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 회상편
과수원과 절이 있는 산 길 초입 다리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
노을이 저물어가는 오후 다섯 시, 만복은 개 두 마리를 끌고 그 다리로 향했다. 가방 하나를 등에 지고 걷다 다리 정중앙에서 아래를 잠시 바라본다. 나뭇가지에 걸린 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는 계절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다리 위 바닥에 촘촘하게 쌓인 모래알은 공중으로 흩날렸고, 그렇게 바람이 세게 불어올 때마다 만복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음... 날이 좋네. 이리 와라"
씩.. 씩.. 끼낑.... 끼이잉... 크르르...
죽음을 알아차린 듯 두려움에 찬 겁먹은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치는 누렁이 두 마리를 만복은 밧줄로 힘껏 잡아당겼다.
"이리 와라, 이리 와라"
끼깅... 끼이잉.... 멍! 멍!
"우선 너부터 가자, 미안~하다"
만복은 늘 하던 대로 자신이 쥐고 있던 밧줄을 다리 난간에 둥글게 만들어 묶었고, 짖어댄 누렁이 한 마리를 다리 난간으로 던져버렸다. 남은 강아지 한 마리가 놀라 뒷걸음질 치자 차분한 목소리로 만복은 말을 건넨다.
"어허, 아직 너는 여기 그대로 있거라. 조금 있으면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응? 대신 안 아프게 해 주마"
회색 벽돌 다리 끝자락으로 이어진 돌계단을 따라 만복은 개울가 아래로 내려갔다. 돌 틈 사이마다 푸른 풀잎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고 만복은 물가로 내려와 방금 발로 차 떨어뜨린 누렁이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고놈, 명이 질기구먼"
그때 다리 위를 지나가던 칠구가 난간에 걸려 있는 누렁이를 보고 만복에게 말을 걸었다.
"만복성님! 오늘 몇 마리나 잡았어요?"
"오늘? 한 서 너 마리 잡을 것 같구먼. 두 마리 잡고 또 쉬었다 혀야지,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여. 이놈들이 죽을 때 눈깔이 나를 향해 있다니까, 사람이 죽을 때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보듯이 말이여.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 눈처럼 쳐다볼 때면 아주 오금이 저려부러. 꿈에라도 나올 것 같응게.. 어디 가는가?"
"과수원 한 번 둘러보고 들어가려고요!"
"으이, 개 한 마리 해줘 부러?"
"아니여, 괜찮아요, 제가 개를 먹으면 꼭 무슨 일이 생겨서, 개고기는 안 먹어요"
"뭐 그런 일이 있담시야. 조심히 가드라고"
"네! 천천히 하셔요"
그르르르...
누렁이 입가로 거품 낀 하얀색 침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숨이 멎어가는 것 같다. 산소가 부족해지자 몸이 경직된 듯 발버둥 치던 힘찬 몸부림은 약해져 갔고, 네 다리도 힘이 빠져 이내 아래로 축 늘어져 더 이상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끝내 죽어버린 것이다.
물가 옆으로 넙적한 돌바위를 찾아 그 위에 물을 뿌려 묻어있던 모래를 털어버린 만복은 다리 위로 올라가 누렁이의 숨이 넘어갔는지 확인하더니, '갔구먼 갔어. 잘 가거라' 말하고는 밧줄을 잡아당겼다. 축 늘어진 누렁이는 아무 움직임 없이 만복의 손에 올려져 아까 그 넓적한 돌바위 위로 얹혔졌다. 만복은 가방에서 칼과 토치, 그리고 가스통을 하나 꺼내더니 숫돌에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 30분쯤 지났을까,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밤새 비가 오려는 건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낙엽이 돌바닥에 스쳐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안 되겠네' 만복은 하던 일을 마무리 지으며 중얼거렸고 집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돌계단 위로 올라가 포대 한 자루와 가방 하나를 둘러업고서, 만복은 동네 작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여기, 술 두 병 주소"
"술 두 병이예? 거 보니께 매일 술 먹고 그러는 거 같던데, 그러지 마소.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요"
"아지매가 내 하는 일 해보면 알 거요. 이게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있어야지"
"뭐 하시는 분인데예"
"내 개장수요"
"에그머니나, 아 그래예? 어쩐지..."
"뭐요"
"우리 집 앞에 묶은 강아지 있지예?"
"..... 말하지 마소"
"아저씨만 오드라면 계속 끼이이끼잉 거리고 무슨 일이라도 난 것마냥, 아저씨 가고 나면예, 바닥에 아주 똥을 싸고 지려서 왜 그러나 했다니까예"
"미안하오, 얼마요?"
"이 천 원 이예"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겨있는 술 두병을 만복은 휙 낚아채더니, 슈퍼 앞 황색 장판으로 덮여 있는 마루에 앉아 술 한 병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크으..."
꿀꺽, 츱, 츱츱, 츠-읍.
그렇게 세 번의 들이킴, 그리고 술 병 입구에 맺힌 술을 깨끗이 들이켠 만복은 몸을 일으켜 세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또 가면 손님이 와있을 테지. 빌어먹을, 그 녀석은 또 방 안에서 벌벌 기고 있을 테고..."
집 앞에 도착한 만복은 아무 말 없이 나무로 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문에는 영부암이라는 한자가 적힌 낡은 패가 걸려있었다. 방 안은 어둑했다. 커튼 대신 걸려있는 붉은색 보자기를 바라보며 만복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 중에는 향 냄새가 눅눅하게 퍼져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여러 크기의 신장상(神像)과 초상화가 빽빽하게 놓여 있고, 그 아래 좁은 제단에는 붉은 촛불 세 개가 서로 다른 높이로 타오르며 그림자를 흔들어댔다. 제단 한쪽엔 말린 약초와 정체 모를 작은 병들, 그리고 오래 써서 손때 묻은 방울, 부채, 칼 같은 오구(五具)들이 가지런한 듯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바닥에 깔린 누런 돗자리를 보더니 만복이 소리 내 불렀다.
"금례 있는가"
"금례 있는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다가, 법실 옆으로 이어진 작은 방 안에 있던 한 남자아이가 인기척을 내며 밖으로 나오더니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아빠 오셨어요, 엄마 지금 안 계세요 저기 앞 산에 기도하신다고 올라가셨어요"
만복은 텅 빈 법실에서 금례가 돗자리 위를 걸어 다닐 때 방울 달린 치맛자락이 사각거리며 낮게 울려 퍼지던 기억을 떠올렸다. 금례가 그렇게 뛰기라도 할 때면 천장 어디선가 금속이 흔들리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와, 방의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고는 했다. 한켠에는 작은 쌀독, 막걸리 병, 과일 바구니 같은 공물들이 놓여 있어 햇빛 한 줄기 없이도 방 안이 묘하게 밝아 보였고, 그 밝음 때문에 오히려 더 서늘한 분위기가 돌았다.
"정훈아"
"네 아버지"
"정훈아"
"네 아버지"
"정훈아!"
"네"
"여, 앉아 술을 따라 보거라"
"네, 네"
초등학교 3학년 정훈이를 옆에 앉힌 채, 만복은 술을 따라보라 권유했고 정훈이는 이유 없이 벌벌 떠는 손으로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술을 쭉 들이켠 만복은 당연한 듯 정훈에게 말했다.
"술잔이 비면 한 병을 다 마실 때까지 바로바로 채워, 정훈아, 응?"
"네, 네 아버지"
그렇게 세 잔쯤 술을 들이켤 때였을까,
나무로 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
만복의 신발을 보고는,
"지금 법실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금례였다. 정훈이가 안심하는 목소리로 불렀다.
"어, 엄마"
정훈이는 눈치를 살피더니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만복은 그런 아들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술을 마저 마셔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금례는 작은 상 위에 놓인 술잔과 술을 집어 들고 싱크대로 향하며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계속 살 거였으면 차라리 오지를 말지. 당신 때문에 정훈이가 어떻게 된 줄 알아요?"
"뭐? 뭐가 어떻게 됐는데"
"학교에서 애들을 괴롭힌다고요, 당신이 술 마실 때마다 정훈이한테 말을 하면서 툭, 툭, 건드리면서 때리던 걸 애가 배운 거잖아요!! 부모가 돼서, 한참이나 어린애를 술을 따르라고 시키고, 강제로 마시게 하려고 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거에요?"
".....그러게, 왜 그럴까"
만복은 정훈이를 이어 불렀다.
"정훈아!, 정훈아!!!"
방에서 또다시 나오려는 정훈이를 금례는 문을 막아서며 방으로 들어가라 했다.
"정훈아, 엄마가 아빠 내쫓을 거야. 이렇게 지내다가는 엄마도 너도 못 산단다"
"너 정훈이 이 놈, 아빠가 부르는데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 이 녀석이"
"당신 집에서 나가요. 당장 나가요!"
"내가..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거 같아? 다 우리 집을 생각해서.... 그런데 나를 보고 집을 나가라고 해?"
"나갈 때는 당신 마음대로였겠죠. 하지만 돌아오는 건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여긴 정훈이와 나, 우리 둘의 집이니까. 받아준 것도 당신이 술을 먹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잖아요"
"....내 면목이 없군. 정훈이를 왜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툭툭 때린 건지, 그걸 배워서 친구들한테 했겠지? 그러고 나서는 이제 더 세게 때리기 시작한 거야. 그렇지..? 미안하네"
한참을 혼잣말로 떠들어대던 만복은 길을 막아선 금례를 피해 안방으로 들어갔고 이내 누워 잠에 들었다.
"괜찮아요 엄마?"
"....내가 무속인이 될 줄 알았겠니. 그것 때문에 저 이가 집을 나가고 개장수를 하겠다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녔던 건데.. 돌아와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단다. 술을 원래 마시지 않았는데, 나 때문에 속이 상해 마셨던 거야. 아빠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단다... 다 내 잘못이야..."
금례는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정훈이를 꼭 안아줬다.
만복의 반복적인 손찌검은 정훈이가 사람을 건드리는 것에 문제의식이 없게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정훈이는 더 큰 자극을 원했다. 손에 잡히는 물건과 친구들의 팔로 시작한 장난스러운 툭툭거림은 만복의 억압이 만들어낸 정훈이의 폭력성을 일깨웠고, 정훈이는 사람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집에서는 그를 통제하는 만복이 있어 순한 양이 되곤 했지만, 학교에 가서는 180도 달라진 폭군이 되었던 것도, 만복의 억압에 대한 분노가 타인에게 향하게 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예주의 손가락에 연필심을 꽂았을 때도, 계단에서 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을 배회하던 만복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정훈은 만복의 공포가 기억났다. 그리고 예주를 향한 본인의 행동이 만복의 행동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예주에게 돌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정훈이는 만복을 닮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면 술냄새와 개냄새가 고약했고, 만복은 잘 씻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면 밖으로 나가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양반처럼 굴었지만, 술만 마시면 개가 됐다. 그런 아비를 보며 큰 정훈이지만 그럼에도 옆에 금례가 있어 내면에 있는 착한 심성이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 자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착한 마음으로 이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