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덜어내기 위해 쓰는 글은 시간의 흐름을 가끔 잊곤 한다.
한 달 전 질투에 관한 글을 쓰면서,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는 오랜 전 친구와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나에게 고백하고 나서
위로와 격려, 나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나로부터 손절대상이 되었던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사지로 몰려 혼자 힘들어하는 그녀를 손절하고,
나 또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리 긴 글도 아닌데,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찌고, 기지개를 편 뒤
시간을 보니 5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걸 알았다.
보통은 한 시간 정도로 글을 마무리하는데.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시간의 흐름을 망각할 정도로 이야기 속에 빠져있었다는 걸 느낀다.
이 글이 4시간이란 시간이 걸릴 만큼 긴 글인가 싶어 읽어보면
특별한 내용도 없다는 걸 느낄 때 글을 쓰는 중간중간 많은
생각 속에 있었다. 그때의 생생했던 대화들과 표정 상황들을 소환하여
재배치하는 일속에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와 감정들을 만날 수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조금은 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글쓰기의 매력은 이랬다. 처음에는 나의 죄책감 같은 걸 덜어내려고 시작한 글에서
쓰다가 보면 전혀 얼뚱 한 방향 으로 주제를 설정해 버리기도 한다.
죄책감이 동질감이 되고, 감정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덜어내 버린 감정에
또 새로운 감정을 하나 더 생성하게 만드는 뜻밖의 여정이 바로 글쓰기의 여정이다.
현실에서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자신의 은밀한 치부와도 같아서 달콤한 죄책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있고, 혼자서 그 비밀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간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모든 비밀의 어두운 그림자뒤에는 숨기고 싶은
나약하고, 옹졸하고, 비겁하고, 불안한 자아들이 자신을 합리화해서
버티고 서 있다.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비밀을 고백할 때는 견디기 힘든
자신의 현실을 조금은 덜어내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센치멘탈 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헤어졌으면 끝난 일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일인데...
이미 끝난 일에 미련이 남아 실연의 아픔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고백을 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로받고 싶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일까?
이별을 선택했던 자신의 선택이 정당하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이별을 통보받았지만 자신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자신의 존재감은 죽지 않았다고
확인받고 싶은 것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니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시간 속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것일까?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 비밀은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고, 단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도 있다.
비밀을 공유한 사람과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비밀을 지켜줘 "라고 이야기할 때 두려움이 드는 이유는
그 비밀을 듣는 순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남의 치부가 드러나는 비밀이라면, 지금껏 알고 지내왔던 이미지가 한순간
사라지고, 기만과 위선이라는 민낯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히스토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되어진다.
똑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다르게 그 사건을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다.
특히나 연애사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랜 전 절친의 한 연애사가 그랬다. 그녀에게는 아주 작은 질환이 있었는데,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겨, 팔이 작게 흔들리는 그런 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연애한 지 석 달만에 그녀는
남자에게서 고백 같은 말을 듣게 된다.
" 혹시 그거 아세요? 연수 씨 팔이 떨리는 증상이 있다는 거,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좀 당황했어요.
팔이 좀 심하게 떨렸었거든요. 딱 손절각이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미팅하러 나왔는데.. 팔을 떠는 여자가 있다면 누가 그 여자를 택하겠어요.
근데. 연수 씨를 그다음 날 만났을 때는 조금 더 나아졌고,
또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조금 더 나아졌고, 점점 나아져서 지금은 제가 거의 못 느끼고 있어요.
저는 우리의 사랑이 연수 씨에게나 저에게 서로를 이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이 돼요.
우리의 사랑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든 거 같아요. "
남자는 이 이 이야기를 감동적인 하나의 러브스토리쯤으로 고백하겠지만
그날 그녀에게는 아픈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자신을 치욕적이게 만든 날이 돼버렸다.
그 두 사람은 이날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멋진 여자이고 싶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그 어떤 질병이나 치부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상대가 그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은 충분히 아파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고민했던
흔적이 보였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그런 모습이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여겨졌었다.
그녀 자신도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생겨버린 증상이었기에 자신의 이런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 치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남자에게서 손절각이라는 예민한 이야기를 듣게 되자
남자의 선한 의도와는 반대로,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살아 났다.
그녀는 자신이 그 많은 시간 자신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느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이 찾아왔고, 다시는 남자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이별을 선택했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는 사랑했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각성시킨 대상이 돼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정말 억울했다. 그는 그녀의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오히려 이별을 통보받고,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몰랐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자신은 그녀의 모든 걸 사랑했는데... 이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접어야 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관점에서만 서로를 사랑하고, 해석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도 존재하고, 또 다른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단지 이 사건 때문에 이별을 선택한 건 아니다.
이 사건은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우리의 모든 비밀 속에 사건, 사고 또한 그 이야기 속 진실은 따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비밀의 속성은 잔인하다. 도덕적인 잣대를 달고 있다.
하나의 비밀 속에 인간적인 잣대는 필요하지 않다.
먼저 누군가를 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비밀 속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원망과
분노가 존재한다.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는 절대 비밀이 될 수가 없는 이유이다.
반듯하고, 가정을 챙기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롭고, 순수한 사람이
뒤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라는 도덕적 타격이 먼저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그냥 흔하디 흔한 연애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사생활일 뿐이다. 나에게도 앞으로 일어날 수 있고, 아니 나도 하고 싶지만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일 그런 일일 뿐이다.
그냥 단순한 이별이야기일 뿐이다.
이별이야기를 듣었을 뿐인데... 그것이 비밀이 되는 이유는 몰래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비밀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남들이 나를 무시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나를 견고히 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포장하는 이유는 관심을 받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어필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모습을 가장하기 위해 종종 거짓과 허영, 과장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포장지가 벗겨지면, 스스로가 허접해지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언제난 스스로의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 긴장하면서 산다.
우리의 스마트폰 안에는 이런 무수한 관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스마트론 속에는 현실세계의 나와 스마트폰 속의 나로 이원화 되어 있다.
누군가의 비밀이 스마트폰 속에서 목소리고 전해지고, 글로써 전해지고,
은밀하게 숨겨지고 보관되어 있다.
세상은 약간의 거짓과 비밀이 있어, 은밀하고, 윤택하게 관계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솔직함만이 있는 관계는 사실살 유지 될 수가 없다. 비밀은 나를 지키기 위서만은 아니다.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솔직함이란
나에게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어떤 민낯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듯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실수를 하고,
도덕적이지 않다. 사실은 도덕적인 잣대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사건사고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건사고 간 비밀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될 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뿐이지 비밀이 아니다.
단지 이야길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너는 왜 그 일을 나에게 비밀로 했니?라고 물었을 때
내가 왜 그 일을 너에게 얘기해야 하지? 그건 내 사생활일 뿐이야 하고 하면 끝날 일이다.
나에게 보이는 타인의 모습은 다양하다.
공적인 위치에서의 타인
개인적인 위치에서의 타인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적인 타인.
그래서 우리는 타인이 나에게 행하는 그 어떤 행위에 대해 뭐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상처받을 수는 있어도,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따져 물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가 동일한 사건을 두고 같은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처받았다고 하는데... 상처받은 두 사람만 존재하고
상처 준 사람은 없다. 그러면 결국 서로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셈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타인을 지옥이 되기도 하고 완변한 타인이 되기도 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도, 사건하나로 남남이 되고, 그렇게 믿었던 사람도
비밀하나로 완전히 원수가 된다.
인간은 모순과 빈틈 덩어리의 불환전한 결정체이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에게 완벽하기를 바란다. 이런 모순덩어리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비밀 앞에서
언제나 무너지고, 그 어떤 비밀을 숨기고, 휘둘리게 될 것이다.
비밀이 비밀이 아닌 순간이 될 때 조금은 관계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