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빌런들

파괴자

by 토끼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에서 내 삶은 어떤 드라마 장르에 가까웠을까?

멜로는 아닌거 같고,

스릴러도 아니고,

컬트무비도 아니고,


지금 내 상태를 본다면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등장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고,

모든 문제는 언제나 나라는 적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빌런들은 몇 안되지만

지나고 보면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조잡한 악당들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악당은

빌런들을 핑계 삼아 내 자아들을 조종해서

내 안에 삐뚤어진 자아들을 탄생시키고, 계속해서

진화해서 나를 무너뜨리는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가 자기가 싫어하는 이들이 빌런이라는

이름으로 칭해진다면

나 또한 상대 빌런의 최대의 빌런이다.


인생에서 빌런들은 내 삶을 흔들고 상처를 주지만

인간은 빌런들을 통해 성장한다.

시간은 과거의 빌런들을 선하게 둔갑시키기도 한다.


빌런들을 내 인생 드라마에서 추방시키면

내 성장 원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과거의 빌런이든

지금 내 일상 속에서 알짱거리는 빌런이든

빌런들은 늘 필요하기 마련이다.

빌런들이 나에게 한 짖을 통해서 내가 새롭게 태어나게도 한다.

때론 최악의 빌런이 깨달음의 스승이 되기도 한다.


마음속을 한번 들여다 보라?

최고의 빌런은 나를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게 한 스승이고,

최악의 빌런은 나를 아직도 나 자신 안에 가두고,

증오심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는 파괴자이다.

스승을 만들어서 휴먼 드라마를 만드느냐

파괴자를 만들어서 전쟁 드라마를 만드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한 빌런을 생각한다.


드라마가 시작하면

헤이리의 따뜻한 봄날을 배경으로

한 무리의 배우들이 다정한 한때의 시간을 보내면서 시작할 것이다.

서로의 얼굴에는 여유와 웃음 따뜻한 미소가 넘쳐난다.

하지만 결국 관계 안에서 서로 갈등하고, 욕망하고, 질투하고, 상처받고,

하나의 연극무대가 비극의 결말을 내고 막을 내렸다.

모두가 관계 속 패자들이 되었다.

모두가 피해자고, 가해자들이었다.


나의 빌런은 내 인생 휴먼 드라마 안에서 온화한 미소로 남아있지만

여전히 그의 드라마 속 나는 파괴자라는 최악의 빌런으로 남아있다.


나라는 인생의 예술작품 안에 도덕적 잣대가 아닌

미학적 잣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인간 하나하나를 예술품으로 본다면 악이라는 예술품에게

파괴당하지 않고, 망가지지 않고, 더 나은 예술품으로

남겨지는 드라마가 남는다.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고, 스릴러를 코미디로 만들어서

모든 인물들을 새롭게 재 창조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익숙한 사람들과 시리즈를 계속 올리고,

서로, 울고, 웃고, 미워하고, 실수하고, 화내고, 기대하고, 사랑하고,

상처 주고, 싸우고, 공감하고, 기대고, 배려하고,

그렇게 연극은 계속된다. 늘 언제나 좋은 배역만을 맡을 수는 없다.


악당도 되고, 현자도 되고, 술주정이도 되고, 영웅도 되고,

다양한 존재의 캐릭터가 되어 서로의 배역을 빛내 줄 수도 있다.

자기 인생 드라마의 작품은 늘 마지막에 혼자 남는 드라마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공연이 끝나면 퇴장시켜야 한다.


내 인생에 주연배우는 늘 나 하나로 끝나야 한다.

고독하게 혼자 남아서 또 남은 연극을 준비해야 한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처럼

오늘이라는 무대를 바라본다.

오늘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하는 배역을 멋지게 소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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