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한낮을 북촌 한옥마을을 혼자 어슬렁거렸다. 아무 이유 없이 삼청동 거리를 걷는다는 건 오랜만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디지털카메라를 메고 뭔가 찍을 거리를 찾고 있었을 테고, 친구들이랑 이쁜 카페들과 옷가게 주얼리 가계를 기웃거릴
풍경이었지만 혼자 삼청동을 돌아다니기에는 뭔 가구실 꺼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무슨 구실 꺼리가
필요한가! 그저 발길 닫는 데로 가고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인데...... 먼 곳으로 떠나야지만 여행은 아니다
발길 닫는 그곳이 여행일 뿐이다.
한옥마을 꼭대기 작은 찻집에 자리를 차지하고 타블릿을 펼쳤다.
나에게 근사한 구실 거리는 바로 글이다. 카페에 혼자 앉아 그럴싸한 풍경을 찍으려면 책이 있고, 노트북이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 같은 중년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뭔가 이유가 필요한 나이 문득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지는 나이가 바로 나이먹음이다.
오래전 나이먹음을 아주 깊이 들여다보는 일 하나가 떠올랐다. 이웃할머니 두 분과 소문난 한의원을 동행한 적이 있었다.
60대 후반의 할머니와 70대 후반의 어르신을 모시고 방산시장 소문난 한의원을 간 적 있는데... 한의사가 외출하고 없어서
한의원 문이 닫혀 있었다. 전화하니 한시간후에 도착한다고 했다.
근처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데.. 초겨울이라 조금 쌀쌀했다. 내가 차를 살 테니
카페에서 뜨거운 차라도 마시자고 두 어르신에게 제안했는데 두 분은 나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고,
근처 공원 벤치에 앉으셨다.
괜스레 돈 낭비할 필요 없이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고집을 부리셨다.
제법 추웠기 때문에 옷깃을 여미면서 한 시간을 동동거리면서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났다.
차 한잔의 돈이 아까워서 일까? 그건 아니었던 거 같다. 두 어르신들은 카페라는 공간이 편하지 않으셨던 것이 분명했다.
왠지 어색한 공간 , 내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 무언가로 부터 이제는 소외되어 버린 장소들. 차 한잔의 여유나 시간의 의미가
그들에게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카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먼저 혼자 노트북을 펼치고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미팅을 하고 누군가을 설득해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계약이 성사되고,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무리의 사람들이 만나 공감대를 나누고,
그리고 연인들의 다정한 시선. 우정이 오고 가는 무리들의 따뜻한 시선, 만남과, 여유 , 그리고 낭만 호 사스 럼 움.
그런 장소에 아무런 텍스트도 전자기기도 없이 혼자 우두커니 노인이 혼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노년의 시간. 굳이 카페에 혼자서 생각들을 곱씹을 필요가 없어서 일까!
노인과 카페는 이질적인 풍경이 된다.
젊음과 카페는 낭만적이며 생산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다.
하지만 노인과 카페는 비생산적인 느낌의 이미지....
노인들이 공부를 한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하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노인은 그렇게 늘 비생산적이고, 쇠락한 느낌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유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빠서 텍스트를 멀리한 나머지 쉽게 접한 미디어에 길들여져서 사유의 습관에서 멀어진
우리의 노년은 선술집에서 코가 빨개지도록 술을 마시고 신세한탄을 하거나 불평불만에 찬 울분으로 큰소리를 치거나,
조용히 tv 앞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데 시간을 할애 하거나
화초를 키우고 바둑을 두고
그런풍경에 더 익숙하다.
카페는 만남의 공간이다. 비싼 커피 한잔 값을 내고 공간을 잠깐 너와 나 우리들의 이야기로 채우는 곳이다.
또한 카페는 사유의 공간이다. 사적인 곳을 빠져나와 개방된 열린 공간에서 만나는 내적인 나와
대화하는 곳. 누구를 만나든 혼자이든 우리는 그곳에서 대화라는 걸 한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음악을 듣고,
다양한 커피 향을 음미하고, 사람들의 자잘한 대화라는 소음을 깔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공간을 새롭게 누리는 즐거움인지 모른다. 커피 한잔 값으로 많은 공간 속 이야기들을 엿듣고. 그런 소음들을 배경으로 깔고
느끼는 시간을 즐기는 여유는 일상 속에서 가지는 다른 차원일 수 있다.
낯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이유 또한 이런 카페들을 만날 수 있기에 그런 설렘의 공간이 주는 무수한 차 한잔의 기억들이
쌓여서 거리들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평일 한낮에 혼자서 한산한 시내 카페골목을 걷는다는 건 조금은 색다른 여행인지 모른다.
한두 시간의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이야기들을 쓰고, 타블릿을 닫고 자리를 일어나 카페 문을 나선다.
안녕이 가세요라는 인사를 뒷모습으로 받고
돌아선다.
주머니에 차 한잔 값의 여유가 더 있다. 혼자 온 카페에 아직은 누군가와 함께할 마음의 여유가 더 남아 있다.
카운터로 다가가 주문을 다시 한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포장입니까?라고 묻는다.
"아뇨 차 한잔을 남기고 갈 테니 저처럼 혼자 오는 손님에게 무료로 주시겠어요! 먼저 간 친구가 전해주라고 하고 전해 주세요."
사유의 공간이 주는 의미가 없다면 카페는 만남 이외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일 수 있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일이 한 번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한잔의 커피값을 꿀꺽하든 누군가에게 공짜 커피 한잔을 주든
내선을 떠났다.
난 그저 이름 모를 친구에게 한잔의 커피를 사주고
행복해졌다.
의미를 만들면서 순간순간을 짜 맞추어가는 시간은
촘촘하고 아름답다.
무료하지도
시시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