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나 공연을 꼽으라면 어떤 공연이었는지...
몇 년 전 뮤지컬에 빠져서 한 달에 몇 번은 꼭 뮤지컬 공연을 보러 다녔었다.
아마 비싼 공연료 덕분에 뮤지컬 캣츠나.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공연들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뮤지컬은 화려한 의상이나 현장감 느껴지는 음악이 관건이라 티켓값이 아깝지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수들의 대형콘서트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에릭클립튼 공연이 그랬고, 리카, 마이클잭슨, 마돈나 공연이 그랬듯이 큰 대형화면을 주시하면서
아 저기 움직이는 사람이 마돈나구나, 난 지금 마돈나와 함께 이곳에서 있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흥분됐을 뿐이다. 콘서트장에 모인 사람들의 흥분과 그때 그 현장에 있었다는 현장감.
그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떼창문화를 한번 경험해 보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모든 경험을 함께 넣으면 추억에 남는 공연이지만 내 영혼을 울리는 느낌을 담지는 못했다.
어쩌면 좀 더 기억에 남는 공연은 홍대의 작은 클럽들에서 더 찐한 음악의 감동을 느끼곤 했고,
EBS스페이스 공감 같은 공연장에서의 공연들이 훨씬 더 좋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라이브카페에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올드팝음악밴드 정모에 참석했다. 원래는 분기별로 하는 정모인데.
재개발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추억을 남기자는 취지였다.
올드팝 음악밴드에는 음악 하는 전문뮤지션이
서너 명 있는데.. 딱한 사람, 늘 엇갈려서 만나보지 못한 분이 있는데... 어제 그 기타리스트가 참석했다.
동영상으로만 보던 그 현란한 기타 연주를 실제로 본다는 기대감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음악밴드멤버들은 정말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버스기사, 뮤지션, 교사, 자영업자, 백수, 강사, 사업가, 주부, 시인, 기술자.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직업얘기를 하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친한 지인 몇 명과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즐기자고 시작한
작은 모임이 밴드를 만들고, 이래저래 6년 가까이 끌고 왔다.
우리 밴드의 특징은 모두 음악적 관심은 많은데.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글쓰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인문학적 소양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시인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말하나는 청산유수인데 어떻게 밴드 게시판에 글한 줄은
안 쓰고 사유의 글하나 안 올리는지 나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나름 자신들의 삶의 철학은 있는 분들이다.
가끔은 글만 나불대는 내가 그리 특별할 것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내 글을 잘 올리지는 않는다.
그냥 음악만 올리면서 즐길 뿐이다.
밴드에서 내 위치는 막내 동생이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던 날 내 차례가 왔을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 안녕 얘들아 난 정다방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
라고 인사해서 어르신들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도 있는데. 나의 이인사 계기가 되어 그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한다. 이곳에서 나의 닉네임은 정다방이다. 처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진짜 다방을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커피 배달은 안 하세요"
" 커피 배달도 하죠. 메뉴 알려 드릴게요. 프란츠 카프카 800원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나는 오규원시의 프란츠 카프카라는 시를 들먹이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정다방이란 이름은 예천을 여행하다 우연히 들른 다방에서의 추억 때문이다. 늙은 마담언니가
혼자 배달부터 서빙까지 하면서 힘들다며 툴툴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정다방이 좋아졌다.
고만 고만 한 회원들이 저마다 조금씩 악기를 다루고, 연습하며 라이브카페 안은 서로 삑사리가 나도
늘 즐겁과 유쾌한 시간들이었는데...
어제는 모처럼 프로 연주가의 음악이 시작되자 역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연주보다 그의 노래에 매료되었다. 그냥 동네 아저씨 개나 소나 다
부르는 아파트라는 노래에 뭐 새로울 게 있을까 싶었는데...
그가 부르는 아파트는 마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금아파트 같은 독보적인 곳처럼 느껴졌다.
최근 들어 처음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에 끌어 오르는 열정을 느꼈다.
어떻게 저렇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지... 그것도 가수가 아닌 기타리스트가... 그의 보컬은
평범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와 표정 몸짓 무대 장악력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멜로디의 일부가 되고,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기타를 연주할 때와 흡사한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그런 표정을 보고 있는데
그 쓸쓸함과 신비스러움 억척스러움. 허탈함, 결핍. 따스함 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하머 터면 포옹을 할뻔했다.
그는 지금 다른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가. 착각할 정도였다.
조명은 은은했고, 기타 소리 건반소리 드럼소리가 느리게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술도 한잔 했고,
아마 이 모든 것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서 심하게 오버를 해서 든 느낌 일 테지만
어제의 그 전율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의 연주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면 입을 모아
그런 말을 했으니 내 느낌은 조금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연예인의 피는 타고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나는 가수 현아를 보면 그런 걸 가끔 느낀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뿐 아니라 토크를 할 때도 가수 현아는 정말 끼가 있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랑받고, 관심받고, 대중들로
부터 자신을 홀릭하게 만드는 그런 본능적인 끼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홀리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게 있겠지만 자신만이 가지 개성과 매력으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이 분명 있다.
그것이 "끼" 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고, 쭈뼛쭈뼛 거리며 손뼉만 치고, 있는 친구조차도 부러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어색하지만
자신만의 끼를 가지고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음악밴드의 최고 연장자는 49년생 아저씨인데... 나는 이분을 주익형님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아직도 무대에서 춤을 청년들보다 잘 추고, 각종 행사에 초대되어 취미로 노래를 부르시는 분이다.
이분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언제 봐도 젊게 사신다. 이분의 끼는 몰입이다.
그는 노래가 시작되면 그 어떤 사람의 노래에도 리액션으로 호응을 해주신다.
3시간 내내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
예를 들면 앞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은 옆사람과 수다도 떨고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딴짓을 많이 하는데
이분은 한결같이 노래나 연주하는 무대를 주시한다. 한마디로 그분의 몰입의 끝판왕이시다.
이렇게 노래와 순간을 즐기시는 분이시니 마음뿐 아니라 몸도 나이를 먹지 않는 게 분명하다.
밴드는 지인들의 소개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멤버가 가끔 들어오기도 하는데... 어제는 새로운 얼굴이 한 명 있었다.
62년생 아저씨였는데... 첫인상과 목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있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은 백수지만 러시아어를 전공해서 오랫동안 러시아에서도 살았고,
러시아 관련일을 주고 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중저음의 목소리에서 벌써 기대감이 몰려왔다.
그는 주로 퀸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는데... 모니터 화면을 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다 외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노래가 시작되자 숨소리를 죽이게 만들었다. 고음에서는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파워풀한 시원한 내지르는 소리가 났다.
입이 다물어 지지지가 않았다. 앉은자리에서 백곡도 더 들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목소리 톤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그냥 감탄 또 감탄만 연발하다, 그의 무대가 끝나고, 그가 비어 있던 나의 옆자리에 와서 조용히 앉았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다음 멤버의 색소폰연주가 무대에 올려졌다. 러시아어 잘하는 아저씨에게
노래를 너무 잘하신다고 넋 나간 듯 감동의 인사를 전하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저 사실은 제가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기분이 다운돼서 방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여기에 왔는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뜨끔했다. 많고 많은 자리 중에 내 자리로 와서
해필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 얼굴에 나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라고 씌어있기라도 하는 건가.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니 마음이 또 아린다.
" 아 잘하셨어요. 요즘 마음이 멀쩡한 사람별로 없더라고요. 주변에 보면 다 아프고 그렇더라고요"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박수가 터지고, 또 새로운 노래가 시작된다.
옆에 있는 동생에게 베이스기타를 치고 있는 뮤지션에 대해 물어보았다. 동생은 세 번째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 그래서 지금은 어디서 연주하고 있는 건데... 나 저렇게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 요 근래 처음 봤어
자기 공연은 안 한대?"
" 언니 저분 원래 자기 라이브 카페 하고 있었는데.. 망해서 지금은 그냥 골프장에서 경비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 헉 음악 하는 사람이 무슨 경비야"
" 그게 50 넘으면 세션으로도 일하기도 힘든가 봐."
" 아니 밤무대나 그런 무대도 있잖아? "
" 그게 기존에 토박이 기타리스트들이 다 꿰차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아무튼 계속혼자
연주 영상은 올리고 있더라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 여전한 거 같아"
우리의 대화는 또 빠른 템포의 노래 때문에 중단됐다. 우리는 기타를 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를 보면서
동시에 마음이 또 아린다.
처음 이 모임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 아니 무슨 노래를 노래방 가서 부르면 되지 돈 아깝게 밴드 갖춰진 곳에서 불러요. 그리고 전 그런 칙칙한 공간이
싫어요. 노래 부르는 거 별 취미도 없고요. 전 클래식음악이 더 좋아요."
라고 주저 주저 했었다. 하지만 막상 모임에 들어가 어울리기 시작하니 서로 같이 호흡을 맞추어 연주하고,
어울려 노는 일이 재미있었다. 밴드마스터를 부르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래를 즐기는 것이 노래방에서 노는 것과
많이 달랐다.
1부 타임이 끝나고 2부 타임이 되자 나는 에너지가 방전돼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사람들은 관찰하였다.
그들의 표정과 춤 노래 손뼉 치는 모습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깊어가는 밤만큼이나 저물어 가는 인생에 이런 즐기고 노는 일탈의 행위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뮤지션이지만 무대에 서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기타리스트.
노래를 가수 뺨치게 잘하지만 가수는 되지 못한 러시아어를 잘하는 아저씨
춤도 잘 추고 싶고, 노래도 잘하고 싶지만 , 몸도 목도 따라주지 않아, 박수만 치고 앉아 있는 수줍은
가정주부. 노래를 못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중년의 아저씨.
막춤을 기갈나게 추면서 그 어떤 음악이 나와도 똑같은 춤사위를 보이는 낭만처자.
올드팝밴드에서 가요만 부르는 아저씨.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기타까지 잘 치는 어느 시인
입퍼플노래를 샤우팅을 하면서 부르는 영어선생님,.....
그들은 잠시 노래 속에서 다른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들을 보면서 즐거움이 또 다른 이름을 갈채와 환호라는 이름으로 대체해 본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게 환호하고, 감동하며, 갈채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대체한다.
그들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수많은 인생들에게도 갈채와 환호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