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폭력
쓰윽.
싸- 악.
싹둑, 싹둑, 싹둑.
'.... 마음에 안 들어'
휙! 툭.
싸- 악, 싸- 악.
싹둑, 싹둑.
난 바비 인형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어. 바비 인형 얼굴은 마음에 드는데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긴 머리를 다듬다가, 긴 머리가 마음에 안 들면, 단발로, 단발도 마음에 안 들면 머리카락을 다 밀고, 마지막에 미운 얼굴을 한 바비 인형을 저리 던져버렸어. 내 마음 안에는 나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차 있었던 것 같아. 내가 함부로 하는 바비 인형을 친구들은 엄마한테 사달라고 난리였지.
"예주야, 이리 와, 영- 차! 아이고 예뻐라, 고모랑 떡볶이 먹으러 갈까?"
"응! 좋아"
"우리 예주는 어쩜 이렇게 예쁠까~ 누구 닮아서 그럴까, 엄마 닮아서 그럴까?"
"아니, 아빠"
"그래요~ 아이고 이뻐라"
고모는 문구점을 운영했어. 첫 조카인 내게 선물을 주실 때면 문구점에 있는 바비 인형을 한 보따리로 가져다주시곤 하셨지.
내가 방 안에 홀로 앉아 바비 인형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다가 가위로 다시 잘라버리는 모습을 봐도 엄마는 뭐라 하지 않으셨어. 내 심리상태가 잘못됐다거나 그 행위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으셨고 단지 걱정스러워하실 뿐이었어. 생각해 보면 상식적이라고 생각되진 않잖아? 나는 항상 '특이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어. 한겨울에 여름옷을 꺼내 입고 나가겠다 떼를 쓰고, 여름에는 겨울 모자와 장갑을 몰래 꺼내 착용한 채 밖을 돌아다녔지.
"당신.. 힘들겠지만 예주 잘 보고 있어"
".... 얼마나 있다가 오시려고요...?"
"몇 년은 걸릴 거야. 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니까, 예주를 잘 돌봐줘. 다녀올게"
나의 특이한 행동들은 어쩌면 내가 태어나자마자 우리 가족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신 아빠의 빈자리가 만든 결과일지도 몰라. 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빠는 곁에 없었어. 그때 생긴 결핍을 관심과 사랑으로 채우려고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르지.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나를 키우신 부모님의 나이가 훌쩍 지나니 나는 외로웠다는 것을 알게 됐어. 아빠의 존재는 그렇게나 중요했던 거야. 그 무게는 아무나 쉽게 대체할 수 없었어. 그 어떤 것으로도 내 결핍은 충족되지 않았지.
아빠가 돌아오시고 나서 얼마 뒤, 내 동생이 태어났어. 이름은 예빈,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되었지. 아빠의 5년 간의 공백은 우리 가족 모두가 2층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만들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내 동생까지. 대가족이 살아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집이었지.
집 밖으로 나가면 집이 여덟 채쯤 늘어서 있었고,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 대부분 우리 아빠와 비슷했지. 직접 해외로 나가서 살 길을 찾으려 노력하신 아버지들이 그렇게 만드신거야. 바로 옆집 진이 언니는 나를 유난히 아껴줬어. 골목길을 벗어나 내려가면 미용실이 있었는데, 그 집 딸도 나와 친했지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 이름은 미진이었어. 그래서 진이 언니, 미진이와 함께 놀 때면 투진이라 불렀고 둘 다 좋아했던 기억이 나.
내 인생이 바뀐 건, 초등학교 3학년. 전학을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아.
딩- 동.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오늘 새로운 전학생이 왔다. 인사해"
"... 안녕, 내 이름은 예주. 예주라고 해"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 한 명이 불량한 태도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새로운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히죽거리면서 똘마니 같은 친구 한 명을 옆에 두고 웃고 있었지.
"큰 학교에 있다 작은 학교로 온 소감이 어때?"
"......."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은데, 적응 잘할 수 있게 도와줘라 알겠지? 반장!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기 저 뒤쪽 가서 앉아"
나는 한 남자아이 옆에 앉게 됐어.
쉬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인사를 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며 학급 친구들이 몰려들었지.
"야 너, 어디서 왔어?"
"평창동"
"거기 서울이야?"
"응, 서울이야"
시골에만 산 건지 평창동이 어딘지 모르는 애들이 많았어. 우리 집은 북악산과 부암동 사이 산자락에 있었지. 구구절절 떠드는 게 싫어서 그냥 몇 마디 하지 않았어.
"우와~ 그럼 부잣집이야?"
그렇게 아이들은 웅성거리면서 갑자기 한 명, 두 명, 내 물건에 손을 대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어.
"와 예쁘다. 이 옷은 얼마야?"
그때 조금 불쾌했나 봐.
"나도 잘 몰라. 만지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이야기하자, 한 여자가 아이가 그러더라.
"칫, 뭐 얼마나 비싼 거 입고 왔다고, 재수 없어"
난 그 여자아이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봤지.
"뭐 저렇게 예민해?"
아까 껌을 씹던 남자애였어. 나는 온몸이 떨렸지. 내게 해를 가할 것 같았고, 또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거든. 도발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약이 오르는 걸까? 약이 올랐는지 갑자기 내게 소리를 질렀어.
"야!"
"....."
"야!! 벙어리야?"
"..... 꺼져"
"이 년이!"
그 아이는 나한테 욕을 하면서,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의 연필을 집어 들었고 가지런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내 손을 찍어 내렸어. 연필심이 내 살에 박혔고, 살은 찢어져 피가 나기 시작했지. 그때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어. 눈을 부릅뜨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으면서 그 남자아이를 노려봤어.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몸과 달리 내 눈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는 그 년 놈들은, 뒷걸음질 치면서 물러났어. 네 번째 손가락 위에 박혀, 비스듬히 기운 연필을 왼손으로 뽑아서 교실 바닥에 내던졌지.
"제발..., 제발 나 좀 가만 놔두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담임 선생님이 오셨고 나를 괴롭힌 아이들은 교무실로 불려 갔어. 그리고 일은 커져만 갔지. 학부모가 불려 왔는데, 학부모장을 맡고 있는 엄마의 딸이었던 거야. 딸이나 엄마나, 똑같았어. 나중에 얼굴을 보고서도 잘못한 건 모르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지. 일방적인건 아니라는 거야 글쎄. 우리 엄마는 나랑 있을 때는 화를 내셨지만, 전학을 왔으니 네가 참으라고 하셨어.
아이들은 작은 말에도 쉽게 흔들려. 그 뒤로도 학교 활동에 적극적이신 엄마 덕분에 몇몇 아이들과는 어울릴 수 있었어. 하지만 엄마가 친하면 아이들이 친한 게 거기 암묵적인 규칙이었지. 결국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들과의 인연으로 관계를 이어갔어. 엄마가 만들어준 인연으로 학교 생활을 이어갔던 거야. 엄마들끼리 관계가 소원해지면 자연스레 아이들의 관계도 소원해졌어.
난 그 뒤로 친구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어.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그때 내가 보인 행동에 겁을 먹었는지 그때부터 괴롭히진 않았지만, 험담을 하고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했어. 그런데 그 남자아이는 나를 계속 괴롭혔어. 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어. 열등감 비슷한 것이 있었던 걸까? 내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게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자신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처럼 보이면 원래 그렇게 헐뜯고 무너지는 꼴을 봐야 속이 풀리는 걸까?
차마 나는 신체 폭력을 가할 수 없어서, 그 남자아이 가방에 매직으로 낙서를 하는 식으로 유치한 복수를 했지. 그때 당시 나로서는 그게 한계였으니까. 그렇게 한 번의 사건으로, 난 쉽게 친구를 사귀지 않게 됐고 친해지려 하는 아이들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어.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난 항상 해맑게 웃으면서 학교를 다녔지. 나를 괴롭히는 애들에게는 얼음보다 차갑게, 나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에게는 다정하게. 나와 친하게 지낸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어. 지은이, 내 친구. 그 친구만 있어도 친구를 새로 사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날 괴롭히던 남자아이.
내 손가락에 연필을 꽂아버린 그 애가 3층 높이 계단에서 내려가고 있는 나를 뒤에서 밀어버린 거야. 층간 높이가 높아서 계단이 많았는데, 나는 무방비 상태였고 그대로 계단으로 밀려 뒤로 넘어갔지. 소리를 지르며 넘어졌고, 뒤에 누군가 서 있었어. 그 아이는 친구랑 말을 하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던 참이었는데 넘어가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내 몸에 그냥 깔려버린 거지. 그리고 그렇게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남자아이는 일어나지 못했어.
그 친구 이름은 명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