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퇴사합니다

사람과 일

by 시골남자

"왜 그만두는 건데?" "미래가 안 보여서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뭐 사업? 나가서 잘되면 다행인데..." "리스크 안고 떠나는 거죠. 그런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어요. 계속 발만 묶여 있을 것 같아요" 옆에서 불만을 품고 있던 신입이 한 마디 거드니, "그럼 너는 대기업을 가든지 해! 왜 여기 있어?" "받아줘야 말이죠" 나는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었다. 잘되면 다행이지만, 그 한마디에 퇴보할 수 있다는 무언의 의미가 느껴졌다. 그런 기분이 엄습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걸 느끼는 편이었기에 조금 힘내어 했다. "그런 위험 부담 있는 것, 충분히 알죠. 그래도 나가는 거예요" 덧붙여, 후회도 없을 거라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그분은 내가 그만두는 직장에 오래 다니셨던 분이셨다. 부분적으로는 우리 담당 부서를 책임질 자격이 있는 분이나, 실무에 대해 커버를 쳐주거나 할 수 없었다. 커버를 쳐주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이유라면, 아무리 그렇게 말해봤자 사장의 경영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수 십 차례 목격했다는 것이다. 몇 차례 대립 끝에 부서가 변경됐고, 이젠 부 출장을 자주 나가셔야 했기에 할 수 있는 건 말로써 우리 팀에 위로를 건네주시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서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회사가 아무리 어떻다 한들 장기간 몸을 담고 있는 곳에 대해 신참이 쉽게 입으로 떠들어대니 살짝 발끈하신 것처럼 느껴졌다.

"인원 부족하다고 매 번 이야기하는데 뽑아주질 않아요. 그냥 인원 뽑아주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요. 현재 인원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구조거든요. 지금 필요한 건 급여 인상 그런 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손이 더 필요해요. 우리 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뭘 그렇게 사람을 고르는지 모르겠어요" 실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실무진의 업무량을 어림짐작으로 판단하며 "지금 인원이면 충분하다, 괜찮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가 창업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규모를 생각하는 걸까. 회사 초창기에는 직원도 적었을 테고 한 사람이 영업, 재고관리, 주문 및 발주 등 모든 것을 신경 썼겠지만 회사가 성장한 시점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힘든 것좀 알아주세요,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그러지 마. 똑바로 해"라고 말했다며 내 맞선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혀를 끌끌 찼다. 퇴사하겠다고 결심하길 잘했다. 누가 알아달라고 이야기했던가.


나는 그렇게 세 번째 사직서를 냈다. 8년, 1년, 2년 6개월 도합 약 11년의 회사생활. 두 번째 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세 번째 사직서를 내면서 속으로는 '또, 그만두는구나. 퇴사하는구나, 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내가 회사를 왜 그만두려 했었는지, 이번엔 또 왜 그런지 생각에 잠겼다.

퇴사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치고 바로 그만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이래 저래 일을 못하겠다, 퇴사해야겠다, 퇴사각이지" 말하면서 사직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주변 동료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그 사람은 계속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갈 생각도 없는데 나간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분위기만 흐리고 계속 떠들고 다니니 나중에는 '진짜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사람의 특징이 있는데, (긴장감을 줄 생각으로) 임원진에서 특정 부서를 타깃 삼아 자극을 주면(=트집을 잡았을 때), 이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기라도 하면, 그 얇고 변덕스러운 입을 툴툴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반면 어떤 이들은 사직서를 조용히, 번복 없이, 단 한 번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는 심리가 궁금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나도 가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했으니까.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나 자신을 돌아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 하고 생각했다. 그냥 힘들어서, 또 스트레스받으니까 그냥 도망치고 싶은 건 아닐까.


몸 값을 높이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해야 했다. 속칭 야망덩어리들과 그런 구도가 만들어지기라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심했다. 맨 정신에 그런 상태를 지속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를 이기려는 마음은 스포츠를 즐길 때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는, 그렇다고 큰 보상조차 주어지지도 않는데; 심지어 관심도 없는 일에 힘을 낭비해야 했다. 나는 작은 보상을 미끼로 경쟁에 내몰리기라도 하면 보통 "그래 너 가져가, 난 관심 없어" 식으로 반응했다. 이따금씩 보상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내 변덕을 참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의지하고 있는 직원들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면 또 누군가는 불만을 표했다. 그룹의 리더가 욕심이 없으면 팀원들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에서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파이 - 그 파이를 뺏긴다고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 를 가져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잘하면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곧 실세로 향하는 초입이라면서.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런 방식은 단지 내게 맞지 않았다.


성향상 누구와 맞붙거나 싸우는 건 싫었고 대부분 내몰리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관심 없는 일에 대해 이기고 싶은 생각을 갖거나 전력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했다. 현실은 평가과 인정을 근거로 타인과 비교하며 경쟁을 부추겼다. "네가 이렇게 조금 더 하면, 그 친구보다 낫지 않겠어?" "그 친구 못 봤어? 조심하란 말이야.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본보기 삼아야지" 그럼에도 좀처럼 말대로 움직이지 않고 버티다가, 그런 일에 혈안이 된 사람을 상사로 두면 결국 나를 내려놓고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 조직에서 이단아가 되거나 도태되기 십상이었고 생트집을 잡히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런데 "그래 한 번 해보자!" 하고 힘을 내면 - 그런 행동이 나대는 것처럼 보였는지 - 깎아내렸고, "아 조금 자중해야겠다" 하면서 중간만 가자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냐"하며 핀잔을 줬다.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사람들 마음에 다 드는 건 불가능하다.

뭘 할 때마다 방해하는 사람 대부분은, 특히 직급으로 볼 때, 나와 가까웠다. 같은 직급에 있거나, 나보다 한 단계 위 혹은 아래. 동급인 사람은 나를 이겨 먹으려고 안달이고, 아랫사람은 나를 치고 올라오려고 안달, 윗사람은 나를 못 올라오게 눌러버리려고 안달. 생트집은 기본이고 실수를 유도해 책임을 전가하고 본인은 책임선에서 물러나버린다. 이따금 오너에게 꾸짖음을 당하거나, 프로젝트나 미션에 실패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와 건네는 위로의 말이, "응, 넌 내 아래야. 내가 이겼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본인보다 아래에 있다 판단되면 이상하리만큼 친절해지는 사람들. 그때의 내가 꼬인 걸지 모르지만, 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건 동료 직원들 말고도 세일즈를 할 때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많이 느껴본 감정이었는데 어떤 곳이든 이런 유형의 감각은 잘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버닝>의 전종서가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 된 남자의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하듯 한 부족의 춤을 따라 하는데, 이걸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일련의 우월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는데 그와 유사하고나 할까.


직급이 어느 정도 있으면, 선(先) 경험을 근거로 자신만의 옳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순응하지 않을 경우,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리만큼 꾸짖었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과 똑같이, 혹은 기대한 것 그대로 행동해야 내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만 걸려봐"하면서 늘 나를 주시했다. 그들의 '옳음' 테스트에 합격하면 안정권에 들게 된다. 그 후에는 '너는 이제 내 영역 안에 있다. 경계 대상이 아니다. 넌 안전하다' 이를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는데, 한 번 그 경험을 겪어본 어린양들은 양치기의 노예가 된다. 반대로는 뒤에서 험담이나 조롱거리의 대상이 된다. 나도 그런 대상이 되었다가 착한 양이되었다가를 반복했는데, 조롱이나 공격받는 대상이 되었을 때 "나의 행동과 생각, 말.. 아니 그냥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나?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누엣가시처럼 느껴졌는지.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 주인이 바뀌어도 착한 양이되겠다 마음먹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울타리 안에 머물며 더 맛있는 여물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다 어떤 사람이 그 옆을 지나친다. 그 무리의 근처에 도달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말을 안 하고 조용해진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결코 모를 감정.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뻔하다, 내 뒷담화를 한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과정을 밟는다. 간접 학습이 되는 것이다. '대세를 거스르면, 너는 이렇게 계속 배척당할 거야' 하는 메시지를 무언중에 계속 보낸다. 그럼에도, 내가 옳다 판단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했고 미움을 받더라도 체재에 순응하지 않았다. 늘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직 안에 매몰되어 편향된 사고를 갖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 모든 것은 반골기질의 성향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덕분에 용기 내어 퇴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첫 번째 회사였다.

물론 지금의 난 어떤 원인도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다 외부요인 탓입니다, 하며 말하고 있지만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는 내가 그들을 탓하듯 나를 탓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시간 속에서 자기합리화되곤 하니까.


나는 모든 일 앞에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을 관리할 때도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말했다. 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있고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떤 것이든 사람이 먼저다. 어떤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주객전도가 되어 흘러가면(=사람이 뒷전이고, 목표달성이 우선이면) 늘 일 끝에 가서 탈이 났다.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된 직원들은 지쳐버렸고 뭐든 지속되지 못했다. 실적 달성을 위한 도구는 필요할 때만 이쁨을 받았고 그 뒤로는 금세 잊혔다.

일은 잘하든 못하든 배우면 된다. 특별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 해낼 수 있다. 그런 푸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기껏 뽑아서 일을 다 가르쳐놨더니 이제 할 만하니까 퇴사를 한다. 이래서 잘해줄 필요가 없다니까"... 사람 관리가 안 돼서 그렇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사람은 일 때문에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문제 때문에, 사람 때문에 그만둔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이는 축하할 일이겠지만,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겠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회 초년생은 하얀 도화지 같아서 자칭 경험이 있는 사람의 말에 쉽게 현혹되곤 했다. 무슨 말만 해도 생글생글 웃으며 잘 따르는 신입들을 보면서 이대로 계속 밝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없이 무해하고 밝은 사람들은 이유 없는 시기, 질투, 괴롭힘을 받는다. 한시도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런 무해함에 매료되어 그들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권력을 쥔 자가 그들을 탐할 때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조건부의 방패막과 쇠사슬이 보인다. 순종적인 이들은 그들에게 이쁨을 받는다. 말을 잘 들으니까. 그러다 순한 양이 각성을 한다. 일련의 사건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학습으로 (난 이 조차 반가스라이팅이라 보지만) 어떤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그들을 소유하려 했던 이들에게 이유 모를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나의 경우 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과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저항하게 됐던 것 같다. 관계가 틀어지면 권력을 이용해 업무 보복을 하거나 (뭐 하나만 걸려봐라 하며 예의주시한다) 일을 하는데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차갑게 군다. 말을 걸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없는 사람 취급한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그런 순한 양 같던 사람들은 그런 상처를 한 번 받고 나면 마음을 졸이다 퇴사를 하거나 이를 두고 따지거나, 보통의 반응은 전자다.

재미있는 것은 호전적인 성격의 직원들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면 그들을 불편해할 뿐, 싫은 소리를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두면서 그 반대의 경우 감정에 호소하며 "저한테 왜 그러세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갖은 이유를 다 들이대면서 본인의 그런 행동을 - 순전히 그 양을 탐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됐음에도 - 합리화하고 부분적으로는 네게도 잘못이 있다며 가스라이팅을 한다. 이때 그 말에 순응하고 "네,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는 순간부터, 권력자의 굴레에서 쉬이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상처가 일부분 내게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치유해주고 있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틀렸다. 그건 세뇌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기민한 편이었다.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이것이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인가, 를 따졌고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했다. 말속에 맞지 않는 논리를 하나씩 따졌다. 하지만 내로남불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언행일치가 안 되는 사람들,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예외가 되려던 사람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살면 저런 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꼭 직급이 위인 사람들이 아니라 나보다 아래에 있든 동급에 있든 마찬가지였다.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충 일처리를 한 뒤, 본인이 실수를 해놓고도 나 몰라라 하고 어차피 다른 사람들 관심도 없고 아무도 모른다며 심각해지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세상 그게 쿨한 줄 아는 사람들의 뻔스러운 오만함에 당황해 할 말을 잃은 적이 많다.

할 수 있으면서도 대충 일을 처리해 버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이 전가되면,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은 그 불만을 리더에게 표했다. 그럴 때마다 일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줬지만, 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잠시 그런 척만 하고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일련의 경험을 토대로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지만, 나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갈 것 같은 나이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를 비롯한 친인척, 주변의 지인들을 바라보며 나이 들어감을 실감했고 시간이 지났을 때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 하고 숨을 거두고 싶지 않다.

답답한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받는 대신,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하고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사람 밑에서, 혹은 함께 뭔가를 해나간다는 건, 나를 죽이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골라서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사회고 조직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지금 이 순간이 홀로서기를 시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 판단도 들었다. 적어도 10년 안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고 AI 기반의 일처리가 상용화될 것인데 (아마 5년도 안 걸릴지 모른다) 그때 가서 내게 남아있는 유용한 능력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문해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새로운 문물을 접하거나 경험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독과 글쓰기, 그리고 외국어 습득이 필수 요건이라 생각한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면 현명한(교과서적인) 답안을 구체적으로 대안까지 제시하며 알려주는 세상이다. 특정 정보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을 때 이를 빠르게 이해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면, 유용한 정보를 받아내도 활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글을 매개로 하는 일과 취미를 굳건히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면 다시 일을 할지 모르지만- 이것 또한 리스크 중 하나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내 삶의 노선을 바꿔준 그대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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