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수영장

밤의노인들

by 시골남자

"형님, 수영장 낚시라고 들어보셨습니꺼"


"수영장 낚시라니?"


"... 거기가 물이 참 맑은데 특이한게 밤에만 물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말입니다. 밤에만 깨끗해지는 물이라고 해야하나?"


"지금 말장난 하는거가?"


"에이 아니지요, 수영장 안이 밤에만 보입니다 밤에만. 아, 정확하게 말하면예, 수영장 물이 달빛에만 비춰 보인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뭐 그렇습니더"


"거기가 어딘데?"


"사람들 잘 안다니는 그 개울물 있잖습니까, 우리 동네 하천이지요"


"에? 그 똥물이 밤에 수영장으로 변하고 낚시까지 할 수 있다고?"


"물고기가, 아주 커~다란 잉어가 그 안에 헤엄치고 있다 아입니까. 그리고 저만 아는 것도 아니고요"


"누가 또 알아?"


"우리 동네 영감님들은 거의 다 알고 있을겁니더. 저도 최근에 알았어예. 새벽에 나가보면예 동네 영감님들 낚시하다 귀가하고 거기 옆에 앉아가 달빛에 비친 수영장 물만 보면서 세월을 낚기도 합니더"


"그래? 이걸 믿으라고 얘기하는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네. 그럼 낚시대 하나에 미끼좀 사서 낚시하고 오면 되는거야?"


"오늘 밤에 거기로 낚시하러 갈 건데 한 번 같이 가보실래예"


"......그래, 궁금하네"




그 날 밤.



동생과 아치 모양을 하고 있는 작은 교각 다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엉성한 낚시대를 어깨에 하나씩 얹고서.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었다.



난 가면서도 반신반의 했다.



그럼에도 따라가는 이유는 난 그저, 수영장처럼 생긴 깨끗한 하천이 궁금해 따라가는 것 뿐이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무슨 야밤에 동네 하천에 가서 낚시를 하나. 물고기는 있기나 할까.



사실 믿지 않았다. 분명 내게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의심도 잠시, 하천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입을 벌리며 놀라는 표정을 짓게 됐다.




"형님, 보세요. 저기 보이시죠!"




동생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달빛에 윤슬이 반짝이고 있다.


낮보다 조금 더 빠른 유속으로.


더러운 물이 깨끗한 물이 되어있다.


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큰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난 물 속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밤에는 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던 사람이건만, 그런 내가 지금 물 속에 빠지고 싶다 생각하고 있다.




'저 물 속에 몸을 던져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




물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도 뛰어들지 않던 내가, 그것도 밤에, 물 속에 뛰어들어가고 싶다 생각하고 있다. 난 스스로를 의심했다. '이건 분명 꿈이야.. 말이 안돼. 어떻게 그 똥물이 이렇게 깨끗한 물이 될 수가 있겠냐고. 말이 돼?'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하천은 깨끗했다. 그런데 상류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폐수가 흘러 내려오기 시작했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던 물고기들가 사라졌다. 물도 많이 오염됐다. 색이 변해버렸고 검은 이끼가 낀 큰 바위들은 그나마 보이는 부분마저 다 지워버렸다.



하천 물을 끌어다 쓰던 농부들은 거처를 옮겼다. 깨끗한 물이 있는 깊은 자연속으로, 아무튼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이든 어른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지만 그 탓에 어느 순간부터 노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원형 계단을 따라 내려간 하천에는 정말 '수영장 같은 모양'을 한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낚시 전용 의자가 물가 양옆에 놓여 있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낚시를 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여기저기서 확인 할 수 있었다. 물가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발에 물컹한 것이 밟혀 발 아래를 보니 낚시를 하기 위해 가져온 미끼가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다.



쭈꾸미, 피래미, 살아있는 오징어 다리, 지렁이, 구더기 등, '대체 뭘 잡으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미끼의 조합은 미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형님, 제 말이 맞죠? 여기 하천이 흐르고 있잖아요. 여기 물고기 다니는거 보이시죠. 한 번 잡아보자고요. 저기 달빛에 비추는 물길 보세요. 무지개 같지 않아요?"


"......"


나는 눈 앞에 분명 보이는 것이 있는데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꿈일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똥물처럼 흐르던 하천이 깨끗한 물이 되어서 흐르고 있고, 그냥 개울에 불과하던 곳이 수영장이 되어 있으며 이 휘황찬란한 물고기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이냔 말이다.



"나는.. 나는 못믿겠다"


"네? 지금 눈 앞에 보이는데도 믿지 않겠다고예"


"이게 말이 안되잖아, 어떻게 그 물이 이렇게 깨끗해질 수가 있냐고. 원래는 똥물이었는데. 이 하천은!"


"화내실 것까지야.. 그래도 밤에라도 깨끗하니 얼마나 좋습니꺼. 낮에는 안오고 밤에만 오면 되지예. 아무튼 물고기 좀 잡아보입시더"


그녀석이 미끼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기존에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다음 사람을 위해 미끼를 챙기지 않고 그냥 두고 가는 것 같았다. 나와 동생이 함께 낚시를 시작할 무렵, 나이든 사람들이 물가 근처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고 그 행렬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냥 물 위에 낚시 찌를 띄워 놓기만 해도 잡힐 것처럼 느껴져 아무 생각 없이 물가 위에 낚시대를 휙- 하고 던졌다. 그런데 아뿔싸, 빠른 유속에 낚시대가 함께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낚시대를 잡으려고 하천 끝에 엎드려 손을 뻗었고 간신히 낚시대를 잡았다.



"휴, 큰일날 뻔 했네"


"형님, 그리고 하나 비밀을 알려드릴게예"


"무슨 비밀?"


"여기 흘러내려가는 물고기들 말이여요, 잡아 먹으면 몸에 그리 좋다요"


"뭐가 좋은데"


"회춘이요 회춘, 회춘한데예"



옆에 지나가던 노인이 거들었다.


"그걸 말하면 안되는데"


"아, 아. 맞다, 이거 비밀이었지"


"왜, 무슨 비밀인데?"


"아니예요 형님 이거 말하면 안되는데 깜빡했네예"


"아니 말해봐 궁금하잖아"



지나가던 노인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동생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음... 사실 여기 모인 노인들이예, 젊어지려고 여기 물고기 잡으러 온거예유"


"그게 뭔 개소리야?"


"아니 들어보시라고요. 여 깨끗한 물에 살고 있는 밤에 잡는 물고기는예, 몸에도 좋고 실제로 회춘을 극적으로 하게 도와준다니까예"


"......그게 말이 돼?"


"여기 지나다니는 노인들 보셔유. 며칠만 여 나와서 낚시들 하는거 지켜보시믄예 아마 알게 되실거구만요"


"진짜 어질어질하다"


"자는 저 옆에 화장실 좀 다녀올께유. 거 화장실 옆에 연못 하나 있는데 형님도 낚시좀 하고 난 뒤에 오시면 되겠네예. 거기서 같이 낚시하시더라구예"


난 대꾸도 하지 않고 빠른 유속으로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젊어지려고 물고기를 잡아 먹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그러고는 낚시대 찌에 쭈꾸미 머리와 오징어 다리를 하나씩 달고 수영장에 낚시대를 힘껏 던졌다. 미끼를 던지고 얼마 안돼, 갑자기 낚시대가 흔들거리더니 이내 두 손으로 힘껏 끌어당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앗, 어읏 이거 대어인가? 뭔 놈의 물고기가...! 헛!"


있는 힘껏 당겨도 올라오지 않던 물고기가 갑자기 힘을 뺐다. 그 순간 내 힘에 앞으로 고꾸라졌고 나는 물 위로 얼굴을 처박고는 놀라서 몸을 바로 일으켜 세웠다. 아직 물고기가 저항중이다. 물 자체를 무서워하던 내가 수영장 낚시터라는 곳을 야밤에 찾아와 지금 낚시를 하고 있는 상황도 우스꽝스러워 죽겠는데 고기 한 마리 잡아보자고 발악을 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그래, 한번 잡아 올려보자! 내가 네놈을 한 번 먹어봐야겠다 이 말이야, 응! 나도 좀 젊어져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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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물에서 밖으로 튀어 올랐다. 물살 위에 흐르던 물방울이 하늘로 튀어오르면서 달빛에 반짝 거렸고 붉은 색 큰 잉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달빛에 비닐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저러니, 응, 저러니 먹으면 젊어진다 뭐다 벼래별 소리가 다 나오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있는 힘껏 잉어를 밖으로 당겼고 내가 잡았다는 생각에 기쁨에 도취되었다. 난 물고기를 들처 업고서 동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화장실 옆 연못을 향해 가니 동생이 앉아있었는데, 동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형님... 그게..."


그 옆에는 아까 그 노인이 서 있었다.


"니들 참 곤란하게 만들구먼"


"무슨 일이신데요, 여기 붉은 잉어 잡았어요!"


"이미 이리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먼"


"알아듣게 얘기해주세요.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잖아요"


"니들이 잡은 잉어 말이여, 그거 잉어가 아닌것이여"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지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좀 알려주실 수 없으세요"


"니들이 잡은 잉어가, 그게 잉어가 아니라고"


"그럼 잉어가 아니면 뭐예요?"


"그것들 사람이여"


"!!!!"


"사람이라니?"


갑자기 노인이 성큼성큼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물고기 비닐을 들추기 시작했다.


"여, 이게 비닐로만 보이는가 자네 눈에는? 응? 이게 비닐로만 보이냐고"


비닐 아래로 사람 피부 비슷한 것이 섞여 있다. 마치 인간의 조직과 물고기의 비닐이 한 몸처럼 엉겨붙은 듯한 모양이다.



나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노인의 말은 듣는척도 하지 않고 동생을 쳐다봤다.


"너... 너, 알고 있었어?"


".....예"


"그런데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딱히... 알아서 좋을게 없을거 같으니까예..."


"졸지에 사람고기 먹을뻔했네. 이 사람들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네. 아우 꼭두새벽부터 재수가 없을라니까"


내 호통에 노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형님 제가예 밤에 여기 물고기 잡는 어떤 노인 한 분을 봤는데.. 그 분이 그냥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는거 아입니꺼.. 그리고 나서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변하는겁니더.. 그래서.."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노인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떼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 물고기들... 노인들이여"


"?"


"나이 드는거 좋아하는 인간이 어딨어. 다 싫어하쟤. 젊어지겠다고 거 수영장에 헤엄치는 물고기 잡아 먹었는디, 이게 사람 욕심이란게 있잖여. 하루 아침에 젊어지는게 아니건만. 그런데 하루 종일 거기서 낚시하고 물고기만 잡다가 결국 지들도 물고기가 되버린겨. 참 웃기지 않어?"


"영감님은요?"


"나도 그럴 뻔 했지"


"......"


"자네 지금 잡아온 물고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친구였구먼"


"장씨였지 장씨, 그 장씨가 말이여. 처음에는 자네랑 똑같이 반응했다고"


"......"


"반신반의 하더니 한 번 물고기를 잡아 먹더라고? 그러더니 그 뒤로는 계속 물가 옆에만 있는거여. 밤만 되면 나타나가지고 낚시해서 물고기 잡아 먹고, 응? 그렇게 욕심이 자라난게지"


"그 다음은요?"


"피부 결이 좋아지고 얼굴도 매끈해지니까 이 사람이 이제는 안먹고는 못배기는거여. 그 뒤로는 일상이 되어버린게지"


"그럼 된 거 아니예요? 젊어지고 뭐 좋아지면 되는거 아닌가요?"


"자네 노인들이 자꾸 사라지는거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던가? 하기사 뭐 젊은 사람들 관심이나 있을런가"


"그야 모르지만... 무슨 이유라도"


"여 달빛수영장 비밀을 알아버린 노인들이 말이여, 밤마다 나와서 물고기를 먹고 젊어졌는데 재밌는게 이게 밤에만 젊은거여. 밤에만. 여 똥물 같이 흐르던 하천이 밤에 달빛처럼 빛나듯이, 어디 가기만 하면 노인네 취급받고 냄새난다 어쩐다 하고 무시하던 노인들이 밤만 되면 젊은이가 되어서 여기 하천 근처에만 머물고 있는거여. 밤에만 나다니는게지. 그런데 그 젊음이 뭐 영원하던가? 자네는 그 젊음이 뭐 영원할 것 같나?"


"... 뭐 어쨌든 찾아오겠죠. 저도 나이가 들거고요"


"원래 인간은 갖고 있을 때는 모른다고, 뭐든. 당연한게 사실 당연한게 아니란 소리여"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 대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깝지. 도덕적으로는 다들 알고 자기도 분명 어른 공경한다고 착각할거여. 그런데 막상 본인한테 짐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귀찮게 하잖여? 태도가 말이랑 너무 달러. 행동을 봐야지 암"


"....."


"아무튼 그렇게 노인들이 젊어져서 밤에만 다니는데, 그럼 밤에 활동하는 노인들끼리 또 만나게 되는거잖여?"


"네 그렇죠. 아니 그런데 밤에 활동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잖아요?"


"이게 부작용이 있는거여, 미래에 내가 살 수명을 끌어다가 젊음을 유지하는거니께"


"......!"


"그런데도 노인네들이 그걸 포길 안해. 어차피 욕심도 없고, 나이 들어서 사느니 젊었을 때처럼 행복하게 살다 가겠노라 하는거야"


".....아,"


"그래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끌어다 쓰다가 어느날 픽- 하고 쓰러지면 똑같이 여 달빛수영장 물고기를 먹은 젊은노인들이 걔들을 여 물에다가 던져줘. 그러면 그 죽은 노인이 물고기들한테 흡수되는거지. 이게 반복되는거여. 사람이 죽어서 물고기랑 한 몸이 되고 그 물고기를 또 다시 노인들이 먹고 또 죽은 노인은 물고기가 되고 그러는게야."


"그럼 젊은 사람이 물고기를 먹으면요?"


"그건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이야. 자네가 지금 하려는 행동도 옳지 않은 것이고"


"동생은 그런데 왜 저를 여기 데려온거죠?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면서요"


"에끼! 나쁜 놈같으니라고"


"....."


"금기를 어기려던 거지!"


"금기요?"


"젊은 사람이 물고기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게야. 자네를 데려온 것도 그 이유뿐이고. 내가 한 소리 했다네"


"...이 나쁜 새끼..."


"......"


"너나 처먹어, 이새끼야"


"죄송합니더"


나는 동생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어쨌든 안먹어서 다행이군요..."


"그렇지, 말 나온김에 당장 떠나게"


"먹으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달빛수영장을 다신 볼 수 없네"


"그냥 그것 하나뿐인가요?


"회춘하는 것이 나이들면 누구나 바라는 것 중 하나지. 그런데 그 기회를 박탈당하는거야. 수순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나이들면 누구에게나 주어질 기회를 젊은 나이에 날려버리는걸세"


".....아, 그렇다면 저는 먹지 않겠습니다"


"....응 그럴 때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지. 뭐든 지나가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라네"


고작 그런 이유 떄문인가, 하는 표정으로 동생은 나를 쳐다봤고 반대로 나는 욕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마음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동생이 갑자기 말을 이었다.


"제가 형님을 시험해보려고 했던 것은 죄송합니더. 하지만 저는 용기가 없는걸예. 그래서 형님을 통해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더"


"나이가 들면,"


노인이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 으레 순차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네. 생각도 깊어지고 세상 보는 눈도 더 넓어지고. 단지 나이가 드는 것 뿐이지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아진다네. 그런 기회를 젊은 날의 약은 생각으로 그르치지 않길 바라네. 너무 계산하면서 살지 말라고. 자네들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걸요. 가는데는 순서가 없으니까요"


"나도 그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지만 나는 지금 90세야. 보기랑 다르게 정정하지. 저 물고기들 덕분인데, 자네들도 나중엔 먹으면 된다네. 나이가 들었다고 느껴질 때 쯤 말이지. 뭐만 하면 병에 걸리는게 아닌가 어디 아픈게 아닌가, 그냥 그런 생각 않고 살았어도 될 걸, 그 놈의 장수가 뭔지. 오래 살고 싶어서 맨날 그 생각을 달고 살았네. 어쩌면 그 생각 때문에 더 오래 산 건지도 모르곘어.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게. 요행 바라지 말면서 말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달빛수영장에는 얼씬도 하지마!"


"....아, 네. 그럴 생각입니다"


"저... 저도 그렇게 할겁니다. 이제 그 비밀을 알았으니까요"


"어서 돌아가게"



노인은 아서라 손을 흔들며 우리를 향해 서둘러 갈 것을 권했고, 이 사실을 젊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달빛수영장 방문은 한 노인의 훈계로 끝이났지만 분명히 알게 된 건 정도를 벗어난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이에 수반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고, 고로 지름길은 없으니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수영장이었을까, 동생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이 궁금했지만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밤에 그 하천길을 지날 때면 수영장이 보였지만 나는 낮에 보이는 하천 모습을 떠올리며 달빛수영장을 무시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달빛수영장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동생놈은 그 뒤로 그 좋아하던 낚시를 끊었다. 동생의 호기심 테스트 대상이 된 내게 수 차례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술 자리를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동생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돌아섰는데, 뭔가 생각난듯 내게 말했다.



"형님, 그 소식 들으셨습니꺼?"


"뭐?"


"저 위에 공장 있던 곳이예"


"공장이 왜"


"거기 문 닫았고, 폐수 정화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던데예"


"......"


"그래, 가라"



그렇게 폐수 정화시설이 들어온 뒤로 동네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농부 어르신들이 줄지어 입주하기 시작했고 지역신문에는 폐수 정화시설을 운영하는 관리자가 인공 습지를 만든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도배했다. 그렇게 1년 뒤 하천은 달빛수영장 못지 않게 깨끗해졌다.



나는 깨끗해진 하천을 바라보며 그 때 그 영감을 만난 경험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달빛이 비치는 날이면 아직도 물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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