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어떤 이유에서 그 남자아이가 나를 밀었는지는 모르겠어.
"꺄아아아악!!"
나와 나란히 계단에 서있던 지은이가 소리를 질렀지. 난 밀려 넘어지면서도 남자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
네 번째 손가락을 연필심에 찍혔을 때처럼 난 그 아이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며 계단 아래로 쓰러졌어. 일어나지 않는 명식이를 짓누른 채 복도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지.
소란스러운 소리에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 몇 분이 나오셨어. 비틀거리긴 했어도 명식이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
"이게 무슨 소란이야!"
아이들이 있는 쪽을 향해 선생님 한 분이 소리쳤어.
나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지은이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었고, 복도에 있던 아이들은 김선생님의 물음에 내가 대신 대답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
"맨 뒷자리.. 빨간 머리를 한 남자아이, 그 아이가 나를 밀었어요"
아이들의 시선은 다시 김선생님에게 향했지.
"정훈이? 정훈이 그 녀석 말하는 거냐?"
"네... 정훈이가.. 예주를 밀었어요"
지은이가 대답했어.
선생님이 다가와 누워있는 명식이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명식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어. 명식이는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계단에 부딪혔고 미끄러지듯 내려갔어. 계단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히면서 충격이 가해졌고 긁혀 버리는 바람에 피부가 찢어져 버린 거야.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어. 그런 명식이를 보고도 선생님은 계단에서 민 녀석이 누군지 잡아내는 것이 먼저였던 것 같아.
"정훈이 어디 갔어!"
".... 도망간 것 같아요"
"그 녀석 당장 교무실로 오라고 해!"
남자아이 몇 명이 도망간 정훈이를 찾으러 갔어.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 나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더라. 선생님은 이 일을 우리 엄마와 명식이 부모님께 알리겠다고 하셨지. 병원으로 오시게끔 만들려는 생각이었던 거야. 아이들이 정훈이를 찾는 동안 간호선생님이 오셨고 명식이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했어. 그리고는 바닥에 바르게 눕혔지.
잠시 후, 구급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어. 구급대원에게 나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기억나는 대로 말했어.
- 계단에서 밀려 넘어졌다.
- 나는 괜찮은 것 같다.
- 명식이가 아래 있었고 깔렸다.
-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 머리가 찢어졌고 피가 났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어.
그때 나는 정신이 없었어. 쓰러져 있는 명식이를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서서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이었어. 내 몸에 이상은 없는 걸까, 혹시 긴장한 상태라 통증을 못 느끼거나 하는 건 아닌가, 하면서. 명식이를 싣고 가는 응급차에 같이 올라 타 큰 병원으로 향했어. 응급차는 사이렌을 켜고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기 시작했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길을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렸지. 그럼에도 다른 차들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어.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34분이 걸려 도착했지. 나는 응급차에서 내렸고, 명식이를 구급대원 분들이 응급실로 이송했어.
간호사로 보이는 한 분이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어.
"이 아이는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의식이 없고, 저 여자 아이는 같이 계단에서 넘어졌습니다. 이상 없는지 잘 좀 봐주세요"
"네!"
간호사는 나를 데려가서 몸 이곳 저곳을 확인했어.
"괜찮니? 특별하게 어디가 아프거나 한 곳이 있니?"
"아니요, 그냥 조금.. 욱신거려요"
잠시 뒤 엄마가 도착했어.
"예주야...!"
"엄마!"
"어디 다친 곳 없니?"
"... 네 괜찮아요"
"다른 아이는?"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내 얼굴을 여기저기 살펴보시더니, 얼굴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시고는 내 팔과 등, 다리를 여기저기 만져보셨어.
"괜찮아요, 엄마"
그 말에 엄마는 나를 꼭 안아줬지.
그 때 숨을 헐떡거리며 복도에서 남자 한 명이 나타났고,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를 향해 명식이에 대해 물었어.
"혹시.. 명식이가 여기 있습니까? 방금 이곳으로 왔다고 하던데요, 덩치가 조금 큰 사내아이입니다. 머리를 다쳤어요"
"혹시 보호자분 되시나요?"
"네, 제가 명식이 보호자입니다"
"혹시 부모님 되시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응급실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어디 있습니까?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확인 중인데 뇌사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고 있어요."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응급실 앞을 계속 왔다 갔다 했어. 얼마 뒤 담임선생님도 병원에 도착했고, 명식이가 중환자실로 옮겨진지 1시간쯤 지났을까..
"....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명식이 상태를 궁금해하며 우리 모두는 의사 선생님을 바라봤어.
"..... 명식군은.... 현재 뇌사 상태입니다"
"네...? 뇌사 상태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혼자 숨을 쉴 수 없고, 의식이나 반응도 없어요. 의식이 깨어날지 미지수입니다.."
명식이 보호자라고 하던 그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도 치료를 할 수 있다면 계속해달라고 했어.
"숨이라도 붙어 있게 해 주세요.. 돈은 어떻게든 준비해 보겠습니다"
부모님 같지 않은 사람이 명식이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자 담임선생님이 물어보셨어.
"실례지만, 죄송한데 누구시죠...? 저는 담임 선생님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보육원 원장입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그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어.
"아! 그러시군요..!"
그랬던 거야.
명식이는 어렸을 때부터 홀로 보육원에서 컸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명식이는 어딘가 조금 외로워 보였어. 그래도 어울리는 친구가 몇 명 없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항상 같이 가는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 그 친구도 함께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인 것 같았지. 둘은 친형제는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곤 했어. 부모님의 행방을 모른 채 살아가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 둘이 의지하면서 지냈던 거겠지..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럴 거면 나를 왜 낳으신 건지 이유라도 물어보고 싶은 게 사람의 심정 아닐까. 명식은 매일 그런 마음으로 지냈을 텐데.. 재수 없게 오늘 지금 저렇게 뇌사상태에 빠지다니.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명식을 살렸으면 했어. 날 밀어버린, 정훈이. 그 친구가 원망스러웠고 이유라도 묻고 싶었어. 도대체 왜 그랬냐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데 나는 갑자기 눈물이 흘렀어. 이유 없는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하게 웃으며 잘 지내던 내가, 연필심이 손가락에 꽂혀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아무 잘못 없는 명식이가 그렇게 누워 있다는 사실에 울고 있었어. 엄마는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면서 놀라서 쳐다보셨어.
"예.. 예주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어.
명식이를 그렇게 만든 정훈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예주 어머니 되시나요?"
"... 네 그렇습니다"
"이게..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뛰어놀다가 이렇게 다칠 수도 있는 건가요?"
"아, 아니요.. 그게, 죄.. 죄송합니다.. 예주야, "
나는 선생님을 쳐다봤지.
"어머니랑 같이 귀가해라.. 여기 뒷 일은 내가 저 보육원 원장님하고 처리 하마. 학교에도 얘기해야 하고"
"..... 네 선생님"
엄마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참아 왔던 눈물을 펑펑 흘렸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아무 죄 없이 다쳐버린 명식이를 계속 생각하니 슬픔은 분노로 변해갔어. 나를 싫어하는 남자아이 하나로 인해 시작된 이 상황이 마치 나 때문에 이렇게 된 듯한 생각이 들었어. 나는 분하고, 억울했고, 미안했어.
'그 새끼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복수하겠어' 내 안에 가둬 둔 감정들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지. 명식이가 병원에 입원했던 그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의식이 깨어 있을 때마다, 명식이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매일 눈을 감고 기도하고 울고를 반복했어.
예주는 명식의 텅 빈 옆자리를 보며 상실감을 느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옆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우정 같은 것이 쌓여가던 터였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거나,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이 친구가 내 옆 자리 짝꿍이구나' 하면서 한 번씩 더 보게 되는 그런 사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예주는 내심 좋아했다.
몇 주가 흘러도 명식이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예주는 지은이와 이따금 병원에 찾아갔지만 명식이는 중환자실에 여전히 누워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언제나 빗나갔고, 그 기대 뒤에는 분노가 따라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슬픈 감정은 줄어들었어.
마음을 추스르면서 그저 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지.
"예주야"
"....... 응?"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명식이 때문에 그래?"
"나도 잘 몰라"
"근데 정훈이 말이야"
"걔는 왜?"
"그 뒤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던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뒤로 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
"그렇지? 너한테 뭐라고 한 적 없지?"
"응, 이상한 애가 됐어"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사실 정훈이가 그날 잡히지 않으려고 싸움을 하고 난리를 쳤대"
"그래서?"
"그런데.. 고학년 선배 한 명이 와서는 단숨에 잡아갔다네"
"고학년 선배? 누구?"
"6학년인가, 정훈이보다 덩치는 작았던 것 같아. 쫙 찢어진 눈에, 짧은 머리를 했어"
"그래? 누구지? 본 적 있어?"
"나도 자세히는 몰라, 나도 들은 것뿐이야"
나는 정훈이를 가만두지 않겠다 다짐한 다음 날, 교실에서 그 아이를 만나면 꼭 책임을 물으려 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정훈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왔구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은 나와 정훈이의 마주침에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수업 시작 15분 전, 복도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게 들렸다. 창문 쪽을 향해 바라보는데 빨간색 머리가 창문 너머로 보였다. 막상 상황이 들이닥치니 심장만 더 두근거릴 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화부터 내야겠다 생각하는 그 순간, 앞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훈이를 보고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훈이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내리 깔고, 억울한 표정을 한 채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 앞에 선 정훈이는 어쩔 줄 몰라했다.
"뭐야?"
".... 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난 너무 당황했다.
"네가 나한테 왜 사과를 해? 사과를 하려면 명식이한테 해야지. 깨어난 명식이한테"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
"용서해 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아니야,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 줘 나를!!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 알았으니까 그만하라고!"
정훈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손바닥을 땅에 딛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혼잣말로 빠르게 되뇌었어.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제발 용서해 줘 나를!"
"야.. 너 괜찮아?"
"내가, 내가.. 너 연필심으로 손가락 찍었던 것도, 그것도 잘못했어.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 안 할게, 내가, 응? 내가 이렇게 용서를 빌어 내가, 미안해. 이제 앞으로는 다신 안 그럴게, 어? 제발 봐줘"
뭔가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벌벌 떠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어. 정훈이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지.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은 심정이었어.
"일어나. 나는 됐어. 명식이한테 나중에 사과해"
"응, 응, 내가 꼭. 내가 꼭 그렇게 할게. 고마워, 고마워"
정훈이는 불안정한 호흡으로 말을 이어갔어. 그 아이는 뭔가 두려워하고 있었어.
아이들은 구경 난 듯, 그렇지만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교실 맨 뒷자리로 걸어가는 정훈이를 바라봤어. 그렇게 다시 시선을 돌리는데, 저쪽 창문 너머로 눈이 쫙 찢어진, 짧은 머리를 한 고학년 선배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걸 봤어. 정훈이를 보더니 등을 돌려 사라졌어. 지은이가 말했던 그 선배였을 거야.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겼지.
잠시 뒤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얘들아 명식이가 의식이 없단다. 다시 학교에 못 올지도 모르니.. 마음 깊이 기도해 줘라, 반드시 꼭 다시 일어날 거라 기도해"
이내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선생님에게 정훈이가 이상하다 말씀드렸어.
"선생님"
"응, 예주야"
"정훈이가 이상해요"
"... 그럴지도 모르지.."
"네?"
"정훈이 속사정을 들어보니, 참..."
선생님은 뒷 말을 잇지 못하시고 한숨을 내 쉬었다.
"그냥 모르는 게 낫겠어. 쉬거라"
"선생님"
내가 부르는 소리에 나를 힐끗 보시더니, 한 말씀 더 하셨어.
"네가 정훈이를 용서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