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그리고
2월 23일 보름 다음날 새벽 1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골목길에서 셋이 나눈 이야기는 없었던 일처럼, 나는 그때까지 아무 일 없는 듯 지냈다. 예주가 학교에 늦게 등교하는 건... 그것도 그 시간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귀환식... 그건 대체 뭘까.
난 그 뒤에도 쉬는 시간마다 인동초 화단에 나가 예주를 찾았다. 말을 걸지 않더라도 그냥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그런 날 들이었고, 예주는 학교에 나왔지만 더 이상 화단에 나오지 않았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긴 했어도 힐끗 쳐다볼 뿐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도 예주 옆을 지날 때 말을 걸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방과 후에는 태권도장을 다녔고 혁승이 형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동생과 하굣길에 골목길을 지날 때면 불량 식품, 물 떡볶이, 슬러시를 사 먹기도 했다.
"형"
"응?"
"슬러시에 벌이 있어"
달달한 슬러시 기계 입구로 벌이 들어가는 바람에, 얼음과 음료가 섞이는 기계 통 안에는 말 벌 몇 마리가 같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벌이 안에서 같이 돌고 있는 슬러시 기계로 아주머니가 짜줄 때조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벌?"
"이것 봐, 말 벌이야"
"그냥 그거 꺼내서 버리고 먹어, 안 죽어"
"징그러운데, 괜찮을까?"
"응"
"정말이지?"
"어! 그냥 먹어 괜찮아"
"알았어"
동생은 말 벌 날개를 잡아 슬러시 컵 밖으로 끄집어냈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슬러시를 먹기 시작했다. 찡그렸던 미간 주름이 펴지면서 동생은 맛있어했다.
"형, 맛있다. 헤헤헤"
그런 동생을 보면서,
"맛있지? 그렇지?"
"응!"
그때였다.
"야, 초각"
뒤에서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
혁진이었다.
"왜?"
"너 왜 요즘 그 단발머리 여자애랑 얘기도 안 하냐"
"그냥 그렇게 됐어"
"그래? 흠... 너희 수상해"
"뭐, 뭐가"
"내가 예주에 대해 얘기해주고 난 뒤부터 너네가 얘기를 안 한단 말이지.."
음흉한 놈. 혁진이는 역시나 음흉한 놈이었다. 지가 관심 있는 거 아닌가?
"너 그건 물어봤어?"
"뭐"
"왜 그날 밤에 거기서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는지"
나는 이 녀석의 속내가 궁금해서 모른 척하고 되물었다.
"궁금하면 네가 물어보지 그래, 너는 물어봤어?"
"아니"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나는 그냥 신경 끄기로 했으니까"
"그래? 아닌 것 같은데.. 분명..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내가 들었단 말이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앞 말은 뭐라고 하는지 잘 못 들었는데, 얇아진다... 또, 엄마..?라고 했던 것 같아"
얇아진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엄마는 왜 찾는 거지? 혹시 부모님이랑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건가?
"형,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어? 어어? 아니야. 아니야, 연각아 먼저 집에 가. 형 얘기 좀 하고 갈게"
"나도 알고 싶은데, 같이 얘기하면 안 돼?"
"형이 나중에 얘기해 줄게. 먼저 가"
"...... 알겠어"
동생은 서운한지 풀이 죽어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동생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어 줬고, 이내 등을 돌려 집을 가는 동생을 확인하고 혁진에게 이어 물었다.
"너 그럼.. 혹시 예주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봤어?"
혁진이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예주가 그러고 있다가 어디로 갔어?"
"뭔가에 홀린 듯 걸어갔어. 나도 새벽에 본 건데, 집으로 가는 거겠지 아마"
새벽 1시였을까? 나는 궁금했다.
"예주 집이 어딘데?"
"집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무슨 소리야?"
"집은 집이겠지..."
"혼잣말하지 말고 알려줘"
"오두막에 살던데?"
"오두막?"
"응.. 오두막이 있는 곳으로 향했어. 지붕이 볏짚으로 덮여 있는데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 싶어. 그래서 그냥 보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질 않았어. 그래서 오두막에서 사나? 했지"
"너는 집이 어딘데 예주가 그러고 있는 걸 본거야? 몇 시에 본 건데?"
"나는 그 오두막이 내려다보이는 별장에 살아. 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너네 집도 보여. 미안하지만. 다 보인다고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음흉한 녀석이었다. 그 시간에 왜 깨있는 건지 궁금했다.
"나라고 그걸 보고 싶어서 봤겠어? 그냥 보이는 걸 어떻게 해"
"그럼 아침에 거기서 나오는 건 봤어?"
"아니. 예주는 거기서 다시 나오지 않았어... 갑자기 무섭더라. 학교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직접 말을 걸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야. 걔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이따금씩 밤마다 그렇게 돌아왔어. 오두막에 들어가고 나서 난 거길 바라보다가, "
"그 시간에 넌 왜 깨있는 거야? 그때가 몇 시였어?"
"새벽 4시. 난 불면증이 있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편이야. 그래서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도 있고, 창문 커튼을 열고 창문 밖을 보기도 해. 조용하고 차도 안 다니는 곳에 달빛이 비치면 기분이 좋아져. 그리고 거길 바라보고 있으면 작은 움직임도 눈에 다 들어온다고. 가뜩이나 잠이 안 오는데 익숙한 모습을 한 여자애가 걸어 다닌다 생각해 봐. 잠이 와? 안 온단 말이야. 그리고 난 예주가 나오는 걸 기다리다 항상 잠에 들었어.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더라고. 가보고 싶었어, 나도. 근데 무서워서.."
나는 혁진이의 말을 듣다가,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말씀하시던 일이 생각났다.
"길이 도대체 언제 나는 거야, 길은 다 뚫어 놓고 왜 개통을 안 하냐고. 나 원, 참 답답하네.."
"아빠 무슨 말이에요?"
"아이 글쎄, 우리 집에서 저 개울 건너 2km 정도 거리에 길이 하나 생겼잖아? 고가도로 말이야"
"네"
"거기서 뭐가 발견됐나 봐"
"뭐가요?"
"신문에도 나왔는데, 뭐 물건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수증기 같은 게 올라온다나. 그것 때문에 길 개통을 안 한다네. 한 번 찾아봐. 출입금지 구역이라 들어가서 확인해 볼 수도 없고. 낸들 뭐 알 수가 있나. 길이나 좀 빨리 개통되면 좋겠는데"
아빠가 얘기하신 오두막을 난 알고 있었다. 우리 학교와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우리 집과도 불과 2k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허름한 오두막을.
혁진이에게 들은 이 사실을 예주와 명식이에게 알리면 안돼. 그곳에 어쩌면 힌트가 있을지 몰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터널 위, 그 터널 위에 있는 오두막 때문에 길을 만들지 못했다고?
"혁진"
"응"
"난 거길 가봐야겠어"
혁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뭐?"
"나는 거길 가보겠다고, 궁금하면 너도 같이 가보든지. 난 알아야겠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 그래, 언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늘. 오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