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바닷속의 진주

by 시골남자

"왜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어" "아 심각해, 진짜 싫어.." "너는 무슨 말만 하면...."

"뭐 농담을 못하겠네" "조금 가볍게 생각해 봐, 응? 가볍게. 세상을 그렇게 무겁게 살면 못써요. 암, 그렇고 말고!" 간혹, "왜, 너 말 잘하잖아. 응? 한 번 얘기해 보지 왜" "네가 그렇게 잘났어?" "너는 애미 애비도.." 그때 내 허벅지를 꽉 쥐며 "참아, 참으라고" 말을 해준 사람이 참 고마웠다. 내가 뭘 했다고, 뭐가 그리 얄미워서.


매사 진지한 사람을 두고 벌레충(蟲)을 붙여 진지충이라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중한 사람을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 나아가 욕이 섞인 표현도 있는데, 선비 앞에 숫자 열을 붙여 십, 선비. 어떻게 그런 표현들을 만들어냈을까. 열등한 사람이 우등한 사람을 깎아내리려고 만들어낸 걸까. 어떻게든 흠집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탄생시킨 신조어가 아닐까. 지금은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자진해서 그 무리로부터 이탈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깊어지고 심각하다 판단되면 그 자리를 불편해했다. 우문현답을 줬더니 뭘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냐며 본인이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장난식으로 던진 드립에 심각한 반응이라거나, 또는 장난을 못 치겠다고. 무례한 말을 해놓고 그걸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농담을 못하겠다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 진지충, 십, 선비가 바로 나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는, 아마 내가 머물러 있던 곳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조금 가벼워지려고 했다. 그래서 평소 하지 않던 농담을 가볍게 받기도 하고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는 또 "상처를 받았다" "나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사람이 가볍다" 아무튼 이래도, 저래도. 그런 변덕에 신물이 났다. 나는 한 사람인데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다 맞춰주려 하니 이골이 났다. 차라리 "쟤는 원래 그런 애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게 나쁘더라도 - 한 가지 캐릭터로 인식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는 과정을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종종 세상 무해해 보이는 사람과 인연이 되곤 한다. 그게 연인이든 지인이든 어떤 관계로든.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가고, 잘해주고 싶고, 예뻐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 헌데 어떤 사람은 그냥 예쁘게(혹은 잘생기게) 태어난, 혹은 자연스레 호감이 이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괴롭히고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세상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해 보이는 그런 상태를 무너뜨리고 싶은 걸까. 그건 대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본인의 결핍? 질투 아니면 시기심일까.

무해한 사람도 생각을 한다. 그냥 겉으로만 한없이 착해 보이는 것뿐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해함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무례하게 군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자극을 준다.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나 지켜보면서 수위를 점점 올려간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다 그 선이 적정 수위를 지나쳐도 별반응이 없으면 그 사람을 깔아보고, 민감하게 반응하면 그 수위를 살짝 낮춘다. 애초에 존중하는 마음이나 존경심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만난 경우 직급은 상사지만 마음 안에는 그냥 동네 아저씨처럼 생각한다.

무해한 성격인데 감성적인 사람일수록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외부의 자극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흔들려 이성의 끈을 놓치기라도 하면 타인과의 관계가 쉽게 틀어지기도 한다. 그 뒤로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 피해의식이 생기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은 없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무례한 사람 몇 명으로 인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한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렇게 고립되다 본래 갖고 있던 무해한 형질이 변질돼 버린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미지 중심의 소셜미디어 중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마도) 인스타그램일 것이다. 직업 특성상 그 플랫폼을 통해 인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이미지보다 글에 무게를 더 실어 게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참새떼가 모여 짹짹 거리는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가정하면 <화창한 날 출근길 참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짹짹거리고 있다. 사람들이 저렇게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겠다> 식이다. 그걸 보고 '오글거린다, 혹은 사이좋게 지내야죠, 암 그럼요'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첫 반응은 호의적이라고나 할까,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느꼈다는 점인데, 그냥 그렇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은 건지, 평소처럼 반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이고, 또 (그런) 글을 올리셨네요 그래요' 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관계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조금씩 어긋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말이 많으면 우스워보이고,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이미지만 올리고 글을 쓰더라도 짤막하게 썼다. '그래, 요즘에는 진지한 것이 좋은 게 아닌가 보다' 하면서 적응해 갔지만 마음 한편에는 쏟아내고 싶은 말과 생각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너 요즘 왜 글을 써서 게시물 안 올리나. 나는 좋았는데" "그냥 너무 진지해 보이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내 생각이나 느낌을 써서 올리는 것뿐인데, 반응도 별로인 것 같고 또 나를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서 안 올려" "그거 보는 사람도 다 똑같아. 반응해주고 싶지만 좋아요 누르면 본인도 그렇게 사람들이 판단할까 봐 안 누르는 거지. 그냥 조용히 지지하는 거랄까" "왜 진지한 걸 싫어하는 걸까" "요즘은 가벼운 게 대세라서? 쿨 해 보이잖아. 심각한 거 요즘 별로야. 물론 진지한 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 나는 가벼운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근데 네가 좀 진지하긴 해, 요즘 애들하고 잘 맞진 않잖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게 봐 주는 사람이 - 애초에 누굴 위해 글을 쓴 건 아니었지만 - 어딘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번의 글을 쓰고 '너무 적나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말을 아낄게' 등 부정적인 말들도 있었지만 그냥 계속 썼다.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구나, 쌓인 게 많았구나 하고 느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생각 없는 가벼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듯 뱉어대는 무책임한 말부터, 비아냥거리거나, 그런 식으로 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겠냐며 비꼬고, 은연중에 지그시 누르듯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네가 하는 말에 내가 한 마디 해주마' 하고 이야기하는 듯 느껴졌다. 그런 것에 지쳐버렸던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을 쓰는 건데 왜 그리도 옳고 그름을 따지고 판단하는 건지. 애초에 정답은 없는 것이 아닌가.

차갑고 냉소적인 글을 한 동안 끄적였다. 계속 쏟아내도 마르지 않던 부정적인 글도 1년이 조금 지나자 그 결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나를 그런 환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나서 찾아왔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주위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으니, 내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이 절을 떠나는 꼴이다. 좋은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을 두고 내가 떠나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로남불식의 경영과 무조건 네, 네, 따라야만 하는 수동적 일상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첫 회사를 나왔다.

그 후 또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 사람에게 데인 탓에 - 사람과 연관된 일을 하지 않았고 주로 몸을 쓰는 일을 택했다. 그게 훨씬 편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몸이 조금 피곤해지는 편이 차라리 여러모로 괜찮다 생각했다.

사람과 관련된 일을 8년, 몸 쓰는 일을 3년 6개월 정도 해오면서 부지런하게 글을 쓰진 않았지만, 적어도 생각날 때마다 글을 썼던 것 같다. 이젠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삶은 유한하니, 내 기억력도 감퇴되어 나이가 들었을 때 옛 기억을 떠올리는 데는 글쓰기(=기록)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 대부분이 경험에 기초해 쓰이는 이유다. "그때 그랬었나.." 할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아지면 과거를 회상할 수도 없을 테지만, 적어도 내 주변인에게는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사실 죽고 나면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지만 적어도 가족들에게만큼은 소중한 것이 될 것 같다.


브런치로 넘어오기 전,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곤 했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생각이 너무 많아 글쓰기에 집중도 못했고 흥미가 떨어지던 시기였다. 글쓰기를 조금 느슨하게 이어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소중한 인연이 닿았다. 내 글을 읽고 진심으로 좋아해 줬다. 내 글이 솔직해 좋다며 계속 보고 싶다, 읽고 싶다 했다. 그 뒤로 느슨해진 글쓰기에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평소 막무가내로 글을 썼지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책도 읽었다.

평소 나는 내로라할만한 그런 위인은 못된다고 생각하며 지냈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나,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시도하지 않고 늘 마음 안에 담고 지냈다. 나를 드러내길 꺼렸던 건, 아마 그런 안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를 드러내면 누군가 그들처럼 나를 공격하고 깎아내리겠지 하는 생각, 그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생각이 나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타입이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기다렸다 시작하는 나와 다르다. 모든 일에 대해 진척 속도가 빠르다. 그런 진취적인 성격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하도록, 또 능력을 키워보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써온 글이 조금씩 쌓여가던 시점이었다. 여행 중에 갑작스레 내게 제안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해 보는 건 어때?"라고. 나는 떨어져 본 적이 있어 알겠다며 대답했지만 '설마 되겠어..'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승인이 됐다는 알람이 왔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아마 돌이켜보면 내가 글을 손에서 거의 놓으려던 시기에 그녀를 만난 것이고, 그녀가 그 끈을 이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글을 이렇게 쓰고 있을지 의문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글 쓰는 행위에 대해 여태껏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 한 사람에 의해 글을 다시 쓸 생각이 들었고 또 힘내서 쓰고 있다.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던 내게 다가와준, 바닷속 진주 같은 사람. 그 사람만 내 글을 읽어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길이 있다.


스스로 의구심이 들어도 계속해야 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또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그 길을 가려고 할 때, 근거도 없이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 애를 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그대로 머물러 있게 만들려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내 진지함이 놀림을 받고 진중함을 비웃던 이들 곁을 떠나, 그런 조소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심으로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그런 진심을 알아봐 주는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 그것이 또 브런치까지 이어진 것이고. 오랜 시간 글을 써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꾸준히 해온 것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이 든다.

새로 선택하는 길을 응원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진심으로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마음이 가는 것이 있다면 절대 손에서 놓지 말고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그게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