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하게 오븐 안에서 구워져 가는 굴비의 자글거리는 기름 소리가 들릴 때
고소한 참기름에 볶은 북어국이 우윳빛 빛깔로 나를 반긴다.
샐러드위에 얻은 키위 소스의 연둣빛 달콤함은 사랑하는 연인의 키스처럼 탐스럽다.
햇살이 넉넉한 창가의 풍성한 식탁에 앉아, 아침에는 나른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미각을 파고들며 혀끝을 묘사하고, 따스하고 포근했던 잠자리 속으로 다시 파고드는
식곤증이 발가락을 이불속으로 유혹한다.
감성적인 음악 속 티타임은 커피 향기 속 멜로디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글은 일상의 한 부분을 찬미하다가.
아주 잠깐의 사치를 걷어내고 초점 없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진다.
아무것도 특별할것 없는 일상.
나의 이 평범한 욕망을 탐미하는 글 조차도 함께 읽고 내 행복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한다.
내 행복에 잠시 스산한 바람을 느끼며 스쳐갈 한 사람의 마음에서 멈춘다.
내 행복을 긍정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소외된 마음에서 멈춘다.
그리고 잠시 일기장 속에 행복을 감춘다.
내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는 그런 글은 없을까?
내 사랑이 잠시 모두의 마음속에 머무는 그런 글은 없을까?
신을 믿고, 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복이라는 가치를 바로보기 위해서 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만든 행복 속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행복의 의미를 자신만의 것으로 다시 재구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재구성한 행복한 삶과 글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
고통이 완화되면서 찾아오는 행복의 가치를 쓴 글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가 그 어떤 한 사람에게 잠시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은
오늘 지구를 한번 구하고, 우주를 한번 더 구한 사람이다.
글이 언어의 사치가 아닌 마음을 만지는 글이 될 수 있다면 부처님이 하신일과,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즐거움의 바닷속에서 내 즐거움의 거품을 걷어내고,
마음 밑바닥에 그물을 던져서 쓰인 글.
그물 속으로 딸려와서 건져 올려지는 자잘한 잡동사니들을 본다.
웃음과 행복을 바닷속으로 놓아준다.
고통과 불행을 남긴다.
아픈 이야기들이 식탁에 차려진다.
오늘의 양식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노인과 바다처럼 오늘 내가 잡은 물고기가 고통이라는
이름뿐이어도, 나는 신비한 힘을 가진 어부가 아닌가!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힘이 있지 않은가!
바다는 이제 더 이상 고기를 낚는 낚시터가 아니다.
헤밍웨이가 바닷속을 걸어 나와 연금술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