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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26. 2019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어!

지금

"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이 무서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
이 지긋지긋한 우울 속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
이 지루한 권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

"음...... 그건 간단해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되지........."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선구자를 찾아 도서관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처음 만난 작가는 오쇼 라즈니쉬였다. 그의 사후 추한 이야기들은 뒤로하고 오쇼 라즈니쉬는 한마디로 삶을 재미있게 마음껏 살다 간 사람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쇼 라즈니쉬의 틈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설명 하고 있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영원으로 통하는 틈이 있는데 그 틈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지금 이 순간의 느낌에 몰두하게 되었다.
인문학자나 철학자 영적으로 삶을 깨달은 영성가 들도 그 많은  동서양의 이론과 자신만의 이론들을 목이 터지게  떠들어대다가도 마지막 순간에는 말한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쉽지 않아서 지금을 고통스럽게 살고 사람들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
남에 눈치를 보면서 지금이 시간 속에 주인인 자신이 없는 사람들.

삶의 진리는 단순하다. 지금만 잘살면 행복은 겹겹이 쌓이고 미래도 당연히 겹겹이 쌓인다.  지금을 사는데 무슨 기술이 필요한 건가?
당연히 필요하다. 지금은 깨어있을 때 가능하다. 깨어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몹입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사유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비어있다는 말과 같다.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명상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즐기고 있다는 말과 같다.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깨어있는 순간은 정답이 없다. 굳이 정답에 가까운 말을 찾는다면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자유로운 마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요히 있는 것과도 같은 시간이다. 분별도 없고 판단도 없는 마음으로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한없이 싫고 고통스럽다면 지금을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기분전환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물어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은  그 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다. 고통과 싫음 스트레스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이다.
단 고통 싫음 스트레스를 나쁜 것으로 간주해서 자기 생각을 입히는 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 그 순간의 느낌을 저항하는 마음이 문제이다.
감정을 거부라고 저항하면 나에게 해를 입힌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만큼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표현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느낌을 찾아서 순간에 몰입하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우리 모두의 느낌은 각자 다르다.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읽고 나서 지신의 느낌과 사유를 함께 공유하면 된다. 독서는 먼저 나의 사고가 먼저여야 된다.
내 생각에 작가의 생각을 덛붙히는 것이지 작가의 생각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나의 기준이 먼저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이 매 순간 매초 바뀌고 사유의 범위가 넓어지면 또다시 그 느낌이 확장되어간다.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성찰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는지 스스로를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르면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은 어쩌면 모호해지는지 모른다.
나를 안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은 특별한 시간이 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의
주인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모습이 된다. 자신을 비워야지만 가능하고
자신의 생각을 멈추어야지만 가능하다. 비우고 멈추어야지만 자신을 정확하게 만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기도 하는 순간도 온전히 지기를 비우는 순간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과 이크하르트 톨레가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보고 나서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은 이제 밀어내고
톨레의 지금 이 순간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시작해 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지금 이 순간이 때로는 못마땅하고, 불쾌하고, 끔찍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불쾌하다' 든가 '못마땅하다'는 이름표를
어떻게 붙이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십시오.
이처럼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가,
그칠 줄 모르고 판단을 계속하는 행위가
고통과 불행을 창조합니다. 그 마음자리를 지켜보십시오.

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
당신은 되풀이되는 마음의 저항 습관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도록' 허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외부의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맛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고,
필요한 행동이나 가능한 행동을 취하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그러고 나서 행동을 취하십시오.
지금의 순간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언제나 '지금 이 순간'과 함께 움직이면서 거기에 저항하지 마십시오. '지금'을 적이 아닌 벗이나 동맹자로 삼으십시오.
당신의 삶 전체가 기적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힘에 접속되지 않으면,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고통은 그 찌꺼기를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이미 자리하고 있는 과거에 기인하는 고통과 합쳐져서
마음과 몸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물론 이런 고통의 찌꺼기들 속에는 당신이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당한 고통도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축적된 고통은 부정적인 에너지 장으로서,
당신의 몸과 마음을 점령하게 됩니다.
당신이 만약 이러한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자기 나름대로의 권리를 지닌, 보이지 않는 실체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진실에 아주 가깝게 접근할 것입니다.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은
고통의 근원을 찾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흙탕에 빠졌을 때 “좋아, 단념하고 진흙탕에 빠져
있겠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내맡김'이 필요합니다.
'내맡김'은 단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불유쾌한 삶의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 자신을 속이고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이
괜찮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차리십시오.
상황 자체에 어떤 식으로든 이름표를 붙여 단정 짓지 말고,


'지금'의 순간 속으로 주의력을 좁히십시오.
'지금'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저항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의 '있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고 나서 진흙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하십시오.
그러한 행동을 나는 긍정적인 행동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분노, 절망, 좌절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행동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지금'의 순간에 이름표를 붙이려
들지 말고, 계속 내맡기는 연습을 하십시오.
시각적인 비유를 들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
하겠습니다.

당신은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밤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손전등이 안개를 뚫고 당신 앞으로
좁다랗게 뚫린 밝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개는 당신의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삶의 상황입니다. 손전등은 당신의 깨어있는 현존이며
밝은 공간은 '지금'입니다.

내맡기지 않으면 에고는 굳어지고 세상 사람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되며 자연도 당신의 적이 됩니다.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 육체도 경직됩니다.

당신의 내면에는 분명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며 내맡김을 통해서만 거기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 실제로 필요한 경우에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씩 방문하도록 하십시오.
현재의 순간에게 항상 '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한 상황에 저항하는 것보다 무익하고 어리석은 태도가 있을까요?

삶은 항상 '지금' 이 있을 뿐인데도, 그러한 삶 자체에 반대하는 것보다 더 미친 짓이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 내맡기십시오. 삶에게 '네'라고 말하십시오.
그제야 삶은 당신을 거역하지 않고 당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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