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익숙함에서 이별

by 토끼

선배와 후배 이 관계는 계절의 흐름과 같다.

후배가 연둣빛 잎사귀를 막 내밀고 있을 때 선배는 벌써 많을 꽃망울을 터트리고 열매 맺을 준비를 한다.

언제 꽃을 피우고 언제 열매를 맺을지 갈길이 아득하기만 한 후배에게도 봄은 어김없이

기회를 준다.

선배의 여물고 튼실한 열매를 동경하고 부러워했지만 어느샌가

후배에게도 자신만의 알찬 열매에 자긍심을 가지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느 날 평행선이 된다. 계절이 바뀌면

이제 각자의 열매를 맺기 바빠진다.

후배는 더 이상 선배의 열매를 탐스럽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선배는 후배의 열매가 아직도 덜 여문 풋사과 같다.

두 사람의 나뭇가지에는 이제 비슷한 열매가 열려있지만

선배의 눈에는 여전히 후배의 열매는 아직 추수할 때가 한참 멀어 보인다.


어디 선배와 후배뿐일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관계를 다시 수정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도 있다.

갑과 을처럼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위치가 변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나를 대하고 있으며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내가 변해 버렸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성공가도를 달려서 나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가 변했다면

그 사람은 나에 대한 인식이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정신세계가 바뀌었을 때도 있다.


상대는 전혀 그것에 대한 인식이 없고 예전 내 모습 그대로 대한다.

언니와 동생 형과 아우. 스승과 제자 사이..심지어 부모와 자식사이에서도..

이미 한 사람은 생각의 변화와 내면의 변화로 다른 프레임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쪽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만 대하는 경우이다.


그때 우리 모두가 동경하고 애정 했던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우리들 사이의 멘토 같은 사람이었다.

이성적이며 논리적이었지만 유머감각이 있고 사람을 즐겁게 해 주었으며

그녀의 조언이나 충고들은 언제나 내 삶을 변화시켰고, 어떤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한때 신랑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너 삶을 지배하려들고 있어. 난 왠지 네가 너무 그 사람에게 휘둘리는 거처럼 보여"

나는 신랑의 그 말이 미주알고주알 자신에게 덤벼드는 나를 못마땅해서

화살을 그녀에게 돌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녀와 대화하고 있으면 언제난 즐거웠으며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와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가 직장을 옮기면서 그녀와의 만남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한동안 나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공백은 딱 5년 정도였다. 지난 4년 동안

치열했던 나의 내면과의 싸움은 어쩌면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변화시켰는지도 몰랐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대화하는 방법이 바뀌고 받아들이는 인식이 바뀌고,

질문하는 내용이 바뀌고, 좋아하는 방식도 바뀌면서

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별 의미 없이 곁에 있던 어떤 사람과는 더 깊어지는 사이가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 폭이 변화되었다.


내 마음속에 늘 최고의 여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녀와의 만남.

그녀와의 대화는 늘 언제나 특별했는데....

언제부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들떠서 마구 내뱉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씩 조목조목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파고들었다.

내가 던지는 추상적 질문은 지루해하고

불편해 했다.

침묵이 불편해져갔다.

당혹해진 우리는 서로가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나를 향해 늘 풀어져 있던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난 단지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싶은것 뿐이었다.


예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나는 스펀지 같은 여자였다. 상대에 대한

반논없이 늘 수용했었다.

꽉찬 만남뒤에 뿌듯한 여운이 없이

뒤돌아서 집에 갈 때면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아 조금은 괴로웠다.


함께 만나 즐거웠던 과거의 시간이 그리웠다.

그녀와 함께 있을때 눈치를보고

대화를 의식해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 인가!


그녀는 과거의 나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녀와 동등하기를 원했다.

멘토도 선배도 언니도 아니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녀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약한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는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기 원했다.


나도 이제는 그녀의 맨토가 되고 싶었다.

과거 그녀가 나에게 그랬듯이

이제 나도

그녀가 가끔은 의지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요즘도 가끔 그녀를 만난다. 피해야 할 화재는 건너뛰고 질문은 패스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늘 잘안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는

그녀가 어떤 정답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다.


변화하는 나의 내면 안에서 예전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 한다면.

기대하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변했다는 오만함도 버려야 한다.


난 그녀에게 새로움을 원하고 있었다.

단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싶은 소박한 바램일뿐인데....많은것을 바라는게 아닌데

무엇이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었을까.


그녀에게 기대하는 그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녀라는 진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가끔은 이런 스스로의 한계앞에서

원점으로 돌아가

있는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또 다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행복하게 하는 어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