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밑 연석 위에 앉아
"마! 니 그래본적 있나"
"....?"
"그래본적 있냐고"
"뭐 임마! 말을 해라, 갑자기 앞 뒤 다짜르고 '니 그래본적 있나' 이라모 내가 뭐 알아듣노, 니랑 내랑 뭐 텔레파시가!"
"텔레파시는 또 뭐꼬 텔레파시는.."
"아니.. 이 모지리야 말을 해라 말을"
(웃으며)"....내 집 앞 도로 있쟤, 그 연석 위에 앉아가 밤새도록 통화했다"
"에이? 밤새~~도록? 누구랑?"
"누구긴, 지금 내 와이프지"
"아아, 니 연애할 때 말이가"
"하모, 그라쟤. 니는 그래본적 없쟤"
"내도 있다 임마, 뭐 니만 연애해봤나"
"니 근데, 신기한게 뭐지 아나. 아무리 친해도 오래 통화하는게 힘들다 아이가. 얘기하다 잠깐 침묵이 흐르는디 전화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가 좋아가, 그냥 수화기 붙들고 있는기다, 응? 말도 없이. 근데 그냥 좋은 기라. 옆에 없는데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기래 전화를 해놓고, 말을 안하노. 뭐 벙어리가?"
"벙어리? 이시키야 니는 그 감정을 모르니께 그~~~~리도 감성 조사뿌는 말이나 하고 자빠졌쟤. 니는 평~~생 모를끼다 그런 몽글몽글한 감정 말이다. 응? 가로등 불빛 아래 풍경이 응? 뿌연 돋보기 안경 쓴 것마냥 보이고 꿈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러다가 통화시간 보믄 1시간, 2시간 기래 뭐 3시간도 막~ 지나가 있는거 아이가. 이게 이게 말이 되나! 내 일할 때는 시간이 그리도 안가더만 응?"
"하이고.. 인마, 원래 좋은 거는 훌~쩍 지나가뿌고, 안좋은거는 천천~히 가뿐다. 임마. 하기사.. 뭐,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구마, 참 아일러니 한게 먼지 아나"
"아일러니? 아이러니, 아이러니 인마. 아이, 알, 오, 엔, 와이. i r o n y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똑바로 할 줄 모르노"
"트집잡지 마라, 이자슥아"
"아 알았다. 뭐, 무슨 말이 하고픈데?"
"그 좋은 시간들, 그 좋은 시간들 말이다, 참... 그 때는 모른다는기야"
"......."
".......왜 말이 없노"
"......."
"내 말이 맞쟤? 생각해보믄 우리 학교 다닐 때 참 좋았쟤? 니는 좋았나? 나는 솔~~직히 안좋았기든. 매 번 학교 선생님들이 이래라 저래라 해싸불고, 또 하지 말라~~ 하고 그런게 다 관심인줄도 모르고서 말이야. 빨리 으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고 싶다 생각하고 지냈는데, 으이.. 지나보니께. 응? 지나보니께 그 때가 가장 좋았을 때라"
"...어쩌면 매 순간이, 다 좋을 때라"
"...매 순간.. 매 순간...?"
"지금 니랑 내랑 오랜만에 만나가 이런 얘기하면서 앉아 있는고, 이것도 흘러가면 다 또 소중해지고 하는기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같지만 잘 모른다고, 근데 뭐 모르니까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시간 귀한 줄 모르고 막 쓰는기다. 니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 말해본 적 있나"
"뭐.. 가끔 있다"
"뭐.. 언제, 언제 그런 말 해봤는데?"
"....기억이 안난다"
"에라이 시키야, 부끄러운 줄 알아람마"
"뭐.. 니는? 뭐? 언제 했는데?"
"어제도 하고 그제도 하고 그 끄제도 하고, 니 만나러 시내 나오면서 나오기 전에도 와이프한테 하고 왔다 아이가, 애들한테도 매~일 볼 때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한다 임마 나는"
"내도 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표현하고 그런다. 거~ 애정표현 좀 한다고 뭐 그 뭐 달라지나"
"니는, 그 사랑한다~ 는 말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나. 사랑한다.. 사랑한다. 친구야! 사랑한다!"
"아 이러지 마라, 징그럽다 임마"
"내 와이프가 연애할때 나한테 그랬다. 세상 당연한건 아무것도 없고, 지금 주어지는 이 순간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거고, 지금 눈 앞에 있는 당신도 나도 그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고, 서로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말자고, 그러자고"
".....좋네"
"좋쟤? 내 와이프가 그리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는게 참 기특하지 않나. 우리가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언젠가는 흙 먼지가 되어 저 우주 어딘가로 날아갈게 아니야"
"니는 죽으면 다시 태어날꺼라 믿나보네"
"믿는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고, 뭐 동물로 태어나든 뭐든, 그런디 참 가만 보면 내 생각이란 게, 아니 그 의식말이다 의식!"
"의식, 그래 뭐 얘기해봐라"
"의식이 생겼을 때가 언젠지 모르겠다. 내 세 발 자전거 탔을 때였는지, 지금도 드문 드문 기억나는 애기때 기억이 있는데 잘 기억은 안난다. 그 기억들을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잃어버리는 게 참 슬픈 것 같단 말이쟤"
"이노마가 술 좀 들어가니까 별 소리를 다하노"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네 앞에 있는데 그 사람이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봐라. 임마, 그 얼마나 슬픈거냐. 함께 만든 추억들, 응? 그 기억들을 둘이 함께 기억하고 공유했었는데 나만 알고 있는기다. 나만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기억하고 있는게 뭔 소용이노, 어? 둘이 있을 때 의미를 갖는게 그런 추억들이고 기억 아이가"
"하기사 뭐 기래, 뭐 할때는 혼자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게 좋고 그런거 같긴 하다"
"둘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그런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함께 공존하며 삶을 공유해나갈 때 그럴 때 둘의 의미는 더 커지는 것 같다. 내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래 뭐. 니 말도 맞는 거 같다. 헌데, 니는 그래 늦게까지 전화하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노"
"뭐 말하면 아나? 대화는 말이야. 대화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대화를 많이 해보면서 각자의 내면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보는기다. 그래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좀 알고, 평소에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도 알고, 또 뭐 각자 갖고 있는 말못할 고민들도 털어놓으면서 끈끈해지는거지. 늘어놓으면 한도 끝도 없다"
"새벽까지 깨어 있으면 니 아침에 안피곤하나?"
"잘 모르겠드라. 머리로는 안다. 이리 자면, 이리 늦게 깨어있으면 분명 내일 피곤할 것 알쟤. 이성은 자라고 하지만, 응?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 치면서) 이 가슴이!, 이 심장이 임마. 계속 뛰고 있다 아이가. 심장이 이성이고 정신이고 뭐고 다 이기뿐다. 니 그 아나? 그런 이 뜨거운 심장을, 니 <진격의 거인>봤쟤, 거기 명대사 있다 아이가 신조 사사게오! 심장을 바치라고, 응? 내 와이프한테 심장을 바치겠노라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아이가"
"하이고야.. 푹~ 자고 일어나서 안피곤한 상태로 전화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라모 되지 않노"
"그기.. 그냥 머리로는 그게 '옳다'라고 생각되도, 모든 상황이 인위적으로, 응? 내 생각을 개입시켜 흘러카게끔 만들믄 모든 게 틀어지쟤. 내 경험상 그랬다. 내게 오는 모~든 상황들이 가만보면 그냥 오는기 아닌기라. 반드시 내가 가는 그 어딘지 모를, 그 목적지!, 응? 목적지에 가려면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꼬"
"니 말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흐르게 놓아주자~ 뭐 이런거 아이가?"
"맞다, 그 말이 딱 정답이다"
"질서에 순응하는, 뭐 그런 삶? 그런건가?"
"그런거쟤. 니 근데 서울말 쓰나?"
"와이프가 서울 사람이라 그렇다 아인교"
"간질간질 하니께 쓰지 마래이"
"알았어"
"(찌릿 째려보며) 허~ 어허!"
"서울말 쓰니카 이상해?"
"쓰려면 좀 제대로 쓰든가요^"
"말 끝 머리 올린다고 그기 서울말이 되나"
"하...그냥 쓰지 말재이"
"이것 또한 자연을 거스르느..는....!"
"하! 그기 말 되네"
"으이.. 한 잔 받으라"
"(쭉 들이키고 동시에) 크으~~~~~~~~~~~!"
"술 맛 조~옿타!"
"크....... 기래도, 응? 그 찬바람 솔~솔~ 불고 그 연석 위에 앉아가 밤~새 통화하고 그러던 밤이, 응? 그 밤이 날은 추웠어도 참 따뜻~했다.. 내 진짜로."
"기래, 니 오늘도 내랑 술 한 잔 하는데, 따뜻~ 하노? 으이?"
"(활짝 웃으며) 기래 임마!, 니도 한 잔 받으라!"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 브런치에 옮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