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형!"
"응?"
"아까 형이 친구랑 하던 얘기 나도 알고 싶어"
"..... 연각아"
"어 형"
"나는 오늘 밤에 엄마아빠 몰래 집에서 나갈 거야"
"왜? 몇 시에?"
"어디 좀 가야 할 것 같아.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야 돼"
"밤에 나가면 아빠한테 혼날 거야"
"몰래 나가면 돼. 몰래"
"어디 갈 건데?"
"오두막에 갈 거야. 이건 꼭 비밀로 해야 해"
나는 연각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라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응, 알겠어. 알겠어"
그날 저녁.
"여보 이거 누구네 김치야?"
"그거 우리 김치예요"
"그렇지? 아주 푹 담갔나 보네, 시원하니 맛있어"
신 김치를 좋아하는 아빠는 옆집에서 김치를 엄마가 얻어오기라도 하면 그 맛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집김치가 아니라고 해서 드시지 않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김치가 담긴 반찬 그릇으로 젓가락이 가는 일이 줄었다.
우리 가족은 삼시 세끼를 항상 챙겨 먹는 편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드시고 나면 상을 한 번 치우고 다시 먹고는 했다. 테이블에 여섯 명이서 앉아 먹긴 어려웠고, 유별난 우리 할머니는 밥상에서 젓가락을 나란히 하려고 상을 툭, 툭 치기라도 하면,
"어디 밥상머리에서 소리를 내!"
하며 호통을 치셨기에,
자리가 좁다는 핑계로 아버지가 따로 먹는 것을 말씀드렸다. 조용히 식사하길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예상과 달리 흔쾌히 좋다 하셨고,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할머니한테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엄마는 맛있는 반찬이나 음식이 나오기라도 하면 할머니가 맛있다고 해야 마음을 놓았다.
"연각이는 왜 콩을 안 먹어?"
"먹기 싫어요. 이거 콩 먹으면 목에 또 검은색 점이 날 것 같단 말이에요"
"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연각아. 콩이 몸에 얼마나 좋은데"
"콩밥은 싫어요. 하얀 쌀밥 먹을래요"
"오늘 밥은 콩밥 밖에 없는데, 연각이 오늘만 먹으면 안 될까?"
"..... 형이 먹으면 안 돼?"
"알겠어 나한테 콩 다 줘"
"세상에는 오직 너희 둘밖에 없단다. 형제는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해"
"아빠, 지금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형한테 다 주지 말고 너도 반만 먹어, 응?"
아빠는 건강을 중요시하는 분이셔서 편식하는 걸 싫어하셨다. 음식 안 가리고 골고루 먹는 나와 달리, 연각이는 말캉말캉한 음식이나 모양이 먹음직스럽지 않은 채소는 먹지 않았다. 예를 들면, 뭐 대표적으로 가지같이 씹히는 느낌이 물렁한 것들이다. 연각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만 먹자, 하는 표정을 지었고 동생은 콩 맛을 느끼기 싫어 그런지, 고추장을 퍼서 밥에 비비더니 억지로 먹기 시작했다.
"연각아, 콩 먹는다고 목에 점 또 안나"
"얼굴 새까맣게 변하면 어떻게 해"
"푸하하, 그런 일 없어. 걱정하지 말고 먹어"
"....... 응"
그래도 동생은 내 말은 잘 들었다. 아빠는 그런 연각이를 보면서,
"그래도 형 말은 듣네, 원 녀석"
툭 한 마디 던지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텔레비전을 잠깐 보면서 거실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 일찍 자는구나, 졸리면 어서 들어가 자"
동생과 나는 한 방에서 생활했다.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자지 않으면 새벽에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천장 위로는 예주, 명식이, 혁진이, 그리고 오두막의 잔상이 떠올랐다.
'... 지금 자야 해'
난 눈을 감았다. 알람 소리에 부모님까지 깨버릴 것 같아 시간을 맞춰 놓지 못했기에 긴장한 상태로 계속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그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옆을 보니 동생이 옆에 누워 말똥말똥한 눈을 뜨고 있었다.
"연각아 안 자고 뭐 해, 안 자? 지금 자지 않으면 새벽에 못 일어나. 지금 자. 이따 새벽에 같이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자"
그러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형.. 나 쉬 마려워..."
"조용히 말해.. 쉿..."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앞으로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일단 쉬 하고 와"
"응 그럴게"
연각이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고양이 발을 하고서, 거실 마룻바닥을 살금살금 걸어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물 내렸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연각이.
"잘했어. 소리 내면 안 돼. 옷 입어, 나가자"
".... 조금 무서운데"
"그럼 집에 있어"
"아니야! 형, 아니야 나 같이 갈래"
"그럼 옷 입자"
우리는 잠옷을 갈아입고 마룻바닥을 지나갔다. 엄마는 안방 침대에서,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현관문에 도착하는 순간,
"가지 마!"
".........!!!"
동생과 나는 입을 막고서, 불이 꺼진 거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어서, "가지 마... 가지 말라고" 하는 아빠의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빠가 누워 있는 소파를 바라보니 아직 주무시고 계셨고, 하늘로 뻗은 손이 소파 위로 '털썩' 떨어졌다. 잠꼬대였다.
".... 가지 말라고.... 오!"
드르렁. 푸슈슈슈..
드르렁. 푸슈슈슈....
동생과 나는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고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우리 집 현관문은 열쇠만 있으면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직사각형 하얀색 큰 유리창이 위아래로 난 철 문. 안에서도 밖에서도 물건의 형체가 잘 보이는 문이었다.
"... 성공이야! 가자"
그렇게 동생과 난 집 밖으로 나왔다. 전자시계를 차고 나와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37분이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나있는 언덕길을 걸었다. 언덕길 옆으로는 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우리는 그 벽 뒤로 숨어 오두막이 있는 곳을 향해 서둘러 걸었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없어진 우리를 찾겠다고 집 밖으로 나와 따라온다면 오두막에 도착하기도 전에 혁진이와 한 약속은 물거품이 돼버릴 터였다.
"형, 왜 이렇게 떨어?"
"..... 응? 나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괜찮아! 내가 있잖아"
동생은 신이 난 듯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른쪽 볼을 꼬집었다.
"누가 누굴 지켜, 이 녀석"
한 1.2km쯤, 오두막이 있는 쪽을 향해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했다. 저기 산 중턱에 혁진이의 집이 보였다.
'커튼이 활짝 열려 있고 불이 꺼져 있으면 내가 밖을 나간 거고, 커튼이 쳐져 있으면 내가 아직 일어나지 못한 거야'
'어디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두막 옆 작은 소나무'
'알겠어, 늦어도 4시 전에는 갈게'
'늦지 마. 조금 미리 나가 있을 거니까'
커튼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리를 건너면서 새벽 달빛이 비치는 개울물을 바라봤다.
찰랑찰랑- 촤르르르-
주르륵- 조르르- 졸졸졸-
모든 것이 고요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두막에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박동은 내 머리에 울려 퍼질 정도로 커졌다.
"형! 저기 있다. 저기! 오두막"
터널 위에 있는 오두막이 보였다. 지대가 낮아 오두막 지붕만 보였지만 용캐도 그걸 찾아낸 연각이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서둘러 작은 소나무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각아, 빨리 가자. 뛰어"
잰걸음으로 총총 뛰어간 소나무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혁진아, "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혁진아, 혁진아. 분명 여기에서 보기로 했는데..."
"누구? 형 누가 또 같이 왔어?"
"응, 그때 얘기 나눈 친구"
"웅"
그때였다.
"어이, "
혁진인가 싶어 나무 뒤 쪽을 바라봤는데 남자아이 둘이 나타났다. 나는 놀라는 표정으로 이름을 불렀다.
"너는 왜...? 네가 왜 여기 있어?"
혁진은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미안, 내가 말을 안 했지. 사실은"
"비밀이라 해놓고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는 넌, 혁진이한테 얘기 듣고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건 잘한 거야? 궁금해도 분명 그때까지 참아달라 했잖아. 그 골목에서 먼저 만나자고"
"......."
"2월 23일 보름 다음날 새벽 1시, 기억 안 나?"
"알고 있어. 그렇지만 기다릴 수가 없었어"
".... 나는 네가 그럴 줄 알고 있었어"
"뭐?"
"따라와, 너도 참 구제불능이다. 옆엔 동생이지?"
"응, 연각이"
겁을 먹은 동생은 아무 말 못 하고 벙어리처럼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가자, 연각아"
"........."
동생은 아까 신이 나 흥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내 손을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혁진. 너는 이 상황을 나한테 미리 설명해야 했어. 명식이가 여기 함께 올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