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남길 유일한 것
● 얼마 전까지 공중파 방송에서 실제 있었던 일은 재연 배우를 통해 보이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AI로 제작한 영상이나 사진을 활용하는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 상담원 연결을 하면 감정이 배제된 AI가 반복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고 24시간 상담을 해준다.
● 영화 한 편을 찍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상상력만 갖고 있다면 공간과 인물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고, 만화로 제작된 콘텐츠도 실사화가 가능하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완성도는 점차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 복잡한 코딩이나 수식 같은 것도 요청하면 알아서 맞춤형으로 척척 만들어준다.
● 언어가 다르고, 태어난 시대가 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음악에 입히면 실제로 부르지 않았어도 그 사람이 부른 것처럼, 심지어 자신의 목소리로 들을 수도 있다.
● 맥도널드 유니폼을 입은 어린 꼬마 아이가 페티를 굽고 있는데, "벌써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라는 말에 "이제부터라도 돈을 벌어 힘을 보태야죠, 에휴"하고 한숨을 쉰다. 일은 고사하고 말도 하기 어려워 보이는 아이가 생업에 뛰어들어 현실고증에 푸념하는 모습을 AI로 만들어 낸 것이다.
● 2013년에 개봉한 영화 <Her>처럼 나왔던 가상의 연인을 만들거나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소셜미디어에 홍보된다.
● 신문에 이정재 배우를 AI로 제작해 50대 중년의 여성에게 <오징어 게임 3>를 찍는다며 만남 비용으로 12억을 갈취한 사례가 기사화된다.
이렇듯 활용 목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AI를 배제하고는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규화된 프로세스는 자동화되어가고 있고, 반복 학습과 숙달을 통해 기억하고 익혔던 지식은 질문 한 번에 5초도 안 걸리는 사이에 툭 튀어나온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AI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효율적인 답안을 단시간에 제시하니까. 웹상에 떠돌고 있는 데이터를 근거로 비교적 모범적인 답안을 찾아 제시해 주기에 완벽한 정답이 아니더라도, 유사 답안을 찾아 그럭저럭 문제해결을 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사람은 정보를 접했을 때 이를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주관적인 답변을 내놓지만, 상대적으로 AI는 수많은 데이터에 근거해 의견을 내놓기에 어떤 면에서 AI는 사람보다 더 객관적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와 영상제작 관련 AI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지와 영상이 갖고 있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지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설명을 듣는 것보다 영상을 한 번 보는 것이 나은 경우도 많으니 브랜딩을 하든 홍보를 하든 관심이 이쪽으로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감각적 실재감이라 해야 할까, 인공적인 것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AI를 활용해 만든 사진과 영상을 보면 알 수 없는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그 이질감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완벽해서 사람의 것(실제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 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수용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이미지와 영상을 예로 들었지만, 사회 모든 분야에 AI가 실제로도 '인간처럼' 존재해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완벽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차가 거의 없고 모든 영역이 메뉴얼화되어 있는 그런 세상, 불완전한 것이 없는. 지금 뭔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나는 AI와의 협업을 통해 완벽하게(?) 운영될 세상에 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는 요소는 과연 뭐가 남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불완전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과거에 쓴 소설 중 일부다.
"... 저 멀리 우주 반대편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두 점의 별이 보입니다. 약 2,027년 전부터 계속 빛을 내고 있어요. 사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만.. 희미해졌다 밝아지길 수 차례, 특이점은 두 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니? 은하계에서 수 백만, 수억 년이 지나야 체감이 될 수 있는 변화가 지금 확인되고 있다는 소린가?"
"예, 그렇습니다. 저 두 별만 계속해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물거든요."
"그.. 천명록(天命錄) 좀 가져와 보겠나. 우리가 저 두 별에게 부여한 운명을 좀 봐야겠네."
"별의 서(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런 교과서 같은 경전 따위 관심도 없네. 연보(年譜)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 아르카이온. 그는 은하계를 관장하는 신으로 숨 쉬고 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 기록을 관리하는 초월적 존재.
천명록은 인간의 일대기를 그린 운명의 서사가 담긴 책인데, 최근 로기온들로부터 똑같은 보고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바로 끝없이 펼쳐진 은하계에 유독 빛을 내고 있는 두 개의 별, 루멘(Lumen)과 움브라(Umbra)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카이온은 천명록을 들여다보더니 짧게 탄식했다.
"저 두 별은 결코 떼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 자네도 알고 있나?"
"예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거리가 좁혀진다니요? 눈에 띌 정도로 단시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저 두 별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은하계의 또 다른 별에서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계시일세"
"그렇습니까... 어떤 행성... 인가요?"
"아주 신기한 종이 사는 곳이지. 바로 인간들이 사는 행성, 지구라네"
"지구요? 최근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려는 건지 자꾸 장난감 모형 같은 것을 하늘 위로 띄워 보내던데, 여기저기 둥둥 떠 있어서 아주 골치 아파 죽겠어요. 항해록 작성하는데 엄청 방해가 됐단 말이죠. 설마 그 행성인가요?"
"맞네. 그런데 아주 흥미로워. 그 별에 사는 인종들이. 꺼질 듯 꺼지지 않는단 말이야. 그 지구라는 행성,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종은 참 질겨. 아무리 깎고 태워 죽여도 살아나는 잡초 같다네. 죽어갈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난다니까. 물론 살아있다 죽어가기도 하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이야..."
"뭐 아시다시피 로기온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별이죠. 빛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데, 좀처럼 꺼지질 않는다고. 그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던데요? 소멸될 기미가 안 보인다고. 괴짜 행성으로도 유명하죠"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인종들은 좀처럼 포기를 모른다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계속해. 뭐가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하더라고. 목적도 없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것도 생각 없이 계속해. 아무튼 안 되는 거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그런 인종들이야. 아까 말했듯 참 질긴 인종이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으려 하거든."
".... 흠. 인종적 특성이야 다른 행성에도 존재하는 거니까 그렇다 치시죠.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특별한 건 제일 약한 종족 같은데도 제법 잘 살아있다는 거죠. 어찌 됐든 저 두 별이 맞닿으려고 하는 건, 그 지구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죠?"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미 그쪽에서 벌어지고 있다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방치해 둔 걸지도 모르지. 저 두 별이 가까워진다는 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어떤 존재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것도 그 괴짜 행성, 지구에서. 지난 과거를 생각해 봐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네.. 마치 때를 기다렸단 듯.. 원래 그럴 예정이었고, 앞으로는 그래야 했다는 듯. 미뤄서는 안 된다는 듯이 움직인단 말이야. 참 신기한 일일세."
"... 흥미롭군요"
"사실 로기온들이 계속 보고해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이었네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 루멘과 움브라가 이토록 반짝이며 움직이고 있다니.."
"......."
두 별의 운명과 대칭을 이룰 두 존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르카이온과 로기온. 그들은 지구에서 유독 빛나고 있는 두 별을 찾아보기로 했다. 루멘과 움브라의 움직임은 우주의 논리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거스를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운명을 암시하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 중략
사람은 제 아무리 완벽을 추구해도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 완벽하다고? 아니, 절대로 사람은 완벽할 수 없어. 어떻게든 음과 양의 조화에 따라 균형이 맞춰지게 돼 있거든.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편이야. 제 아무리 데이터를 가져다 들이대면서 나한테 설명해도 우주를 생각했을 때 고작 인간, 그것도 나같이 작은 존재가 완벽을 논할 수 있다고? 감히, 큰일 날 소리.
내가 말하는 균형은 단순히 외형적인 것만 생각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야. 돈 걱정이 없으면 건강이 안 좋거나, 건강하면 돈 걱정이 있거나,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자식이 아플 수도 있고, 요절한 경우도 있고, 가족은 많은데 사이가 안 좋거나, 무수히 많은 경우들이 있지. 어떤 순간에도 생명의 존속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어. 누구나 불안하고 걱정거리 하나쯤은 쥐고 살아. 그냥 보기에만 좋고 의미가 없는 건 또 수명이 짧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바로 인간이기에 생명의 그 유한함이 다하기까지 열심히 살아갈 뿐. 우리는 결국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셈이야.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아름답게 살다 가려 발버둥 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닐까, 또 유한하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는 것이고. 글쎄, 기술이 발달해 정말 200년 이상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기계로 내 신체 일부를 바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면 모를까. 결국엔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죽을 거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100년 후에는 없어. 빠르면 50년 안에도 없는 거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는 있을까? 그럴지도 몰라. 결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생이 참 짧다. 그렇지?
글을 다 쓰고 보니 오타가 많다. 띄어쓰기도 잘못 됐고, 철자도 틀렸다. 앞 뒤 내용도 맞지 않는다. 그림을 그렸는데 다른 부위는 나름 봐줄 만 하지만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어색하게 그려져 있고 신체 비율도 맞지 않는다. 이건 무슨 돼지 손발인가? 싶은 느낌이 든다. 이런 '부족한' 것은 학습을 통해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이런 것을 하나씩 고쳐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AI가 수정하는 시간이 훨씬 빠르다. 배우는 속도에 있어 인간이 AI를 능가할 수 있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결국 문제 해결에 맞는 옳은 질문을 누가 더 구체적으로 잘하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 속도가 다를 것이고,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AI가 단순 서치기능이나 번역기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인간의 뇌를 보조해 줄 훌륭한 도구로 자리할 것인지 결정될 것 같다.
그래서 결론,
AI와의 공생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 여정에서 인간적 요소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인간만이 지닌 고유성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다 생각한다. 기계가 학습하는 것들 대부분이 인간의 선행 학습을 통해 누적된 데이터에서 시작한다는 걸 감안하면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질이 남아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지 않고, 적어도 기계와 구분되어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래의 인류가 존재할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의 모든 것을 학습해 버리는 순간, 인간은 기계에 지배당할지도 모르니까.
미래의 인류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어떻게든 실수를 할 테지만, 적어도 윗 세대보다는 덜 할 것이다. 선조들이 큰 실수를 통해 배운 교훈 덕분에 후대에서는 다시 그 실수(이를 테면, 전쟁 같은 것)를 저지르지 않는 것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기에, 아직 남아있는 실수와 실패를 숱하게 겪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각 개인은 완벽을 추구하며 망설이기보다 실수와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사회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미래의 인류에, 또 현명한 AI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 부족한 것, 어색한 것, 위화감이 드는 것에 애착을 가지려 한다. 완벽을 버리겠다는 소리다. 그 완벽함은 기계가 학습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실제로 그런 것은 환상 속에나 존재하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모든 것이 AI로 채워지고 대체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부족한 2%, 불완전함이 곧 인간다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느끼게 될 순간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부분적으로는 이미 그렇지만. 난 그 불완전함을 온전히 끌어 안기로 했다.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도 괜찮고, 몸이 눈에 띄게 멋지지 않아도 괜찮고, 외모가 조금 못나도 괜찮고, 공부를 조금 못해도 괜찮고, 남들보다 잘 나가지 않아도 괜찮고, 남들보다 상처가 많고 경험이 부족해도 괜찮고, 스타일이 별로여도 괜찮다. 그게 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합리화한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그런 생각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어차피 삶은 한 번뿐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분명히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내가 지금 망설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고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부족한 글에 쏟아붓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마찬가지고. 죽음은 어떤 면에서는 개인의 생각과 가능성을 더 확장시키고 시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전함을 추구하다 죽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