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할게요 2

트라우마

by 토끼

외상 후 스트레스 정말 무섭네요! 벌써 8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지겹게도 날 괴롭히고 있어요.


그때 혼자 버티지 말고 빨리 치료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하지만 전 지금 그때 정신과치료를 받지 않은걸

후회하지 않아요. 병원 치료를 받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편하게 지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힘든 시간 수많은 질문과

좌절 고통을 겪으면서 지금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로 주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거 전 이게 저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8년 전 그때 왜 해필 그날 그 사고와 사건이 벌어진 걸까요?



[ 그건 아마도 우연이거나 필연이겠지...]



당신이 정해 놓은 계획이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 네가 그렇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야지]



그날 이후로 얼마나 더 많은 힘든 일들이 날 괴롭히고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지 당신은 잘 알고 계시죠?



[ 하지만 넌 지금 씩씩하게 잘 살고 있잖아!]



주님! 당신 눈에는 지금 잘 살 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넌 나를 만나서 나의 뜻을 알려고 하고 또 평안을 찾는 법도 알고 있잖아]



주님! 저에게 힘든일이 닥치면

당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여기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신 선물을 풀었을 때의 놀라움은 가슴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그 막막함. 또다시 재발한 병을 어떻게 또 치유해가야 하나 하는 아득함만이 긴 터널처럼 보였습니다.


[ 이게 시작이라면 어떻게 할래?]


정말 너무하시네요. 전 끝이라고 늘 믿고 있는데...

제가 누굽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딸이 아닙니까?

비록 교회는 다니지 않는 범신론자이지만 저는 누구보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뜨겁다고 자부합니다.

과거의 나는 주님을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쳐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 주님에게 의지하고 맡기는 법을 알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에, 이시련이

주님이 나를 연단하고 나를 성숙하게 담금질을 한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 없이 기꺼이 선물을 가슴에 안아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 때문에 당신과의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 괜찮은 방법이군. 넌 늘 창의적인 생각들로 내 문을 두드리곤 하지]


이명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없으니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이 든지도 1주일이 지났습니다.

하루 중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유는 마음에서 비롯된 내 병이 마음으로 치유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 마음 안에는 우리가 믿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 인간들은 어차피 모두 저마다의 제멋대로 자기들 편하게 나를 믿더구나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서 때로는 내용을 날조하고, 왜곡하고,

자신의 이익에 맞게 해석하는 인간들이 나를 팔아서 엄청난 부를 누리기도 하더구나]


전 연약한 존재이고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지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존재가 당신밖에 없다는 게 이성적으로

지금은 당연하게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병에서 시작된 병은 반드시 마음으로 치료해야 하니까요!


[ 고통이 있다는 건 너의 자아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넌 너의 자의식을 죽여야 한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니?]


저의 자의식을 죽이기 위해 내 몸의 주인을 당신이라고 여기고

내 몸이 당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난 우습게도,

며칠 장의 상태가 안 좋아 설사를 하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몸이 주님 것인데...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설사를 하든 말든 주님의 일이다. 이 정도면 내 자의식이 점점 죽어가는 거 아닌가요!


[ ㅎㅎㅎㅎ 우습구나! 넌 늘 그런 식이지 너의 힘듬을 해결해주기를

바랄 때 그때 잠깐 나한테 모든 걸 맡기고 머리를 조아리지]


아니에요.

찬송가 구절처럼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세요. 요즘은 이런 마음으로 산다고요.

마음은 정말 이상하죠.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했어요.

어제는 페틀 롱이라는 18세기 대주교가 쓴 책을 읽는데,,,, 책 내용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와 내맡김의 내용과 너무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 불교철학을 공부했던 전 마음의 기본 본질을 무의 바탕에 기초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지금 내가 매 순간 하고 있는 자아 죽이기와 비슷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부터 참기 힘든 이명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귀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밤에 나를 괴롭히더니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사탄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지만 아무래도 이명이 느껴졌을 때 사탄이라는 존재가

두려움을 내게 폭탄 투하를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전 사탄이라는 건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요.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사탄이라는 게 진짜로 있는 건가요?


[..................]


왜 아무 말씀 없으시죠?


[ 넌 천사는 있다고 믿느냐?]



[ 그럼 사탄도 있다고 해야지 않겠니? ]


무슨 하나님이 이래요. 정확하게 말을 해 주셔야죠.



[ 정확하게 이야기해도 넌 의심하고 증거를 대 보라고 할 텐데]


제가 당신을 믿는다고 하잖아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죠?

전요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불교철학으로 얼마든지

마음의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사실 내가 두려움으로 인해 불안정으로 공황상태가 되었다는 게 좀 웃긴 얘기 같지

않아요?

마음은 일체유심조 내가 만들어내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원래 허상이라는 거죠.

허상의 것에 놀아나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는 게 말이 되나요?



[ 그럼 그 마음이라는 거 그 허상이라는 걸 만든 존재가 누구니?]



그거야 하나님이겠죠!


[너의의 시작과 끝을 내가 다 알고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내가 볼 때 너의

두려움의 근원은 완전히 날조되고, 어처구니없는 코미디 같아 보인다.

넌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사탄이 쳐 놓은 그물에 완전하 놀아나고 있잖아

나의 계획안에 있는 너라면 두려움의 근원조차 없어야지.]


난 그 정도로 당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못해요.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것도 하나 못하니]


그게 되면 제가 왜 주님을 붙들고 이러겠어요.

마음공부를 할 때 이것을 알아차리기라는 단어가 있어요.

알아차리고 더 이상 분별하지 않으면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 그럼 마음공부나 열심히 하지 왜 날 붙들고 있는 거니?]


전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간 그 자리에 주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요.


[ 내 생각에 넌 갈길이 멀어 보인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생떼를 쓰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할 말이 없네요.

오늘은 너무 많은 얘기를 한 것 같군요.

주님 내일 다시 올게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은혜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