는 건물 안에는

이제 하나님이 없다. 돈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이 없다.

헌금이 없다면 교회는 없다. 목사님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건물을 짓는 일에 공동체들은 기꺼이 돈을 낸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자신의 일부라고 거룩한 마음을 담아서....

그들은

하늘 명부에 자신이 낸 헌금들이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치 않으시다. 돈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원하신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모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들을 내어주었다.

길 잃은 영혼들을 평온하게 자신의 품에서 쉬게 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하셨다.

누구라도 지나가다 기도 할 수 있고. 추운 겨울 잠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복음이 넘쳐나는 장소가 우리나라에는

한 곳도 없다.

나 너 그들의 교회가 아닌

바로 모두를 위한 곳.

주일에는 어느 가난한 목사가 와서 예배를 드려도 되고

어느 신실한 교인이 와서 예배를 드려도 되고...

그렇게 모두를 위해 늘 열려있는 교회...

청소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고

헌금은 하지 않아도 되고 다만 타인들을 좀 더 사랑하고

도와주는 마음 하나 면 충분하다.


추운 겨울이면 교회와 법당에 노숙자들로 넘쳐난다.

그들은 소문을 듣고 추위를 피해 밤에 따뜻한 건물 안으로 몰려 들것이다.

사람들이 기도 하기 힘들다고

여기저기 민원이 들어온다면. 그들을 내쫓아야 할까?

이곳은 기도하는 곳인데...... 벌서부터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된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따뜻한 봄까지만 그들과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곳은 하나님의 공간입니다.

누구도 이곳에 있을 권리가 있어요.

그들은 추위의 고통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선한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인간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생명이 지닌 숙명이지만

영혼의 고통은 생명이 지닌 존엄함입니다.

육체의 고통 앞에 인간은 무너질 수 있지만

영혼의 고통은 인간을 고귀하고 존엄하게 합니다. 고통 앞에서 인간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신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기도가 하고 싶을 때 교회가 가고 싶어 진다.

법당에 가고 싶어 진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24시간 영업하는 카페와 상점들은 넘쳐나지만

교회나 법당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소유의 정의는 간단하다.

관리하고 , 지키는 것, 집단에 속한 특정인들만이 누리는 것.

소유 안에서 가치 있는 돈이란 물질적 생산성이 있는 일을 의미한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다.


종교단제들이

선교나 전도의 목적이 단지 순수한 하나님을 알리기 위한 것인가!


21세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하나님을 품는 마음이 없을 뿐이다.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사람

지하철 입구에서 전도하는 사람

한 개인 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의지지 일 테지만

그 뒤에 있는 단체들은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개인들의 희생을 먹이 삼아 뒤에서 배를 불리고 있다.

하지만 조건 없는 선행이나 나눔 베풂에는 인색하다.


예수님과 부처는 자신을 생명을 내어주면서도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아무런 이익도 없었다.

단지 한마디뿐이었다.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예수님의 본질은

죽음이후에 우리의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살아서는 영혼의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셨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에서 헤매고 고통받을 때

혼자가 아니고

자신이 함께 있으니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셨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유안한 생명체가 된 인간이

영혼의 불안정으로 인해 지상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인간들만의 사랑으로 또 부족한 걸 아시고

그 고통을 덜어주시기 위해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이 단순한 진리가

복잡한 회계처리에 의한 손익계산서 때문에

너무나 복잡해진다.


종교의 문턱은 꽁꽁 걸어 잠근 건물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절대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 사실은 하나님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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