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넌 누가 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잡을 거야?"
친구의 말에 문득 지난 시간 나를 거부한 사람들이 스쳐갔다.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단 몇 줄의 말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도 있었고,
이유도 모른 체 한 공간에서 날 그림자 취급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유야 있었겠지만 나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날 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확실하고, 되돌리고 싶지 않아서 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았거나 힘들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쎄 한 번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화나거나 자존감이 무너지면 홧김에 무슨 말인들 할 수 있으니까?
부부싸움은 늘 헤어지자는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잖아, 부부싸움은
늘 자신의 바닥을 보이고야 끝이 나거든.
근데 연인이거나 친구이거나 그러면
조금은 다르지 한 공간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민낯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자기 바닥을 보일만큼 편한 상대가 아니잖아! 살을 섞은 사이 라고해도
싸운다고 해서
오랜 풍화작용으로 자연스레 부부처럼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나지는 않지.
오래된 부부란 그래서 좋은 거야.
자신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서로 아니까 더 이상은 실망할 게 없잖아.
하지만
다른 관계는
그렇지 않아!
또 나의 바닥을 확인하는 여정이 시작되는 거나 같은 거야!
그러니까!
두 번째부터는 그냥 보내 줄 거 같아.
내가 싫다는데...
잡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
이제는 싸울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모든 헤어짐에는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문제가 더 크겠지..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대의 모습과 말 행동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자기 내면이 붕괴되거나 힘들어서 버티기 힘드니
도망가는 거잖아!
아니면 자기 일상이 흔들리는 게 싫어서 자기 안에 숨는 거잖아,
순전히 자기 문제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자기 문제를 안고 있는 한은 늘 헤어질 궁리를 할지 모르니까
헤어짐은 반복되겠지.... 상대방이 싫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상대방 때문에 자신의 하찮음을 늘 발견하게 되니까
자신의 특별함도 사라지고, 새로움도 느끼지 못하게 되니까
함께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
헤어지자는 얘기는 한 번은 할 수 있지만 그다음에도 반복되면 깨끗하게 보내주는 게 맞아.
처음에 손절을 당하면 죽을 만큼 힘들지만,
한두 번 당하기 시작하니 이젠 손절도 당해도 크게 데미지가 없었다.
손절을 당하려고 나의 잘못을 고백해 본 적도 있다.
좀 더 편한 관계, 성숙한 관계를 위해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고
상대가 이런 나를 받아 줄 수 있다면 더 깊은 사이가 될 꺼라 판단했지만
돌아온 건 나의 잘못을 확대해석하고, 비난과, 실망, 그리고 손절당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결국 더 나은 관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긴 시간의
우정이 끝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유가 명백한 손절도 이유 없는 손절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손절에 담담해졌는가!
경험이 자꾸 생겨서인가?
그것도 답이 되지만.
더 중요한 건.
이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새롭게 알고 나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사랑하는 타인은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바람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물에 불과하다.
나의 믿음 안에서 만들어낸 모습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덧씌우면서 특별하게
여겨야만 사랑받고 있다고 여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이 변하면 절망하고 자신의 믿음에 배신당하고 서서히 우리의 사랑도 미움이나 증오로 바뀌고 결국 싸늘하게 식는다.
처음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곁에 두려고
가스라이팅으로 계속 유지해 나갈 수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사랑이 끝나는 것은 상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내 믿음이 변하고, 내 안의 불안정한 결핍이 버티기 힘들어서
타인을 손절하는 것이다.
이런 본질을 알고 나면 손절당해도 조용히 침묵할 수 있다.
얼마나 내면이 힘들면 그러겠는가!
용서하고, 상처받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믿음체계가 끝나고, 환상이 깨어지고,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을 찾아서, 원하고, 스스로 그 모습을
만들어내어, 끊임없는 합리화 속에서
상대를 자신의 틀에 맞추어서 맞춤사랑을 한 것이다.
내 뜻을 거스르는 행동에 실망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보고 있지 않으면 의심하고, 내가 원하는 걸 해주지 않으면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나 또한 이런 사랑, 이런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거리 두기라는 안전거리를 두고 깊숙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관계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우주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거쳐 왔지만
오는 사람 거부하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관계에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건
한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조금 더 성숙해진
나의 마음뿐이다.
나에게 있는 동안은 그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소유할 수없기에 보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