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언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by 토끼

한산한 퇴근길에 아이를 안은 엄마가 앞에서

걷고 있었다.


20대 젊은 엄마는 3살쯤 되는 아이를 안고,

눈을 마주치며 반달 눈웃음으로 얘기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뒤에서 속도를 맞추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땠어? 콧물은 얼마큼 나왔어?


"응 한 바가지 나왔어, 휴지를 이만큼이나 썼어."


"원래 감기 걸리면 아픈 거야. 아프고 나면 우리 꼬맹이 키가 요만큼 더 커질걸."


"성준 이형보다 더 커 엄마?"


"엄마는 우리 꼬맹이가 더 안 컸으면 좋겠어. 그래야 이렇게 늘 꼭 안고 다니지."


"엄마는 날 안는 게 그렇게 좋아 안 힘들어? "


"엄마는 우리 꼬맹이 안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 폭신 폭신한 이불같이 따뜻하고

보들보들해."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마음에

따스한 바람이 이런 느낌일까!

젊은 엄마 목소리는 산들바람 같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쉴세 없이 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분명 나중에 크면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엄마와 나누는 지적이고, 다정하고 감성적인 언어를 어린아이부터 배울 테니까 말이다.


우리 엄마도 어린 나를 안고 저렇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있었을까?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엄마는 필요한 말 이외는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 분이었기에

아무리 상상을 해도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와 나눈 대화중에 가슴 뭉클한 대화는

기억에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대화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채근대는 나에게


"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라고 일침을 가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피아노는 나에게 못 올라갈 나무구나.


그때 엄마가 나에게 규정해 버린 세계 때문에 나의 꿈은 한 뼘 더 작아져서

실현 가능한 것만 꿈꾸고 축소되었다.


만약 그때 어린 나에게 엄마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 피아노가 왜 배우고 싶니?

지금은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게 해 줄 능력이 못되지만 네가 배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리 조금 더 생각해보자. "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라는 엄마의 주문은

어린 맘에도 너무나 뼈아프게 와닿았고. 그 뜻을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에게 피아노는 음악이 아니었다.

피아노는 돈일뿐이었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엄마로부터 배신을 꿈꾸게 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던 게...


엄마가 원하는 건 하지 않겠다고....

엄마가 나에게 심어준 언어는 돈과 엄마의 바람에 저항하는 언어들을 싹트게 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경제관념이 아주 희박한 그런 아이가 잉태됐는지 모른다.


용돈을 주면 한 번에 다 써 버리고, 남은 시간은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어머니의 언어는 언제나 돈과 연관 지어지는 언어였다.


엄마에게 책은 교과서만 인정됐다.

"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니 쌀이 나오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일 텐데, 엄마도 자주 쓰는 말 중 하나였다.


7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셨던 엄마는 삶이 고달프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이 서툴렀다.

허왕된 꿈 따위보다는 안정된 삶을 가져다주는 일과 돈 되는 일이 중요했다.

어머니의 언어는 감성적인 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나의 언어는 누구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을까?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더 예민하고 깊은 나의 감성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을까?


분명 가족은 아니다. 아버지도 언니들도 오빠도 우리 가족들은 살갑게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 시절 늘 고민했다. 고상하고, 우아하고, 뭔가 폼나는 그런 언어는 문학작품이나

tv에만 존재하는 언어는 분명 아닐 텐데.... 일상에서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기란 힘들었다.


그러니까!

내 언어의 절반은 어린 적 일상에서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대한 반발심으로부터 탄생한다.

나라면 저런 언어를 쓰지 않을 텐데....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 텐데....


나의 언어는 논리적이기보다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따뜻함을 주는 언어이고 싶었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가슴 뭉클한

다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들의 언어로 더 리얼하게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늘 다른 언어들의

향연을 맛볼 수 있는 매력은


배우가 연기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다양한 대화들을 통해서다.



글을 쓰기 이전에는 드라마 대사는

작가들 만의 상상력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도 늘 자신만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면 드라마 속 대사보다

더 리얼한 말들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 우에서

자페스 팬트 럼 장애가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남자의 누나 집에 인사를 하러 갔는데

우연히 누나가 남자에게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여자를

데려와야지

네가 보살펴 줄 여자가 아니라.


이 말은 우영 우에게 현실의 벽을

깨닫게 하고 이별을 결심하게 한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영우는 남자와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다짐하고

이준호에게 이별통보를 한다.


나는 나만의 세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앞으로

나는 당신을 외롭게 할 겁니다.

나는 그걸 해결할 방법을 모릅니다.

라고 이별의 이유를 설명하고

둘은 헤어졌었다.


어색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남자 배우 이준호는

아주 담백하게 차 안에서 고백한다.

대충 이랬던 것 같다.



변호사님을 향한 제 마음은 고양이를 향한 짝사랑 같아요.

고양이는 집사를 가끔씩 외롭게 만들지만 그만큼이나 자주 행복하게 만들어요.

고래 이야기를 들을 때, 변호사님이 짠 데이트 목록을 수행할 때, 좋은 생각이 떠올라 반짝거리는 눈을 볼 때 행복해요.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지 말아요"

라는 말로 그녀를 붙잡았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우영우는 "고양이를 향한 짝사랑이란 말은 부적절합니다. 고양이도 집사를 사랑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나의 해방 일지에서


추앙해요.


라는 단어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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