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우리는 서로 무엇을 말하려고, 수많은 시간 그렇게 서로를 붙들고
침을 튀겨가며 서로의 영혼에 속삭이며 서로를 갈구했던 걸까?
내 이야기에 맞장구쳐 주는 너의 언어에서 나는 상어의 입속으로 그냥
휩쓸려 들어가는 이름 없는 물고기로 니 앞에 있다가,
너와 이야기 하는 그때부터 한 마리 고래가 되어 다시 상어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곤 한단다. 우리가 즐겁게 유영하는 바다 이야기에서 상어는 포식자도 아니고,
작은 물고기는 약자도 아니야 그냥 바닷속하나의 소중한 생명일 뿐이지.....
친구야!
네가 나를 신뢰하는 눈빛은 내가 앞으로의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를 거부하고,
예전의 나를 데려와서 그 약하고, 서툴고, 못난 모습이 나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손잡아 주곤 한단다.
그런 나의 시간을 견디어 주어서 이렇게 우리가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우리가 있었기에 지금 서로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가 있었다고....
가끔은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 뭔가를 포장하고 싶다가도,
너의 그 투명한 마음 앞에서는
나를 포장하는 가면이 아니라.
나를 하나씩 벗겨내는 집게 같은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지금의 내가 하나씩 채우는 지식과, 성찰과 , 통찰이 앞으로의 새로운 내 모습으로
내가 성숙해져 가리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새로운 이야기들은 어쩌면 과거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소로 같은 그런 작은 길들이었어.
그래서 내 몸의 껍질들을 하나씩 벗겨나가면서, 나는 어린아이 같아지고,
순수해지고, 맑아지는 걸 느낀단다.
너는 내가 무얼 더 많이 알고 있는지, 어떤 일을 앞으로 더 할 건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걸 물어보곤 했어.
깊고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은
자꾸만, 내가 꿈꾸고 있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했어. 나는 내가 꿈꾸고 있는
그곳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아이는 너와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었어.
우리는 그 넓은 결핍의 광야에서 만나서, 별처럼 떨어지는 허무를 온몸으로 받아 빛나고 있었지만
함께 웃을 수 있었어.
우리 마음이 만나서 함께하는 둘의 대화에는 결핍의 광야를 가로지르는 사유의 야생마가 달리고 있었고,
허무의 빛을 부수는 오로라를 만들 에너지가 있었어.
너를 처음 만나 너만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너의 마음을 느끼고, 너의 우주에 발들여 놓았을 때,
너는 조금은 차갑게 나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다정하게 나를 끌어당기기도 했었어.
그 무수한 인연의 행성들이 지금도 어지러이 우주를 돌고 있어.
나는 너와 같은 속도로 돌면서 너와 대화를 나누려고,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면서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런 노력이 필요 없음을 느껴,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는 하나의 행성으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이 거대한 우주는 그 힘의 흐름을 맞추어 너와 속도를 맞추어 주었어.
나는 이제 그 무수한 인연들이 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서로를 부쑤고, 해체하는지를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었어.
청춘의 풋풋함을 나누던 그 아름답던 시절의 우리 많은 인연들은 지금 우리의 시간을 위해 존재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의 인연을 위해 또 양보하게 되겠지.
우리의 속도가 어긋나서 서로에게 머물지도 못하고, 서로 눈빛조차 나눌 수 없을 때조차도,
우주 속에서 빛나는 너를 느낄 거야. 우리가 지상에서 나누었던 그 많은 이야기와 마음들이
소혹성이 되어 우주 속에서 떠다니고 있는 게 보여
어쩌면 난 그 소혹성에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 둘만의 소혹성에서 쉬고 있을지도....
너는 저만치 다른 궤도에서 돌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좌표는 소혹성을 찾아서 그곳에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면서, 어린 왕자로
살아가고 있을 거야.
너의 웃음들을 별에 새기고, 너의 한숨을 우물 속에 숨기고, 너의 고독을 여우의 꼬리 속에 숨기고,
너의 언어하나하나를 흙속에 남기고, 대지는 기름지게 나무들을 자라게 할 거야.
우리 인연은 현실 속에서, 과거 속에서도, 미래 속에서도, 없어도 돼
지금 우리 마음에 가져가면 돼.
사랑한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