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고,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이어야만 돼!"

영화 <남극일기>, 하얀 설원 위 인간의 검은 욕망

by yeonjoo

'남극'이라는 공간

어떠한 장소를 떠올려보자. 이곳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머나먼 남극 땅을 생각해보자. 남극은 우리나라보다 62배나 더 크다. 거대한 면적임에도 생명체는 소규모로만 존재한다. 낮이 오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밤이 지속되고 혹독한 기후로 인해 생물이 살기에는 매우 척박한 환경이다. 하지만 남극은 아름답기도 하다. 남극은 광활한 남극해에 둘러싸여 있고 얼음에 뒤덮여 있다. 눈이 내리면 기온이 낮아 영원히 얼어버리는데, 이 눈은 수백 년 동안 쌓여 예술작품을 방불케하는 멋드러진 빙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남극의 특유의 이미지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임필성 감독도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남극일기, 2006>는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집착과 광기로 얼룩져가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새하얀 남극대륙 위에 펼쳐놓는다. 물리적 공간인 남극의 흰색과 인간의 검은 욕망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도달불능점-저주

대장 최도형(송강호 분)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는 '도달 불능점'을 향해 간다. 이곳은 남극에 실제로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1958년 소련 탐사대가 정복한 곳으로 혹한(영하 58도)으로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 실제 탐사 가치가 없어 감독은 '도달불능점'은 실제적이고 물리적 공간보다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탐험대는 희소한 가치를 지닌 도달 불능점을 정복하리라는 꿈에 부푼다. 하지만 이곳에 다가갈수록 수많은 어려움(대원의 죽음, 혹한 등)이 따르고 최대장의 욕심은 극에 달한다. 그의 목표에 대한 강한 집착은 광기를 부른다. 이영민(박휘순 분) 부대장 말대로 남극은 '기적'이 아닌 '저주'가 되고 막내 대원 민재(유지태 분)는 남극이 '우리를 미치게 했다'라고 말한다.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최대장은 어렵게 도달 불능점에 도달한다. 하지만 남는 것은 허무와 더 끝없는 욕망뿐이다. 그에게 도달 불능점은 신기루와 같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불가능한 목표다.


"아무도 없고,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이어야만 돼!" - 최도형의 도달불능점.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도달 불능점)는 그 자체로는 무해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목표를 추구하는 자의 마음과 목표로 가는 여정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도달 불능점의 가치가 결정된다. 기적이 될지 저주가 될지. 영화 <남극일기>는 후자에 해당된다. 최대장이 도달 불능점에 도착했을 때 그 표시 깃발이 그토록 허름하게 보인 것은 그의 올바르지 못한 꿈의 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깃발은 밝고 빛나지 않았을까.



도달불능점-기적

얼마 전 남극 대륙을 다루는 다큐를 봤다. 제한된 TV 화면으로 광활한 남극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남극은 참 아름다웠다. 우리가 짙고 푸른 산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남극은 눈부시게 맑고 하얀 얼음산을 품고 있었다. 남극의 빙산은 여러 번 침식작용을 거친다. 빙하가 이동하면서 부서지는데, 이 과정에서 빙산을 형성한다. 초기 빙산은 판자 같지만 바람, 파도 그리고 수면 아래 조류의 흐름 등으로 아름다운 형태로 완성된다.


남극에는 빙산들이 많다. 제각기 다른 모양은 하나의 조형물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물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남극의 광활하고 신비로운 풍광처럼 경이롭게 느껴진다. <남극일기>를 다 읽고 덮는데, 남극의 풍광과 수많은 목표가 나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느껴졌다. 이것들은 나에게 우호적이지도 비우호적이지도 않다. "네가 오면 반기겠지만 싫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렸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앞으로 나의 수많은 도달 불능점은 과연 저주가 될까? 기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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