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라도 한 듯

멀어져 버린 우리들

by 시골남자

그토록 친하고 가깝게 느껴지던 친구들이 하나 둘 멀어지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 초등학교 때부터였을 것이다.


보통 한 학급에서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이 나누어지곤 했다. 오직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이 평가됐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잘 어울려 놀았다. 가끔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도 늘 무리에 잘 섞여 놀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느낌을 물리적으로 체감하게 만든 건 특수반이 생기고 나서였다.


나는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 3층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우측에 있던 특수반을.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학급 아이들과 조금 다른 아이들이 그 반에 배정되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특수반 학생'이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한 사람에게 특정 집단의 꼬리표를 붙이는 순간 그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그 집단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충분한 설명도 없이 선생님의 판단으로 그 반에 배정됐고, 학급반 친구들은 그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인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나와 놀던 아이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조금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것 같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과 '저 아이와 놀면 나도 특수반 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기분은 너무 불편해서 잊을 수가 없다. 그 반에 배정되고 난 뒤부터 그 아이도 나를 조금씩 피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내 행동이 변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내가 어떤 기준에 의해 나누어지는 경험은 계속됐다. 그 과정은 대부분 각 개인의 장점이 고려되지 않은, 절대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다. 학교 성적, 대학 진학에 필요한 수능 점수. 단지 그 숫자들에 의해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학교를 다니면서 고민도 해보기 전에 선택이 요구되는 시기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나를 사회인으로서의 종착지에서 특정 그룹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인문계와 실업계를, 대학 진학을 결심했을 때는 인서울과 지방 아니면 전문대를, 사회에 나와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그렇지만 선택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그건 또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내게 맞는 선택을 마지못해 하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사회인이 되면 끈끈하게 이어졌던 지인들과의 관계가 하나 둘 끊어지기 시작한다. 장기간 연락을 하지 않고도 견고한 관계가 유지되는 건 오직 초중고 동창뿐이다. 사회인이 되기 전 사회의 어떤 떼도 묻지 않은 순수했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이다. 반면 대학에 진학해서, 또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졸업을 하거나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혹여나 있더라도 초중고 동창만 못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이든 회사든 그 집단에서 이탈되는 시점부터는 형님 아우하던 관계였을지라도 좀처럼 연락이 잘 오거나 하지 않는다.


대학이나 회사와 달리 적어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웬만해서 초중고등학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의 의무적으로 다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목고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구에서는 집 근처에 학교가 있으니까 가까운 곳을 다니다 졸업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경쟁심리 없는, 다녀야 하니까 다니는 상태이기에 대학과 회사와는 조금 다른 경향을 보일 수 있는 것 같다.


타이틀은 늘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이번에 A가 어디 붙었다고 하네, B는 재수한다고 하더라, C는 어쨌더라 저쨌더라.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A가 이번에 대기업 합격했다고 하네, B는 대학원 진학했다고 하네, C 이하동문. 나와 항상 함께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 했던 친구가 그렇게 지역, 학군, 직군에 의해 나누어지는 시기가 도래하고 나와 어떤 식으로든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그건 같은 직급으로 시작한 회사에서 나보다 누군가 더 빠르게 승진을 하거나 나보다 뒤처지거나 할 때도 마찬가지다.




위 과정을 겪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따라다니는 생각들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 성공, 남들보다 잘 돼야 한다는 강박, 극단적 개인주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고독함과 외로움을 즐겨야 성공한다, 나는 다를 거라는 생각, 성공하기 위한 방법, 방법, 또 다른 방법, 남들은 모르는 비밀... 머리에 그냥 당연한 듯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들..


인생을 위 기준에 맞춰 조금만 살아보면 생각보다 외롭고 쓸쓸함을 알 수 있다. 모든 생각의 끝이 나 자신을 향한다. 남을 배제하고 배척했다. 사람이 그리워져도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 이겨 먹으려 애쓰고, 나를 갈아 넣고, 무리하고 피곤하게 산다. 궁극적으로 힘겹게 연결되어 있던 끈이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허울뿐인, 계산적인 관계들, 그런 척하며 유지되고 있을 뿐인 그런 관계,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관계만 남았다. 그렇게 가까웠던 사람들도 하나 둘 멀어졌고 그나마 이어져 있던 가는 끈 마저 끊어질 판이다.


생존을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한편으로 잠시 멈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그 끊어진 끈이 이어져 있을 때 더 행복하지 않았나.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개인화하고 나누려 한다. 점점 타인을 배척하게끔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해 나눠진 우리일지라도,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한 연결이, 그 끈이 필요한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주의 나이로 치면 찰나의 순간을 살면서도 우리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할 것처럼 산다. 우리는 내일 당장 죽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살아 있을 때 그 느슨해진 끈을 다시 단단하게 이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람들과 이어져 있던 끈을 다시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논리를 따라가며 사는 것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기 직전의 상황에 몰려 있지 않은 이상, 욕심을 부리거나 허상을 쫓지 않는 한, 적어도 의식주는 해결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걸까?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우리에게도 길을 걷다 서로를 마주쳤을 때 환하게 웃으면서 초면에도 반갑게 인사할 날이 올까?


나는 왜 그들과 그렇게 멀어졌던 것일까? 싸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어떤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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