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당신은 누구신가요?"

영화 다우더(Daughter), 참을 수 없는 모녀 관계의 무거움

by yeonjoo

영화나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양질의 작품을 골라 읽는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시간 낭비를 줄여주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소재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면 이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베스트셀러 서적,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랭크되는 영화는 사실 비슷한 소재로 비슷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우리가 늘 맞닥뜨리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고 또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낸다.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기에 오히려 낯설어지는 그러나 우리를 떠나지 않는 공기의 존재처럼.


배우로 더 잘 알려진 구혜선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다우더(daughter, 2014)는 후자에 속한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이루어지는 애(愛), 모성애는 고릿적부터 논의되어 온 흔한 소재다. 지구 상에서 '엄마'는 없어질 수 없다. 우리는 모체에서 태어나고 그 모체가 우리의 엄마가 되니까. 엄마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태양계가 없어져 신인류가 출현해 가족관계가 재편되지 않는 한. 이렇게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어머니의 사랑'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종의 감정이 생기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구혜선 감독, 영화 다우더(daughter)


산(구혜선)은 엄마(심혜진)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지만, 여전히 엄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포스터 속 엄마는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지만 묘한 사진 구도가 이를 상쇄시키는 것 같다. 영화 제목인 '다우더' 도 어그러진 모정을 표현한다. 감독은 다우더는 딸의 영어 발음 '도터'를 잘못 발음한 것으로 이를 통해 엄마가 딸에게 가한 잘못된 양육방식을 제목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빗방울 방울이 내 머리를 적실까 어머니의 손등은 나의 우산이 된다.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을까. 하얀 쌀밥 한 공기 한숨 한 접시 올려두시고 당신은 종일 나를 기다렸지요. 잠결에도 우리 딸 금세 시들어버릴까 닳아 없어질까. 우리 딸 노심초사했던 나의 어머니. 당신은 그림자처럼 나를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하얀 눈밭을 성큼 걸어 남긴 발자국에도 마른 낙엽이 밟힌 부스러짐에도 우리 엄마는 언제나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날까. 조심조심 문지방을 건널 때도 혹여나 넘어질까 조심조심.......


오프닝은 이렇게 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자식에게 품는 모든 엄마의 보편적인 마음이 아닐까. 산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가짜로 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나름대로 지극정성 산을 키운다. 하지만 이 모정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된다. 산의 엄마는 그야말로 '되지 말아야 할' 부모 모습의 집합체다.


산의 엄마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이로 인해 자신의 불행한 삶에 대한 결핍과 불만을 산에게 정서적,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것으로 표출한다. 산의 욕구나 감정을 무시하기 일쑤고 옷 입는 것부터 교우관계까지 산의 정신과 신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한다. 산이 조금이라도 반항할라치면 육두문자는 기본이요, 수시로 신체적 폭행까지 일삼는다. 공부 잘하는 친구와 비교, 아버지의 무관심, 인생 한탄("엄마처럼 살면 안 된다.", 네 아빠 만나서 내 인생 망가졌다." 등),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 등 온갖 해롭고 잘못된 생각으로 자식에게 상처를 준다.


산은 아버지로부터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는 암에 걸려 '종이호랑이'가 돼버렸고 이제 성인이 된 산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할 순 없지만, 정서적 방치는 계속된다. 엄마는 병상에서도 산이 걱정되는지 자신의 병원식을 산에게 내어준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먼저 물어봐야지, 그게 순서잖아."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봐서 당연히 결말을 몰랐다. 엄마와 딸의 갈등으로 시작해서 혹여 '급화해' 모드로 끝나 신파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결말은 매우 현실적으로 끝났다. 팽팽한 긴장이 그들을 감싼다. 여전히 엄마는 산의 행동을 질타하고 산은 이에 반발한다. 나 또한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임종 때까지 당신이 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받지 못했다. 화해의 요청도 없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모가 죽으면 급격히 화해 모드로 전환, 절절한 애정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며 마무리되곤 하는데, 이는 결코 현실적인 모습이 아니다. 관계의 오랜 뒤얽힘은 죽음보다 강하다. 감독 또한 이 영화는 화해와 용서의 드라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오프닝에서 끊어진 산의 내레이션은 엔딩에서 다시 이어진다.

빗방울 방울이 내 머리를 적실까 어머니의 손등은 나의 우산이 된다.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을까. 하얀 쌀밥 한 공기 한숨 한 접시 올려두시고 당신은 종일 나를 기다렸지요.......... 당신은 여자로 태어나 그리고 나로 다시 태어나 행복했던가요? 꽃씨를 심다 피지도 않은 꽃향기에 취했던 나의 엄마, 당신은 누구신가요?


좁혀지지 않는 관계에 대한 한계와 화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엄마에게 엄마는 누구야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누구긴 00 엄마지 하며 아이처럼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지만, 그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 엄마와 그만큼 괴로움을 준 엄마. 평행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참 안타깝고 어찌할 수 없는 관계.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엄마는 산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저 내레이션처럼 엄마는 산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던가. 지독한 애증의 관계다.


사이좋은 모녀 관계라면 그 관계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을 것이다. 이상 기류가 없는데 오히려 그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무언가가 뒤틀렸다면 의문과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나의 엄마, 당신은 누구신가요? 산에게 엄마의 존재는 일관성이 없는 그래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였을 것이다. 관계 맺기는 참 어렵지만, 피로 이어진 부모와의 관계는 더욱더 그렇다. 차라리 타인과의 관계는 쉽다. 수틀리면 끊어버리면 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내가 주도적으로 택할 수 있으니까. 부모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나에게 지워진 숙명 같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엄마라는 굴레를 극복해야 하고 자신도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에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산에게는 엄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산의 남자 친구와 어릴 적 산을 정신적으로 지지해주었던 피아노 선생님은 산에게 빛과 같은 존재다. 아이들에게는 부모라는 보호막이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부모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보호자만 있어도 심리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산은 어릴 적 엄마의 폭행으로 귀를 다쳐 그 후유증으로 악몽과 이명에 시달린다. 남자 친구는 이러한 산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피아노 선생님은 산의 엄마와 대조적으로 '되어야 할 보호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선생님은 산처럼 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 갈등으로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간다. 선생님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독이 되지 않게 잘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멀리 있지 않다.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처럼 피아노 선생님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모라는 존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지켜가면서 부모님을 나름대로 (숙고가 결여된 무조건적 용서가 아닌) 극복해간다. 선생님의 정신적 건강함과 섬세함은 산을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산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산의 감정을 섬세히 알아차리고 반응해준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자식에게 못 할 짓을 했지만, 부모를 한 인간으로 가엾게 여기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이해한다


영화는 꼭 관계의 문제점이 깨끗하게 해결돼야 하고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억지와 강박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족을 자신을 갉아먹지 않은 선에서 얼마만큼은 극복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보여준다. 난해한 관계에 대한 이성적인 생각이며 최선의 대응이다.

​"어머님이 사과는 하셨니."
"그럴 리가요."
"부모는 부모란 이유로 자식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게 두려워요. 제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넌 좋은 부모가 될거야, 넌 알잖니,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산은 오랜만에 조우한 선생님과 헤어진 후 남자 친구에게 배 속의 아이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임신 사실을 알고 엄마가 되기를 두려워했지만, 산은 이제 확실히 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산은 엄마와 나누지 못했던 감정의 교류를 상상한다. 엄마는 솜사탕을 먹는 산을 바라본다. 솜사탕을 좋아하는 산과 솜사탕을 먹고 있는 산의 행복감, 충만감을 알아주며 따스하게 웃는다. 엄마의 사랑이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엄마의 어두운 그림자는 점점 옅어져 더 이상 산을 잠식하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과 연인의 존재 그리고 자신만의 깊은 성찰이라는 빛이 산을 따뜻하게 감쌀 테니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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